앞 글에서 현대벡터해석이란 조금 오래 된 책에 대하여 글을 쓴지 넉 달은 된 것 같다.

그 동안 바삐 이것 저것 하다 보니 별 일 못하고 여름 방학을 다 보냈다. 학기중 보다는 방학이 더 바쁜듯이 느껴지는 것도 이제는 5년이 넘은 것 같다. 아마 계속 이런 추세가 늘어날 것이라고 보인다.

오래 전에 (아마도 2년 전 쯤에) 일본 나고야 대학 수학과의 홈페이지에서 그 학교 강의 목록을 받아보았었다. 자세히 읽어보지 않아서 그냥 저장해 두었는데 이제야 한 파일을 열어서 살펴보았다. 일본의 학부 및 대학원 수학과 강의 목록은 예전과는 조금 달라진 것이 아닐까 한다. (일본에서 공부한 적이 없어서 예전에 어땠는지는 잘 모르지만 일본의 교과서들의 제목을 보며 내가 공부하던 때의 과목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요즘은 제목들도 조금 통합되거나 하고 틀에 박힌 내용들이 줄어들었으며 새로운 내용의 강의가 많이 보인다. 우리학교의 강의 내용과 비교하면 우리 것이 좀 낡은 듯이 보이기도 해서 벤치마킹이라도 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던 참이었다.

그 학교 2007년도 2학기의 강의를 보던 중 내 전공인 기하학 분야의 강의로 기하학요론II 라는 강의가 보였고 무엇을 가르치나 보니 벡터해석과 그 응용 정도라고 보인다. 교과서는 없고 참고서만 6권이 있는데 거기서 맨 마지막에 적혀있는 책이 이 스틴로드/스펜서/니커슨 등이 쓴 현대벡터해석으로 되어 있어 놀랐다.

강의는 학부 3학년생 대상인데 벡터해석을 가르치는 참고서들 중에 Fukaya의 "전자기장과 벡터해석"이나 "해석역학과 미분형식"이 들어 있고, Matsushima의 "다양체입문"과 이 책이 있으니 그 수준은 높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참고로 Fukaya의 해석역학 책은 몇 년 전에 내가 대학원 강의에서 교재로 썼던 것이다. 그리고 이 현대벡터해석은 그보다도 수준이 더 높다고 해야 한다. 물론 참고서이다. 하지만 나라면 학부학생들에게 이것을 참고서로 소개하지는 않을 것 같다. 나중에 한 번 보아라 할 정도 일까?

일본은 기초과학과 수학에 대한 경시 풍조가 없는가? 아닐 것이다. 일본이 더 하면 더 하겠지... 그런데 이런 강의를 열면 학생들이 따라 오는가? 아니 이런 강의를 듣겠다고 하는 학생들이 있는가? 혹시 필수로 지정하고 꼭 듣게 하는가? 잘 알 수 없지만 이런 강의가 제대로 열린다면 우리보다 좋은 시스템을 가지고 있거나 또는 일반인(학생을 포함해서)들의 수학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되어 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우리 나라의 대학 강의도 이러한 수준에 도달하려면 어떤 점에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감이 잘 잡히지 않는다. 어쩌면 조금 더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분석을 해 볼 시점일지, 아니면 좀 늦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어쨌든 잘 사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책이 버젓이 지금도 참고도서에 올라 있는 것에 한 방 먹은 것 같은 느낌으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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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아는 분 사무실에 갔다가 책을 몇 권 업어왔다. 아니 안고 왔나?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 가운데 관심이 가는 책이 한 두권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현대벡터해석"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부제는 "벡터해석에서 조화적분으로"라고 되어 있다. 원 제목은 Advanced Calculus로 Nickerson, Spencer, Steenrod 세 사람이 쓴 책으로 Van Nostrand에서 1959년에 출판된 책이다. 번역은 岩波서점에서 1965년에 原田重春, 佐藤正次 두 사람이 하고 있고 1971년까지 5刷가 나와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책이 Princeton 대학의 교과서로 쓰여졌다는 것이고 책에는 학부 3학년생을 위한 것이라고 되어 있다. Advanced Calculus라면 학부 3학년에서 공부하기에 적절한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조금 일반적인 교과서라고 할 수 없다. 프린스턴 대학의 교육 수준이 높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지만 이 책의 내용은 수준 면에서 조금 산만하다. chaper를 살펴보면

벡터대수, 벡터공간의 1차변환, 스칼라 곱, R^n의 벡터곱, 자기 준동형 대응, 실수 상의 벡터값 함수, 벡터를 변수로 갖는 스칼라값 함수, 벡터를 변수로 하는 벡터값 함수, 텐서곱 및 다원환, 위상수학과 해석학에서의 준비, 미분형식의 미분법, 적분정리, 복소구조

등이다. 이 책은 학부에서 사용되었던 교과서임에 틀림 없다. 이 보다 앞서서 어떤 수업을 듣고 Advanced Calculus를 들었을까? 적어도 미적분은 듣고 그리고 또 한 두학기 정도의 1변수 미적분을 epsilon-delta 와 함께 공부했던지 아니면 이것들을 1~2학년동안에 나누어 공부했던지 어쨌든 3학년에서는 다변수 해석학을 확실하게 공부하고 있다. 각 장의 내용을 보아도 벡터함수는 물론, 선형대수와 다중선형대수의 이론을 잘 공부하고 있고 뒤쪽으로 가면 텐서와 미분형식으로 무장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보통 공부하는 이 부분 강의에 비교하면 정말 단단히 공부했다는 느낌이다. 50년 전에 말이다.

뒤쪽에 가면 외미분과 리만계량, singular homology 와 cohomology, 그리고 de Rahm정리, 조화형식과 cohomology의 관계, 복소미분형식과 복소 Poincare 도움정리, Hermite계량, Kaehler계량 까지도 다룬다는 것이다.

이 내용들이 저자인 Spencer, Steenrod 등의 전공인 복소기하학과 위상수학의 내용으로 치우쳐 있다는 것은 이상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학부 3학년에게 이런 강의를 하는 것이 좋은지는 잘 모른다. 비록 프린스턴 대학의 학생들이 천재에 가까워도 이렇게 빨리 나가도 제대로 공부하는가?

하지만 이것은 프린스턴의 문제이고 내가 걱정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또 한 가지는 일본은 왜 이런 책을 번역했는가? 특히 수학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이와나미 서점은 왜 이런 책을 번역했는가? 그리고 몇 년 동안에 5刷까지 인쇄했는가? 단지 프린스턴대학의 교재여서 당시 일본 수학자들이 최 첨단 교재를 보고자 하는 것이었을까? 잘 알수가 없지만 이 교재가 일본에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을 것 같다. 미국의 유수학 대학, 예를 들면 프린스턴, 하바드, MIT 등의 대학원 강의 수준을 보면 학부 수준도 꽤 높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고 위와 같은 교과서가 계속되어 사용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런 교재는 그리 popular한 책은 아니다. 적어도 우리 나라에서나 일본에서는 이런 교과서를 쓰는 곳이 몇이나 있는가? 도쿄나 교토 대학은 잘 모르겠지만 다른 곳은 절대로 아닐 것이고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교과서를 학부 3학년에 쓰는 곳은 적어도 지금은 없다. 아마 1960년대에 서울대학교에서 Advanced Calculus 교재로 당시 Dieudonne가 쓴 해석학 시리즈 첫 권인 Foundations...를 썼던 것이 아마도 가장 어려운 교재였을 것이고 그 다음에는 Rudin의 Principles...를 넘어간 일은 없을 것 같다.

지금에 와서 보면 이런 책이 한 권쯤 도서관에 있는 것은 나쁠 것이 없다고 생각된다. 우리말로 말이다. 교과서로는 쓰이지 않아도 공부하면서 이런 책도 한 번쯤 들춰보고 지금 당장은 필요없을 것 같은 개념들도 조금만 공부하면 읽을 수 있는 내용이구나 하고 생각해 둘 수 있다면 새로운 개념들로 나아가면서 어려움이 훨씬 덜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 우리말로 된 교과서를 둘러보면 학부 2학년 정도 까지의 교과서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고 그 이상의 교과서는 제대로 된 것을 찾기 힘들다고 생각된다. 해석개론만 해도 내가 들 수 있는 것은 한 두개 뿐이고 위상수학이나 미분기하학도 나온지 오래된 교과서 아니면 외국 교과서의 편역 등을 제외하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대수학도 은퇴하신 우리 은사님 한 분이 예전에 쓰신 책 말고 또 있는지 궁금하고 집합론의 저자들도 모두 은퇴하셨다. 지금 현장을 담당하는 교수님들은 뭐를 하시는 건가? 강의 부담은 내가 처음 교수가 되었을 때의 반으로 줄었는데... 그런데도 책을 만드는 사람은 거의 없다.

책 쓰는 것이 돈이 되지 않기는 하지만 이것이 큰 이유는 아닐 것이다. (사실 대학원 교재는 써도 팔리지 않는다고 출판해 주지 않지만...) 아마도 연구에 대한 압박에 책을 쓸 여유가 없는 것이 큰 이유일 것이다. 저서는 특히 교과서 급은 학교에서 연구 업적으로 거의 인정하지 않는 현실에서 책을 쓸 사람이 없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고 하겠다.

아마도 교과부 정책에 변화가 있어야 할 것 같다. 우리나라 교육이 발전하는 것은 단지 정부가 모든 것을 담당해서는 안되는 것이 자명하다. 정부가 하는 만큼 일반인들도 도움이 되는 특히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는 일을 많이 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논문을 많이 쓰는 것 만큼 좋은 교과서를 쓰는 것이 중요하다. 50년이 지난 지금에도 들여다보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교과서라면 꼭 써야 하는 것이다. 쓰기 힘들면 번역이라도 해 두어야 한다. 우리 말로 읽을 수 있으면 고등학생 중학생이라도 읽어볼 수 있고 이런 가운데 뛰어난 사람이 나오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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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교우회보에 실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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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한적실(漢籍室)이 있는 대학원도서관 건물은 1952년도에 문과대학이 문리과대학으로 개편되었을 때 현재 이과대학 수학과와 물리학과의 전신인 수물학과가 처음 자리잡았던 곳이다. 이 건물 2층에 단촐한 사무실을 가지고 있는 한적실은 별로 찾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고려대학교가 소장하고 있는 한문으로 된 옛 서적들을 관리하는 중요한 곳이다. 사무실은 자그마해도 그 맞은편 좁은 회랑을 따라 들어가면 자물쇠가 걸려 있는 큰 도서실 두 개가 나온다. 이 안에 들어서면 다른 도서관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 펼쳐진다.

근래 멋있게 변모된 우리 캠퍼스나, 최신 시설을 자랑하는 우리 도서관들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환기가 잘 안 되어 먼지 냄새가 나고 조명 시설도 잘 되어 있지 않아 어두컴컴하지만 이곳에 붙어 있는 팻말들을 보면 이과 전공인 나도 잘 알고 있는 옛사람들의 장서가 여기 모여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충 보아도 몇 만 권인지 알 수 없지만 조선시대 학자들이 쓰고 모으고 공부하였던 오래 된 책들로 고려대학교에 기증된 듯싶은 책들이 서가마다 가득 가득 들어차 있다.

나는 2년 전쯤 고려대학교가 소장하고 있는 산학원본(算學原本)이라는 책을 찾기 위하여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한적실을 처음 찾았다. 산학원본은 17세기에 은산(殷山) 군수를 지낸 박율(朴繘)이 지은 산학(지금의 수학)책으로 18세기에 황윤석이 편집한 이수신편 23권에 산학본원이란 이름으로 들어 있다. 2년전 까지도 산학본원의 원전인 산학원본은 실전되었다고 알려져 있었다. 따라서 고려대학교 도서관에서 산학원본을 발견한 것은 매우 중요한 사건이 될 수밖에 없었다.

박율은 이 책을 통하여 13세기에 중국 수학이 전성기를 이룰 때 쓰여진 주세걸(朱世傑)의 산학계몽을 제대로 공부할 수 있도록 수학의 입문에서 어려운 계산법까지를 설명하였다. 많은 학자들이 단순히 유명한 책을 그대로 옮기며 해설을 붙이는 것과는 달리, 그는 산학계몽의 내용을 이해하고 정리하여, 산학에 필요한 기본 계산법으로 구고술(句股術)이라 부르는 피타고라스 정리와, 원과 관련된 공식, 그리고 천원술(天元術)이라 불리는 다항방정식의 해법, 등을 추리고, 이로써 당시 알려진 수학을 모두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을 보고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은 이 책을 저술한 시기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서양수학책인 수리정온보다 수십 년 앞섰으면서도 천편일률적인 중국 수학의 방법을 지양하고 통일된 관점에서 여러 계산법을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율이 17세기 중엽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현대적인 사고를 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오히려 19세기에 서양수학을 접했던 학자들보다도 훨씬 더 진보된 관점으로 현대수학의 핵심인 개념화와 구조화를 보여주는 책을 썼음을 알 수 있다.

산학원본 서문을 보니 조선 중기에 인조반정의 공신인 최명길의 손자로 여덟 차례 영의정을 지냈으며 스스로도 산학책을 저술한 최석정이 서문을 썼다. 이조시대의 수학은 주로 중인집안에서 배출되는 산학자들이 담당했었다. 그러나 옛 산학책 가운데 많은 것들을 양반 유학자들이 썼다는 사실은 놀랍다. 박율, 최석정은 물론 영의정을 지낸 조태구, 판서를 지낸 남병철, 남병길 형제, 유명한 유학자인 황윤석, 홍대용, 배상설, 조희순 등 많은 유학자들은 산학에서도 당대 최고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 조선이 많은 어려움을 뚫고 500년의 역사를 자랑할 수 있게 된 데는 그 중심인물들 스스로 경학과 함께 실용과학인 산학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것이 큰 역할을 하였으리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이런 놀라운 사실을 한적실 한 모퉁이의 낡은 책 하나가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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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을 사용하며 될 수 있으면 이것을 권하는 사람이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는 조금 찜찜한 점이 있다. 처음 TeX을 사용하기 시작할 때는 호기심이 컸었고, 조금 사용해 보면서 그 장점에 눈이 떠졌지만 오래 보면 역시 프로그램이란 것은 거기서 거기라는 느낌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도은아빠의 커멘트에 따라 LaTeX documents that endure라는 글을 대충 훑어 보았다. 어느 정도 TeX을 사용해본 사람들이면 이 글에 지적된 것을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 나라의 자랑스런 대표 프로그램인 하안글을 잘 사용하고 있으면서도 될 수 있으면 TeX을 사용하도록 권하는 이유는 작성한 문서가 얼마나 오래동안 사용가능한가 하는 문제 때문이다. 하안글의 가장 못한 점 그리고 일반 워드의 단점이 프로그램이 버젼업 되면 예전에 작성한 파일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TeX도 이런 점을 가지고 있다. TeX의 장점 가운데 하나가 오래 전 파일도 그대로(?) 쓸 수 있다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이것은 정확한 말은 아니라고 해야 하는 것이 실정이다. TeX 파일도 오래 되면 컴파일이 안된다는 것은 조금 사용해본 사람이면 모두 알 것이다. 그래도 여기에 TeX의 장점이 있는가?

TeX은 과연 오래된 파일도 컴파일할 수 있는 시스템을 향하여 가고 있는가?

이것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맨 처음에 Knuth가 TeX을 만들 당시에는 당연히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프로그램을 너무 잘 만든 나머지 세상 사람들 너도 나도 macro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이 가능성은 희박해지기 시작하였고, TeX 프로그램 자체도 여러 형태로 변형되어 컴파일되면서부터는 아마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고 있다고 생각된다. 역시 소스를 공개하고 나면 원래의 의도를 지켜주는가는 남들의 몫이다.

문제가 어디에 있는가 하면 TeX의 macro를 작성하는 사람들이 TeX의 변화에 맞추어 macro를 보완해주지도 못하고 변화하는 TeX과 independent하도록 처음부터 완벽한 macro(그런 것은 없을지도 모르지만)를 만들어 주지도 못하는 데 있다.

그러면 무엇이 TeX의 장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TeX을 권하는 데는 몇 가지 점이 있겠다.
  1. 우선 아무리 오래되어도 TeX파일 editing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code가 바뀌어도 convert정도는 할 수 있다. 이것은 새 프로그램으로는 열어보아도 알아볼 수 없는 부분이 많은 다른 워드와는 확연히 다른 점이다.
  2. 또 하나는 적어도 기본으로 작성되어 있는 수식 부분은 아무리 오래되어도 사용이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아마도 Knuth가 처음에 수식에 관한한 거의 완벽한 시스템을 구축한 덕일지도 모른다.
  3. 그리고 또 하나는 보수적인 관점에서는 TeX document를 거의 영구적으로 사용하도록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오래 사용할 수 있는 TeX 파일

TeX의 장점은 document를 만드는데 분업의 개념을 도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식자, 조판은 engine이 나중에 따로 해 주고, editting 시에는 formatting이 없는 기본 editor를 사용한다. 또 하나는 formatting과 관련된 부분은 명령어를 사용하며 이의 정의는 macro에 따로 저장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세 부분이 모두 똑같으면 TeX document는 계속 사용가능하다는 말이다.

우선 나한테서 가장 먼데 있는 TeX engine은 변한다. 이것은 내가 어쩔 수 없다 하여도 적어도 예전의 기본 명령들은 그대로 유지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LaTeX 2.09인가에서 LaTeX2e으로 넘어올 때, 그리고 amstex의 초기 명령 스타일에서 ams+latex꼴의 environment로 넘어올 때 크게 변하기는 했지만 이런 기본 매크로들은 꽤 오래 동안 기본을 지킨다. 이보다 더 밑의 engine은 글쎄 나는 모른다. 조금씩의 차이를 경험하기는 했지만 모양이 조금 달리 나오는 것은 상관없다. 어차피 이것은 기대하지 않으니까. 안되지만 않으면 된다. 이에 더해서 engine의 개수도 많이 늘어났다. 나는 거의 기본 TeX engine을 쓴다고 생각했지만 요즘 기본은 내 생각과는 상관 없이 pdftex이 사용되고 있다. 조만간에 XeTeX 계열을 사용하는 일이 늘어날 것 같다고도 생각된다.

나한테 가장 가까운 document 파일은 이미 만들어졌고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문제는 이 document를 사용하는 환경이 변한다. 한글 코드가 변하고 저장매체가 변하고 하는 것은 내가 최대한 따라가야 하는 문제이고 이것 때문에 어찌 잘 안된다는 것은 다른 방법이 없다.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중간 매크로이다. 기본 매크로 위에서 돌아가는 자잘한 매크로들은 처음에는 별로 사용하지 않았다. preamble이 불과 세 줄 정도이던 적이 얼마 안 되었는데... 지금은 수십줄은 기본이다. 물론 예전에도 내가 shortcut으로 만들어 쓰는 newcommand들이 있었지만... 이 중간매크로는 여러 종류가 있어서 어떤 것은 꽤 오래 동안 작동이 크게 변치 않고 안정적이어서 믿고 쓸만 하지만 어떤 것은 금방 개발이 중단되고 해서 조금 지나면 사용 불가능한 경우도 많다. 아마도 이 부분이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이리라.

해결책은?

해결책은 물론 없다는 것이 눈에 보인다. 위의 세 가지 부분에서 나에게서 먼 부분들은 내가 손댈 수 없는 부분이고 문제의 대부분은 이곳에서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가 조정할 수 있는 부분은 있다. 중간 매크로들을 사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는 내가 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욕심을 버려야 한다. TeX의 기본 철학 가운데 하나가 조판이 어떻게 되는가는 신경쓰지 말고 내용을 적는 것에 all-in 하라는 말을 되새기며, TeX의 기본 매크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만 사용한다는 자세는 나의 document를 가장 오래 사용가능하도록 하는 방법이다. 이상한 매크로를 사용한 독톡한 기호나 format을 포기하면 TeX이 아무리 변해도 이 기본들은 지켜줄 것이기 때문이다.
혹시 environment라는 개념이 변해도 아마 LaTeX3가 나올 때쯤이면 LaTeX2e의 기본적인 명령어들을 LaTeX3 또는 그 차세대 형식으로 자동변환하는 프로그램쯤은 만들어지지 않을까 생각하면 아마도 영구적인 document가 될 것이라는 바램도 있다.

그래도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 매크로들이 몇 있다.
graphicx라든가 hyperref 쯤은 있으면 좋겠고 이런 것은 매크로에서 벗어나서 standardize된 다음 LaTeX 안에 들어가버리면 좋겠다. \maketitle처럼 \makehyperref 한 명령으로 끝나버리게...

수식이나 본문 글꼴을 변경하는 pxfont와 같은 매크로는 사용해도 괜찮다고 본다. 어차피 문제가 생기면 이 명령 하나만 comment out하면 문제가 하나도 없을 것이니까.

완벽한 책을 만들기 위한 수작업 수준의 많은 매크로들은 완벽한 책을 만들 때는 사용해야 하겠지만 이것은 일회성 document라고 보는 편이 속편할 것이다. 예전에도 한 번 식자한 판본을 나중에 다시 사용하기는 어려웠었고 단지 활자만 디시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세상 일이 그런 식으로 돌아가기 때문인 것이니까...

내가 내 document에 사용한 여러 매크로들의 명령어들이 있어도 매크로는 빼버리고

\newcommand{\...}{}

를 추가함으로써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바꿀 수 있는 경우는 크게 걱정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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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셀에서의 여행은 1년이 지난 지금에야 올리게 되었다. 그 동안 여러 일과 게으름으로 이제야 사진 파일을 다시 보게 되었는데...

이미 여행에 지쳐가고 있었는데 벨기에 도착 다음날 아침 wife는 학회에 참석하느라 아침 일찍 아침을 먹고 일행들이랑 나갔다. 나는 조금 더 자고 혼자서 브뤼셀을 둘러 보러 나갔다. 이틀 동안은 혼자 다니게 되어서 내가 좋은대로 가보면 되지만 날씨는 별로 좋지 않았다. 흐린 날씨에 우선 나가다가 매리엇 호텔 1층에 있는 맥도날드를 보고 인터넷에서 읽어본 맥도날드 옆에는 항상 있다는 Quick을 찾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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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지 않게 길 건너편에서 찾아 들어갔다. 메뉴나 분위기는 보통 fast food점이었고, 맥도날드 보다는 조금 어두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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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판을 보다가 토마토 모짜렐라 스프를 발견했다. 미국에서는 못보던 것 같고 유럽 도착한 첫날 먹어보았던 것이어서 이것과 fish burger인가 하나 주문해서 먹었다. 따뜻한 스프는 생각보다 맛있었다. 스프를 먹어보니 우리 식성에 제법 잘 맞는다.
 그리고 길로 나와 시가지를 구경했다. 그리 크지 않은 도시였지만 유럽연합의 수도가 되어서 매우 복잡한 도시가 된 것 같다. 우리가 묵는 곳은 브뤼셀 북동쪽인 듯 하고 조금 걸어 들어가면 예전의 중심지인 Grand  Place (그랑쁠라스)가 된다. 여기가 구경해야 할 제 1번지인 것 같아서 이쪽을 목표로 하고 걸어갔다. 큰길 가에는 빌딩만 줄지어 있다. 길을 건너서 뒤쪽으로 어제 저녁먹으러 갔던 쪽으로 들어갔다. 다른 것은 잘 모르겠고 지도에도 나와 있는 성 니콜라스 성당이 있다. Eglise Saint Nicolas라고 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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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는 꽤 넓으면서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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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옆으로 따로 방이 있고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었다. 파리에서 본 낡은 성당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 안쪽을 대충 구경하고 여러 장의 사진을 찍고 밖으로 나오니 성당 옆 모퉁이에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사람이 앉아 있었고 다른 허름한 사람이 이 사람의 사진을 찍고 있다. 재빨리 이친구의 사진을 찍었는데 내가 사진찍는 것을 알아차렸다. 나한테 자기 website가 복사된 종이쪽지를 주고 갔다. 어딘가 아직 있을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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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혼자 즐기는 스타일의 사진사였다. 옛날 거리로 들어가 그랑쁠라스 근처로 가니 건물들이 이런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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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걸어가 그랑쁠라스에 도착했다. 어느분 블로그에서 본거 같이 별로 넓지 않고 대단히 아기자기하지도 않은 광장이다. 아마 150년 전 쯤 사람들에게는 매우 활기차고 친밀한 거리였을 것 같다. 밤에도 사람들이 자지 않고 맥주를 마시며 떠드는 광장을 상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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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건너편에 맥심과 노이하우스(쵸코렛 상점)이 보인다. 둘러보며 건물 사진을 몇 장 찍었는데 여러 곳에 올라와 있는 사진이다. 계속 걸어서 골목을 지나가니 레이스 상점, 쵸코렛 상점들을 몇 지나고 드디어 오줌누는 아이의 동상에 도달했다. 역시 재미있는 동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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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날이라, 그리고 건물에 둘러싸인 좁은 곳이라 밝아보이지 않는다. 그 앞의 사람들도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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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시 사람들은 물을 뿜어내는 동상을 좋아했던 것 같다. 여기 저기에서 이런 것을 여러 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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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 돌아가는 길에서 조그만 음반점을 발견했다. 들어가 보니 젋은 친구가 파리날리고 앉아 있다. 점포는 중고 음반도 취급하는 것 같았다. 전혀 아는 바가 없어서 이 친구한테 벨기에에서 가장 popular한 노래를 추천해 보라고 했다. 이 친구가 아주 좋아하는 듯 CD 두 개를 추천해서 가지고 왔다. 그리 내 취향은 아니지만 아주 이상한 것도 아닌 것 같다. 하나는 이름이 Hooverphonic이고(그룹 이름인듯) 또 하나는 이름이 An Pierle이다. 이 CD점 사진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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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친구에게 더 큰 CD점이나 책방을 물어보니 La FNAC에 가란다. 처음에는 라프낙이 뭔가 했는데 알고보니 대형 마트 (할인도 되는지?) 이름이었다. 어딘지 물어 찾아가니 우리 호텔 쪽으로 크게 한 블록 더 가서 나오는 큰 네거리에 있었다. 커다란 몰의 3층 꼭대기 전층을 다 차지하고 있는 큰 상점이다. 책도 팔고 가전제품도 팔고 등등 파리에도 있던 것의 체인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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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혹시 수학책을 좀 살 수 있을까 하고 찾아보았으나 그런 책은 없댄다. 그건 다른 곳에 있는 science 책방에 가라고 하는데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어서 포기하고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성당 하나를 더 구경했다. 이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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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 이 성당은 조금 낡아보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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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는 조금 더 어둡다.  그래도 깔끔하고 잘 손질되어 있는 성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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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당의 특징은 오른쪽 안쪽에 성모마리아를 모셔 놓은 섹션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어두워서 찍은 사진들은 다 조금씩 흔들렸다. 이 곳의 벽에 성모마리아에게 드리는 기도문쯤 되어 보이는 것이 걸려있다. 이중에 불어로 된 것이다. 플래쉬 없이 찍어보려 하였지만 불가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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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근처 뒷길에는 PATRIA라고 써 있는 동상이 있는 광장이 있다. 한가한 광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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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광장 한쪽에 있는 책방에 들어가 보았다. 여기에는 중고생들이 읽을법한 책들이 좀 있었고 여기서 낡은 오래된 기하학 책을 한 권 발견했다. 예전에 벨기에 학생들을 위해서 쓴 책으로 낡아서 제본 부위를 두꺼운 테이프로 붙여 놓은 책이다. 기념으로 한 권 사가지고 왔다.

날이 많이 저물어서 호텔로 돌아와 일행을 기다렸다. 돌아온 일행은 어제 우리가 저녁을 샀다고 오늘은 학생들이 우리에게 저녁을 사겠다고 했다. 그래서 아까 나갔던 그랑쁠라스에 있는 상점거리 뒷골목의 음식점으로 갔다. 그곳도 꽤 유명한 곳인 듯 했다. 들어가서 보니 조금 왁자지껄한 분위기이고 조금은 시장판의 음식점 같은 분위기도 있다. 그렇다고 싸구려는 아니다. 우리 여섯이 앉기에는 조금 비좁은 자리였지만 앉아 주문을 했다. 우리가 앉은 자리는 바로 옆에서 cook들이 왔다 갔다 하며 음식을 만드는 곳이었다. 이곳의 특징은 head chef가 우리 자리 바로 옆에서 모든 음식을 직접 만들거나 마지막 손질을 하는 것을 바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우선 좁은 부엌을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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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만드는 사람이 많다.
한편 주문한 우리에게 차려 준 상은 나름 깔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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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는 동안 준비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메뉴를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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쿡 들이 꽤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손님들도 많다.
이 친구가 주방의 헤드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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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각자 먹은 d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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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홍선생님이 대망의 홍합찜을 시켰다. 나는 역시 fish이고 다른 사람들은 steak?
홍합을 다 드신 홍선생님께는 다시 fried 감자가 묘한 냄비 같은 그릇에 담겨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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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은 아직 구경을 못했기 때문에 저녁을 먹고 어두운 그랑쁠라스 거리를 구경했다. 불이 켜져 있어서 많이 어둡지는 않았다. 그 근처의 쵸코렛 상점에서 선물을 몇 개 샀다. 전시되어 있는 쵸코렛 과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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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랑쁠라스에 돌아와 몇 가지 사진을 찍고 모두들 그 옆에 있는 누워있는 성자의 동상을 만졌다. 만져보면 행운이 온다는 말이 있다고 이야기해 주었더니... 와이프가 만질 때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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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반대편 쪽 건물에 보면 여기서 Victor Hugo가 살았다는 팻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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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고가 말년에 이 건물에서 1년 가까이 있었다고 읽었다. 여기 광장에서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지내는 것이 좋았던 모양이다. 이 건물 1층은 레이스 상점이 되어 있다. 모두들 이 근처를 돌아보고는 호텔로 향했다. 하루 종일 학회에서 외국 사람들에게 시달려서 피곤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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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기차 Thalys로 벨기에로 간다. 우선 Gard du Nord 역에서인가 떠나기 때문에 아침 일찍 밥을 먹고 전철을 탔다. 그 사이에 일행이 많이 늘었다. 6명이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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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온 사람들은 졸린 시간이 아니다. 새벽인데도 쌩쌩하다.
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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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부터 발표라 역에서도 발표 준비에 바쁘다.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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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에 올라가서 기차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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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조금 기다리다가 들어온 열차가 우리가 타려던 기차여서 올라갔다. 그런데 기차에 사람들이 하나도 없다. 떠날 시간이 5분도 안 남았는데... 이상해서 내려가서 물어보니 그 기차에 문제가 있어서 기차가 바뀌었단다. 뒤쪽에 계속해서 대어 있는 기차로 옮겨타란다.
기차가 한참 길어서 뛰어서 다음 기차로 가서 간신히 올라탔다.
이거 말을 못 알아들으니까 이런 일이 있다. 하마트면 못 탈뻔 했다. 표도 비싼데...
묘한 차림의 기차 검표원이 표를 검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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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학생들은 브뤼셀로 가서 브뤼셀 구경을 하기로 했지만 우리는 브뤼헤를 들려보기로 했다. 그래서 브뤼셀에서 내려서 갈라졌다. 우리는 한 시간 정도 기차를 타고 벨기에의 해변도시인 브뤼헤(Brugge)를 향했다.
부뤼헤 역에 도착해서 역사를 찍었다. 한가한 도시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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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몇 군데를 보기로 했었으니까 버스를 타고 시내를 향했다. 버스에서 본 시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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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시내는 돌아볼 틈이 없다. 저녁때 까지 브뤼셀에 다시 가야 한다. 여기서는 시간이 두 시간 정도이다.
가려는 곳 근처에서 내렸다. 운하가 지나가는 길이다. 다리 위에서 각각 한 장씩 찍었다. 찍어줄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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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길을 따라서 조금 걷다가 옆의 골목으로 찾아들었다. 정확하게는 알 수가 없지만 이 부근에 찾는 곳이 있다. 골목길을 따라 들어갔다.


낡은 성당 건물이 뒤쪽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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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끝까지 나가니 잔디밭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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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으로 돌아서니 유럽에도 몇 개 안 남았다는 풍차가 보인다. 이미 풍차로 쓰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여기를 걸으며 역에서 사온 샌드위치를 먹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섰다. 우리가 찾는 데를 지난 것이 확실했다. 예쁜 집들이 서 있는 골목을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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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고 오는데 길에서 할머니 한 분을 만났다.
이 할머니께서 친절하게도 우리가 찾는 곳을 알려주었다. 조금만 더 걸어가서 오른쪽에 있다고 하고 거기까지 같이 걸어갔다.


이 할머니는 나이가 80이 훨씬 넘었는데 영어를 잘 한다. 물어보니 예전에 학교 선생님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여기 학생들은 영어도 하고 불어도 하고 독일어도 하던가 어쨌든 6개국어인가를 배운다고 했다. 할머니랑 이야기하느라고 한 20분이 지나서 급하게 찾던 곳에 갔다.
한 곳은 작은 성당인데 원래 이 집 주인이 2차 대전 시절에 이곳에 있던 유태인들을 숨겨주고 했던 곳이라는 역사가 있었다. (오래 돼서 이야기는 희미하지만... 여행 안내 책자에 소개되어 있는 곳이다.) 들어가 보려니 입장료를 받는다고 해서 성당 안에는 안 들어가고 문간만 보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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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사진에서 왼쪽에 보이는 건물이 이 성당이고 예전에 주인이 살던 큰 저택이다.
바로 이 길 오른쪽에 우리가 찾아가는 레이스 상점이 있다. 이름은 Museum Shop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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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고 아담하다. 문으로 들여다 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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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서 다시 오른쪽으로 꼬부라지면 방이 나오고 그 안쪽으로 마당 같은 곳에 지붕을 얹고 많은 레이스를 전시하고 있다. 2층에는 레이스 만드는 것을 보여주는 박물관 같은 곳인데 나는 올라가지 않고 사지을 찍었다. Wife는 올라가 봤던 것 같다. 여기 레이스는 정말 가는 실로 짰고 손으로 짜서 값이 비쌌다. 터무니 없다고 할 정도로 비쌌고 나중에 브뤼셀 시내에서 구경한 크고 대칭이 꼭 맞는 레이스들의 몇 배 또는 10배도 넘어 비쌌다. 설명에 따르면 그런 정확한 레이스는 기계로 짠 것이고 실이 굵다고 했고 여기 것은 손으로 짜서 대칭이 꼭 맞지도 않고 약간 울퉁불퉁하댄다. 예쁜 레이스 들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선뜻 살만 한 가격이 아니어서 구경만 하고 세일로 파는 간단한 레이스를 몇 개 집어나왔다.


위 사진 뒤에 있는 것은 인형에 레이스 옷을 입힌 것이다.
이 집 문 앞의 장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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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돌아 나오면서 보이는 또 다른 성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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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걸어서 버스 정류장이 있는 광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광장에 있는 동상을 찍었다. 아마도 벨기에의 영웅으로 칭송되는 사람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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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타고 역으로 돌아와서 기차를 타고 벨기에로 갔다. 벨기에 역에서 택시를 타고 Metropole 호텔로 갔다. 이 호텔은 오래 된 호텔처럼 보였다. 그래도 내부는 꽤 고급스럽게 장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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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크인을 하고 방에 올라가니 방이 호화스럽다. 물론 우리나라 최고급호텔만은 못하지만 파리의 좀 후진 호텔에 비하면 훨씬 낫다. 크기도 큰 호텔일 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회의를 많이 하는 곳 같다.
나중에 다른 기회에 알게 되었지만 옛날에 유명한 물리학회를 여기서 연 적이 있었고 그 학회에 당시 유명한 물리학자가 다 모였던 것 같다. 그 사진에는 젊은 Einstein의 얼굴도 있었다.
호텔을 정면에서 올려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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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선전 수준이다.
짐을 풀고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오늘은 wife가 학생들에게 저녁을 한 턱 내는 날이다. 그 동네에 여행 책자에 나오는 집에서 그럴듯한 집을 잡았다. 호텔 맞은편으로 조금 들어가면 옛날(?) 수산물 시장이 있던 장소가 있고 그 부근에 호텔과 음식점이 있다고 되어 있었다. 예약을 했었던가? 어쨌든 여섯명이 걸어서 들어갔다.
걸어서 길을 건너고 도중에 다음같이 희한하게 집을 지은 것도 보고 (아마도 옛 문화재를 보호하는 방법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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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산시장 자리를 지나서(이 연못 둘레로 어린이용 기차가 있는데 지금은 운행하지 않는 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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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작은 차도 하나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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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색 창연한 건물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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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그 옆쪽에 있는 식당을 찾았다. 가는 길에 모두 이야기하고 사진찍고 하면서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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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을 가서 보니 예상했던 것 보다 예뻐서 앞에서 사진들을 한 장


이름은 La Villette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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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er가 specialty라고 써 있다. 들어가서 음식을 주문하고 먼저 맥주를 시켰다. 벨기에에서는 맥주를 마셔 보라고 해서 각자 한 잔씩정도 시켰는데 무슨 맥주가 뭔지 몰라서 주인에게 알아서 5잔인가를 여러 가지로 가져다 달라고 했다. 모든 사람들이 나온 맥주를 한 모금씩 맛을 보았는데... 체리 맛 맥주도 있었고, 정말 여러 가지이고 맛도 단순하지 않은 것들만 골라 주었다.



맥주를 갖다 놓고 메뉴를 보고 있다. 주문하는 사진


장식은 이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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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은 다음과 같다. 작은 와인잔에다 맥주를 따라서 맛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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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여기가면 홍합접시를 꼭 먹어야 한다고 해서 물어보니 자기네는 직접 잡아오는 홍합만을 쓰지 멀리서 수입한 것은 안 쓰는데 요즘은 철이 아니라서 홍합이 없댄다. 나중에 다른 식당에서는 먹었지만 그건 맛있는 홍합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생선과 스테이크를 주문했는데, 주문한 메뉴는 다음과 같이 예쁘고도 맛있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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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디저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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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마치고 나왔는데 어두워진 광장에 볼켜진 식당이 예뻐서 다시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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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차도 안 맞는데 며칠 돌아다니니 몸이 힘들어서 다음날은 꽤 늦게 일어났다.
이 호텔 방은 아주 작아서 queen사이즈 침대를 제외하면 별로 자리도 없어서 가방을 제대로 펴 놓기도 힘들지만 bath room은 이에 비하면 아주 훌륭하다. 한 장 찍어 두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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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목욕탕에서 마음에 드는 것은 오른쪽 벽에 붙어있는(사진에는 안 나오는) radiator이다. 쇠로 만든 둥근, 또는 얇은 판 모양의 관들로 만들어졌는데 여러 개가 바닥부터 천장까지 되어 있어서 거기다 빨래나 수건을 걸어 놓으면 순식간에 마른다.

아침에 아침은 먹었지만 또 자고 그리고 느지막하게 나오니 점심 먹을 때다. 어디 갈까 하다가 호텔 바로 아래쪽에 지나가다 본 일식집이 있어서 들어갔다. 시간이 맞지 않아서 사람이 없지만 뭔가를 시켜서 먹었다.
디카가 이상한가 메모리 부족인가 (메모리 부족은 아닌데...) 어쨌든 사진 찍은 것이 몇 시간씩 빠져 있다. 매일 저장했는데 아마도 저장하는 과정에서 날라가는 것인지...
이 식당의 사진은 두 장 만이 남아 있다. 아마 오후 2시 경이라고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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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에 아마도 호텔 근처의 옷파는집에 갔었지... 우리나라 보세집 수준이다. 좋은 옷을 고르려는 것은 아니고 그 길 따라 있는 집이라 들어갔는데 물건 파는 것도 우리나라 보세집과 똑 같다. 값도 괜찮고 한 두 가지 사가지고 왔나부다. 오후가 한참 지나서 어디 한 군데 들러보자고 피카소 박물관이었나 들렸는데 이미 문닫는단다. 저녁때는 계획이 있어서 다른 곳을 보지 못하고 그냥 거리 구경을 하기로 했다.

박물관 근처의 뒷골목에 있는 작은 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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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은 속의 건물 문 앞에만 갔다가 포기하고 밖에서 사진 한 장.
그 동네 길을 가는데 영화 Trois Couleurs에서 인상 깊게 본 것이 눈에 띄어서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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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계획된 음악회가 소르본느 대학 근처에서 있어서 대학 앞으로 택시를 타고 갔다. 간단히 생각한 것은 학교 안을 구경해 보고 가려는 것이었는데 아니 학교 건물 문 앞에는 수위인지 경찰인지 몇 명씩 막고 서 있으며 학생이나 교수가 아닌 사람은 들여보내 주지 않는다. 항상 그래 왔을 것 같지는 않은데 911 테러 이후에 강화된 보안정책인가? 어쨌든 오늘은 아무 일도 제대로 풀리지 않는 것 같다.
저녁식사 할 곳도 마땅치 않아서 지도를 보고 방향을 잡아 판테온이 있는 거리로 갔다.
판테온 앞 거리에 식당이 몇 개 있었고, 그 곳에서 길 가에 있는 sandwich 집에 들어갔다. 시간이 많지 않았던 관계로 간단히 식사 거리를 찾았는데 먹음직스러운 wrap을 앉아서 먹었다. wife는 묘한 dressing이 얹힌 wrap을 먹었는데 아주 맛있다고 했다. 내가 맛을 봐도 괜찮았다. 이게 뭔가 하고 물어보니 Hummus란다. 그래서 주인보고 어디서 왔냐고 하니까 중동 어느 나라인가를 댔는데 나라는 기억이 안난다. 흠 미국에 가서 찾아봐야지 했는데 나중에 우리집 앞의 마켓에 가니 산처럼 쌓아놓고 팔고 있다. 그 전에는 그렇게 많은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가게 안에서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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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테온 앞에서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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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찾아가는 곳은 판테온에서 북쪽 골목으로 내려가면서 있는 작은 성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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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을 따라 내려가면 오른쪽(사진의 왼쪽)으로 문이 있다. 문에서 들여다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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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문이 보이는데 낡았지만 아담한 성당이다. 오늘은 이곳에서 피아노 독주회가 있다. 시간이 조금 일러서 아직 아무도 안 왔고 우리는 한번 들어가 보았다.
성당 이름은 Eglise St. Ephrem 이었나보고, 폰서트 이름은 Chopin et Mozart aux Chandelles 라고 되어 있다. 거기서 받은 프로그램 종이는 어디있는지... 내가 써 놓았던 종이에 써 있기로 피아노 연주자는 Mathieu Lamboley이다. 아 성당 주소도 있네...

17 rue des Carmes, M˚ Maubert Mutualite

이다. 들어가니 정말 작은 성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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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십명 정도 앉을 수 있는 나무 의자에 앞의 단에는 그랜드 피아노가 있다. 위에 보이는 것이 본당 전부이고 하얀 커튼 뒤에 제단이 있는 것 같고 안쪽에 좌우로 문이 있어 건물 옆으로 십자모양으로 방이 있다. 시간이 남아서 판테온 쪽 길을 좀 더 돌아본다고 다시 위로 올라갔다.
올라가 보니 판테온 바로 뒤에도 성당이 하나 있어서 거기도 들어가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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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옆에 성당 이름이 붙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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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당은 꽤 큰 성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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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러보고 나와서 다시 작은 성당으로 돌아와서 성당 안뜰을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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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안뜰에 있는 창고와 화장실이다. 화장실은 수세식으로 깨끗했다.
구석에 자라는 식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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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정문을 옆에서 올려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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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 들어가 보니 이제는 불을 켜 놓았다.
커튼 뒤로 비쳐보이는 것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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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서 본 성당 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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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아 있으려니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서 한 30명 정도가 찼다. 본당 안쪽의 불은 꺼지고 밖의 촛대에 불을 붙여서 진짜 촛불을 켜고 피아노 연주회를 한다. 피아니스트가 나와서 인사를 하고 나이는 30대쯤 되어 보이는데 잘은 알 수 없다. 익숙한 Chopin이었던 것 같고 Mozart는 잘 모르지만 모짜르트 다운 곡이었던 듯 한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연주는 훌륭했고 한 시간 반 정도 연주를 들었다. 어두운 곳이지만 분위기는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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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데다 넓은 곳도 아니어서 사진기를 켜기도 미안해서 사진은 간신히 한 두장 찍었다.

이 음악회는 성당이 주관해서 몇 성당에서 돌아가면서 연다. 값은 싸고 이런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만 소문을 듣고 온다고 하는데 외국에서 보러 오는 사람들도 많다고 해서 인터넷으로 예약을 하고 보러 왔다. chamber music도 있는 것 같고 같은 날 두 곳에서 열기도 한다. 일주일에 몇 개의 음악회가 이런 작은 성당에서 열리나보다. 어쨌든 기분 좋은 음악회는 구경해서 낮에 아무것도 못 본 것은 다 보상된 듯 하다. 나와서 동네를 돌아보았다. 밤이라 조금 어떤지 했지만 큰길이라서 이곳에서 거리를 걸어보다 밤 늦게까지 여는 마켓에서 과일이랑 쵸컬릿을 사 가지고 지하철을 탔다. 거리에서 찍은 사진이나 마켓에서 본 허름한 옷을 입은 남자를 몰래 찍었던 것은 사진이 모두 사라지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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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다가 콩코드 광장에서 내렸다. 밤이지만 차들도 있고 해서 광장에서부터 걸어서 호텔로 돌아왔다. 콩코드 광장에 있는 오벨리스크(obelisque)를 보았다. 이집트에서 가져온 네 개의 오벨리스크가 파리에 있다고 댄 브라운의 소설 Angels and Demons에 나와 있었다. 댄 브라운의 소설 내용을 따라가는 투어도 있다는 소문을 들었었으니 다른 것은 몰라도 이건 볼까 했는데, 정말 큰 돌조각이고 금을 입힌 조각이었는데 밤이라 자세히 보기는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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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서 본 조각은 정말 정교한 것이었다. 내용은 공부를 해야 알겠지만 배를 그려 놓은 것 같다.
샹제리제 거리를 이쪽에서 개선문쪽으로 올려다 보면 다음과 같다.
밤거리가 전혀 우리나라처럼 휘황찬란하지 않다. 사실 걸어가기 조금 무서울 정도로 어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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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개선문이 보인다.
이 길을 따라 걸어가니 오른쪽에 보이는 빵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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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뒤쪽으로 대통령이 살고 있는 무슨(?) 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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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도 없는 샹젤리제 길을 왼쪽 오른쪽 번갈아 구경하며 호텔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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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간만에 시간이 나서 예전에 올리던 글을 계속해서 올려 본다. 사실 사진도 다른 곳에 있어서 못보고 있었는데, 두 달 전쯤 노트북을 가져왔으니 이제는...???)
샌드위치를 하나 먹었으니 Marche에서 나와 지하철을 타고 Notre Dame으로 향했다. Notre Dame 성당은 파리의 중앙 쯤에 세느강에 있는 섬(맞나?)에 있다. 어쨌든 전날 세느강에서 보트 투어를 하면서 봤었으니까...

역에서 나와 보니 성당이 조그만 한 블럭 다음에 있다. 별로 넓지 않은 길을 돌아 나가니 성당 앞 마당이다.

마당에는 관광객들이 많이 보인다. 성당을 향해서 가니 마침 저녁 5시가 되어 미사가 시작된다고(?) 종이 울린다. 우리는 잠시 주위를 둘러보고 정문의 조각을 조금 보고 성당 안으로 들어가기로 하였다.
정문의 조각들은 매우 정교하게 조각된 것이지만 문외한이라 잘 모르겠고, 세 개의 문 가운데 가운데 문이 제일 크고 그 양쪽으로 아마도 12사도의 조상이라 생각되는 조각이 있다. 다음은 가운데 정문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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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의 여섯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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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의 여섯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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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오른쪽 (강가 쪽)에 있는 숙소 같은 건물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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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작은 광장?) 한쪽으로는 다음 동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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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으로 들어가니 많은 사람들이 와서 미사가 시작되었다. 익숙하지 않은 캐돌릭 미사지만 같이 오신 주선생님은 원래 성당에 나가시는 분이라 몇 가지 설명을 해 주셨다. 이제 1년이 다 되어가니 기억나는 것은 없지만... 단조로운듯 한 미사에도 처는 안에 들어가 앉아서 미사에 참석하였고 나는 굵은 로프 바깥 쪽을 돌아보며 구경하였다. 안에는 사람이 많았으며 반 정도는 의자에 앉아 미사를 드리고, 나머지는 밖에서 성당을 구경하였다.
  성당 안 정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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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쪽에 가서 보니 신부님이 미사를 드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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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그래도 역사가 깊은 성당이고 또 Dan Brown의 The Da Vinci Code 때문에 궁금하기도 해서 양쪽 벽 위쪽을 보았다. 그 소설에 나온 것 처럼 위쪽의 Rose가 보인다. 저녁때고 햇빛이 별로 없어서 밝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화려한 유리창이 양쪽으로 보인다.
  다음은 북쪽의 rose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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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것은 반대쪽에서 찍은 남쪽 ros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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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는 보이지 않지만 매우 화려한 것이라고 생각되고 햇볕이 있을 때면 아름답게 보일거라는 것을 잘 알 수 있었다.
  양 쪽 벽에는 몇 개의 조상이 있었는데 그 중에 나도 알 수 있는 쟌다르크의 조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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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잘 나오지 않았지만 받침대에 Sainte Jeanne d'Arc 1412-1431 이라고 적혀 있다. 여기 있는데 마침 옆의 회랑에서 사제들이 쇠줄에 매달린 쇠바구니에 향불을 붙이고 흔들어 연기를 내면서 걸어나가는 의식을 시작했다. 예의가 아니면서도 사진을 한 장 찍었다. 관광객들 틈으로 걸어나갔다. 향연기가 푸를 빛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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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 뒤쪽을 돌아보니 안쪽은 철문을 닫을 수 있게 해 놓았는데 지금은 열려 있었고 옆쪽으로 다른 회랑으로 들어가는 문도 있고 맨 뒤쪽에는 성당을 지을 당시의 토목공사를 모델로 만들어 전시하고 있었다. 한 바중앙의 안쪽에는 사제들이 앉는 듯한 자리들이 마주보며 있고 이 위쪽으로 파이프오르간이 보인다. 어두워서 간신히 찍은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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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서 나올 때 쯤 해서 미사 마지막에 젊은 사제가 올라와서 성가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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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단 위에서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분명히 여자인데 노래는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곡도 아름답고 목소리도 여성으로 알맞은 굵기(메조소프라노쯤 되어 보이는)에 특히 목소리가 아주 예뻐서 성스럽다는 느낌이 절로 났었다. 길지 않은 성가를 끝으로 미사는 끝났고 나는 밖으로 나와서 다른 사람들을 기다렸다.
성당에서 광장을 바라본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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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을 나와서 왼쪽으로 다리를 건너면 바로 세느강 남쪽이 된다. 거기서 가까운 souvenir 가게에 들어가 그림을 몇 장 사고나서 저녁을 먹으러 식당을 찾았다. 어디서 먹을지 잘 몰라 고민하다가 그 근처에서 먹기로 하고 한 블럭 남쪽으로 내려가서 오른쪽으로 곡목을 돌아 들어가니 식당이 여러 개 있다.
여기서 괜찮아 보이는 일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비교적 깨끗한 식당이고 동양사람이 주문을 받아서 식사를 했다. 안쪽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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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리에서 밖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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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보인다. 식당 이름을 잊어버렸고 노트르담에서 내려오다가 첫번째인가 정도에 오른쪽으로 들어와서 골목 하나 정도 지난 곳이다. 맛있게 저녁을 먹고 나와서 강 겅너에서인가 노트르담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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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택시를 타고 Louvre 박물관을 슬쩍 보기로 하였다. 박물관 가운데 가장 유명한 곳이지만 못볼지도 몰라서 가는 길에 들려보자 하였는데 전시 시간은 다 끝났지만 Hall은 들어가 볼 수 있었다.
밖의 전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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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 한 가운데에 그 유명한 유리 피라미드가 있고 이곳을 통해서 들어가게 되어 있다. 이곳 문으로 들어가면 경비원들의 몸수색을 거쳐서 에스칼레이터를 타고 밑의 광장으로 내려가게 되어 있다. 에스칼레이터에서 아래쪽 홀을 내려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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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라 사람이 별로 없지만 우리처럼 구경하는 사람도 몇 있었다. 가게도 모두 닫고 먹을 것도 없고 그냥 빈 박물관 지하층을 돌아보았다. 한 쪽으로 가니 소설에서 중심소재가 된 거꾸로된 피라미드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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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피라미드는 유리로 만들었고 그 아래 쪽에 바로된 돌로 만든 피라미드가 꼭지점을 거의 맞대고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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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사이에 약간의 간격은 아마도 온도차에 따라 신축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넉넉히 공간을 둔 것이겠지. 꼭 맞추면 더 멋있을 것도 같지만 깨지기 십상이리라. 소설에서는 이 밑에 막달라 마리아인가가 잠들어 있다는 식으로 끝났던거 같은데...  뭐 무슨 이야기는 못만들까?
이리로 해서 옆쪽 회랑으로 돌아나가니 직접 지하철역으로 통했던가 싶고 이리로 해서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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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자의 개인적 생각을 모아 두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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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서울대에서 일이 있어 토요일을 종일 거기서 고성은교수님과 함께 보냈다.

가서 보니 여러 행사가 있네. 우리 행사 외에도 대수위상기하학 컨퍼런스가 한창이고, 대학원 면접시험도 있다고 하고...

수학과 사무실에서 대기하고 있는 동안 오랜만에 몇 분 교수님들을 뵈었다. 순서대로 한종규교수님, 강정혁교수님, 김명환교수님, 그리고 신임이신 김판기교수님 등이다.

몇 년만이지만 강정혁 교수님이 예나 마찬가지로 기타 연주를 들려주셨다. 연구로 바쁜 중이지만 틈틈이 기타 연습을 하시는가보다. 최근에 쓰신 상당히 긴 논문이 좋은 논문집에 실렸다고 좋아하신다. 그 대신 기타연습을 못해서 서운한 모양이다. 아마도 50대 후반일텐데 아직도 동심이 엿보인다.

연주를 듣다가 예전에 연주를 녹음해 둔 것이 있다고 하시네. 들어보자고 하니 mp3 파일로 컴에서 들려주시는데 같은 연배이신 한종규교수님이 파일로 녹음해주셨다고 한다. 근래에 한것인줄 알았더니 2001년으로 되어 있다. 나이 드신 분들이 한 거라 앞부분에 빈 시간이 좀 있고 (아마도 준비하는데 걸린 시간인 듯) 두 곡을 한꺼번에 녹음하셨는데, 나도 이런 파일을 다루는 프로그램을 쓸 줄 모르고 해서 그냥 올려두어 보려고 한다.

연주자의 허락을 받은 것이고 나이 많은 수학과 교수님의 기타 연주는 우리나라에서는 별로 흔치 않을거라는 생각에서 연주의 내용과는 상관 없이 재미있는 자료라고 생각된다. 연주는 내 생각에 연습을 잘 못하는 아마츄어로는 괜찮은 연주라고 생각된다. 단지 뒷 곡의 트레몰로는 연습부족이 확연하다.

Fernando Sor의 Estudio 24번이래나 하는 유명한 곡과 더 유명한 Tarrega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Recuerdos de la Alhambra)이다. 이것을 들으면서 과기원 수학과의 서동엽 교수님이 학창시절에 연주하던 Sor의 마적 주제에 의한 변주곡이 생각난다. 아직도 가끔 연주하는지... 아까 낮에 위상수학 컨퍼런스에서 잠깐 얼굴을 보았는데, 그때는 기타연주를 들을 지는 몰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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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둘 째 날 아침을 호텔 로비에 있는 홀에서 먹었다. 식사는 별로였다. 씨리얼은 fiber 많은 것이 없었고, 빵/크루아쌍, 햄, 우유, 쥬스, 요구르트, 사과 정도였던 것 같다. 모두 찬 것 뿐이고, 커피/티 만이 따뜻한 것이다. 그냥 요기를 하고 방에 와서 나갈 준비를 했다. 시차 때문에 오전에는 졸려서 길에 나선 것은 10시도 넘었던 것 같다.

길에 나서면서 제일 먼저 본 것은 길거리에서 파는 그림이다. 바로 개선문 옆에서 널어놓고 팔고 있었다. wife는 관심이 있는 것 같았지만 나중에 보자고 하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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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날이 맑아서 어제 같이 우중충하지 않아서 좋았다. 우선 개선문을 다시 보고 사진을 찍었다. 개선문은 올라갈 필요가 없다고 해서 생각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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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젤리제 쪽으로 가서 와이프를 한 장. 그리고 둘이 함께 한 장.
오늘은 어디부터 시작할까 하고 상의했었는데 우리보다 이틀 늦게 도착하는 팀이 어디를 보고싶어할지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잘 안 갈 것 같은 곳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그래서 잡은 것이 파리 북쪽에 주말에만 열리는 Flea market이었다. 이 곳은 내가 생각하기에 유명한 곳을 다 보고 나서 갈지 말지 하는 곳이었는데 내가 그런 곳이 있다고 하니 wife도 주선생님도 다 찬성하여 가 보기로 하였다. 인터넷에 나와 있는 곳이 여러 곳이어서 물어봤는데 호텔에서 역을 가르쳐 주었다. 내가 읽은 것과는 지하철 노선이 달랐지만 비슷한 곳이어서 그리로 가기로 하였다.
지하철은 타고 가는데 이런 지하철이 다른 곳으로 간다. 자세히 보니 그 지하철은 두 개의 지선으로 갈라지는데 다른 것을 타고 말았다. 얼른 내려서 반대쪽으로 가서 다시 돌아와서 제대로 된 것을 타고 갔다. 실수가 연발이다...
내 가이드 책에도 나와 있었는데 찾아보지도 않았다. 그냥 인터넷의 설명과 지도만 가지고 Porte de Saint-Ouen 으로 갔다. flea market (Marches aux puces)의 이름이 Saint-Ouen이어서 이 역을 가르쳐준 모양이지만 나중에 책을 보니 역은 Porte de Clignancourt에서 내려서 사람들을 따라가라고 되어 있다.

어쨌든 Saint-Ouen 역에 도착한 우리는 길에서 사람들에게 물어보기 시작하였다. 셍 우엥 역 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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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ulevard Ney 를 따라 가다가 중간에 길을 건너서.
그냥 걸어서 끌리냥꾸르 역 까지 왔다. 이 중간에 사람들이 많은 시장이 있어서 들어갔었지만 이곳은 그냥 그로서리를 파는 길거리 시장이다. 이곳을 지나가기도 쉽지 않았지만 결국 다시 나와서 이곳 네거리 까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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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켄터키 닭들이 원정나온 곳에서 몸무게를 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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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쪽 사진에서 보이는 길쪽 (북쪽)을 향해서 길을 건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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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다시 물어보면서 그리로 가니 흠 거기서부터 길거리 시장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생각했던 미국식의 Flea market이 아니다. 개인이 자기 물건을 가지고 나온 것이 아니고 작은 가판대들이 마치 옛날 청계천 시장 처럼 시내 고속도로 옆 작은 길을 따라 쭉 서 있었다. 그리고 파는 물건들은 다양했지만 우리가 구경하고 싶은 것은 별로 없어보였다. 조금 실망하고 그 길을 따라 들어가 보았다. 그런 가판대가 계속되는데 중간에 옆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다. 조금 달라 보여서 이리로 들어가니 그곳은 아마도 상시로 여는 상점들이 들어서있는 complex이다. 이름은 Marche Dauphine이라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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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책에 있는 유명한 Marche들은 있는 줄도 몰랐지만, 한 곳을 찾았다. 이곳의 가운데로 들어가니 분수가 있는 광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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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는 2층으로 되어 있는데 섹션별로 여러 가지 낡은 물건들을 판다. 여기를 구경해 보기로 하였다.
나도 내 나름대로 여기 저기를 구경하면서 사진을 좀 찍고 중고서적집들을 들어가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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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집들이 많이 있었다. 골동품 사진기 관련 물건만 파는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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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편쪽에 책들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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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길 바닥은 나무를 잘라 맞추어 마루를 만들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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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 째 책방에 들어갔다. 책방 주인에게 science 관련 책이 있는가 물어보았다. 그는 선반 하나를 가르쳐 주었고 그 곳에 몇 권이 있었다. 수학 책도 몇 권 있었는데 조금 오래 된 책이 있었지만 별로 관심이 가는 책은 아니다. 여기서 수학책을 예정은 아니었는데... (중고 책은 세느강 남쪽 강변에 있는 고서점들 밀집지역에 가 보라고 되어 있었다.) 혹시라도 건질 것이 있는가 하고 둘러 보았지만 마땅한 책을 없었다. 이 책방에서도 Hadamard가 쓴 기하를 따라서 다시 쓴 책이 한 권 있었는데 40유로인 것을 조금 깍아주겠다고 했지만 사지 않았다. Hadamard의 책이라면 몰라도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 책이니, 내용이 중요한 것도 아니고 살 이유가 없다. 책방에 따라서는 안 쪽을 깔끔하게 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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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은 바깥쪽 길가에도 책장을 늘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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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퉁이집 주인은 밖에 의자를 놓고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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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큰 책방이 있었다. 이곳에는 오래된 (100년 넘은) 수학책도 몇 권 있었는데 역시 알려진 사람의 책은 아니고 값이 100유로가 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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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입구에 있는 샌드위치 집에서 샌드위치를 먹었다. 그런데 들어있는 고기가 거의 육회 수준의 햄이다. smoking만 하고 익히지 않은 것 같았다. 고기는 반 정도만 먹은 것 같다.

입구의 골목에서 앞의 상점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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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Marche의 반대쪽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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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을 나와서 flea market의 끝 까지 가 보았다. 가는 동안의 거리는 이렇게 복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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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끝까지 가니 거기는 정말로 한 사람이 물건 몇 개만 가지고 나와서 팔고 있었다. 그리 많지 않았고 쓸만한 물건도 별로 없었다. 어쩌면 새벽에 다 팔렸는지도 모른다.
후진 것들만 갖다 놓고 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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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고 이 방향으로 꼐속 가면 우리가 왔던 역이 나온다. 끝날데쯤 해서 갑자기 큰 책방이 있었다. 여기도 수학 책은 별로 없었지만 문과 책은 정말 많았다. 잠시 들어가 보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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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류별로 분류된 책장이 좌 우로 늘어서 있다. 왼쪽 안쪽으로도 책장이 가로로 늘어서 있다.
이미 오후가 되었다. 이제 가서 볼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여기서 지하철을 타고 Notre Dame 성당으로 가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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