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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학회를 거퍼 했다. 아마 욕심이 과한 탓이리라.


우선 AMC2013은 아시아 수학자들의 모임이다. 별로 계획이 잘 되지 못한 듯한 이야기도 있었지만 생각보다는 잘 치루어진 것 같다. 부산 벡스코에서 6월 30일(일요일) 저녁 무렵부터 시작하여 7월 4일(목요일) 점심 때 끝났다. 내가 맡은 것은 Session 1의 sub-organizer쯤에 해당되는 일이다. 세션 1은 3 가지 전공이 함께 묶인 세션이어서 각 전공마다 한 분씩 3명의 오거나이저를 가진 세션이다. 나는 수학사 파트를 맡았고 국내 2명 국외 2명의 invited speaker를 모셔왔다. 발표할 사람이 없으면 어쩌나 하고 우려했는데 아시아에서도 여러 사람들이 발표를 신청하여 배정된 시간 slot을 꽉 채웠으니 예상 밖의 일이다. 


수학사 파트는 화요일 저녁에 시작하였지만 나는 일요일 저녁부터 가 있었다. (덕분에 일요일에 김홍종 교수가 조화평균에 대하여 소개하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강연도 들을 수 있었다.) 원래 계획으로는 한 이틀은 학회는 신경쓰지 말고 이 학회 이후에 계속해서 열리는 수학사학회의 여름컨퍼런스에서 발표할 내용을 준비해야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학회장에 오고 이사람 저사람 만나고 하다 보니 책을 들여다볼 시간은 없었다. 그리고 화요일 밤에는 나랑 같은 숙소에서 묵은 왕승호 박사와 밤 늦게까지 수학 이야기를 하다 보니 결국 나중에 내가 발표한 내용은 이 때 이야기한 내용으로 대체되게 되었다.


화요일 오후의 발표는 이상구 교수님의 발표로 시작되었고 네팔에서 오신 교수님의 발표 하나로 끝났다. 또 한 분의 발표자는 결국 오지 못하여 발표가 cancel 되었다. 저녁에는 만찬이 있었는데 수백명 (아마 6-700명 정도)의 참가자가 부페 식사를 하는 것은 거의 disaster라고 할 수 있겠다. 긴 줄을 참고 서고 나중에는 새치기 아닌 새치기도 하여 decent한 식사를 마쳤다. 후반에 연주를 해 준 국악 연주단은 동양 몇 나라의 노래를 연주해 주어서 조금 나았던 듯. 부페이다 보니까 식사를 하면서 주최측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고 아무리 짧게 해도 여러 명의 이야기는 시간을 끌 수밖에 없어서 옥의 티라고 아니할 수 없다.


화요일 밤의 열정에 찬 공부 (나에게만 일방적인 공부) 덕분에 수요일 아침에 늦잠을 잤다. 8시 30분에 시작하는 세션에 거의 30분 늦게 도착해서 첫 발표는 못 듣고 둘 째 발표인 한경혜 교수님 발표도 반 밖에 못 들었다. 하지만 취안징 교수님의 발표는 제대로 들을 수 있었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역사와 관련된 사항들은 잘 집어서 새로운 방법론으로 만들어내고 있다고 생각된다. 모두 극찬을 한 발표였다. 


수요일 오후에는 수학사학회의 임원진과 편집진이 회의를 했다. 회의를 마치고는 초청강연자 두분과 함께 광안리 식당에 가서 회를 중심으로 한 한식을 먹었다. 식사는 괜찮은 수준이었고 두 분은 꽤 좋아한 듯하다. 숙소에 돌아오니 왕승호 박사가 컴퓨터가 고장나서 작업을 할 수 없다고 미리 서울로 간다고 나오는 것을 현관에서 마주쳤다. 보내고 들어와서 일찍 잤다.


목요일은 늦지 않아서 아침 강의부터 다 들었다. 첫번째 발표는 원래 대학원생이어서 구두 발표가 맞나 포스터 발표가 맞나 고민한 친구인데 발표를 들어보니 의외로 멀쩡한 내용이었다. 포스터 발표를 시켰으면 후회했겠다는 생각이 드는 내용이었다. 대수기하학의 발전 과정을 공부하면서 divisor의 관점에서 각 단계를 분석하고 있으니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밖에 할 말이 없다. 3번 째의 모리모토 교수님의 강의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고, 특히 시작할 때에 지적한 우리 ICM2014의 한국 수학사 부분의 기사 내용에서 잘못 된 부분을 지적해 주어서 얼굴을 둘 데가 없었다. 준비 위원회가 바쁜 관계로, 또 한국수학사의 내용에 대하여 별로 잘 알고 있지 못한 관계로 제대로 검토되지 않은 원고를 인터넷에 올려놓은 것이리라. 그래도 학회에 한 번쯤은 문의를 하고 조언을 구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구체적으로 작업을 한 사람은 잘 알고 있는 친구이어서 이야기를 전하는 선에서 줄이고, 그 내용을 모리모토 교수님이 지적하기 전에 상의를 해서 한국수학사학회 차원에서 검토 보완해서 다시 실을 수 있도록 해 주겠다고 했었다. 하지만 외국 분에게 지적까지 당하고 보니 조금은 안이하게 대처하고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목요일 마지막 시간은 홍성사 교수님께서 13세기 중국의 주세걸이 쓴 산학계몽이 조선과 일본의 산학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와 함께 이 두 나라 산학의 비교 발표를 해 주셨고, 그 차이가 생기게 되는 이유에 대하여 문제를 던져 주셨다. 마지만 시간인 김민형 교수의 plenary talk는 들어갈 수 없었고, 우리는 서둘러 지하철을 타고 부산역으로 향했다.


1시간 가까이 걸려서 부산역에 도착해서는 역 맞은편의 밀면집에서 밀면과 만두로 점심 식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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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5일간의 대장정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왔다. 이것은 공식적인 후기는 아니고 어느분인가가 학회 뉴스레터에 공식 후기를 쓰시기를 기다리며 간단한 기록을 한다.


HPM이 무엇인가는 앞에 짧게 소개하였지만 실제로 본 것은 이번이 처음. 일요일 오후에 여행가방을 끌고 DCC에 도착하여 처음 한 일은 선물로 주는 가방에 Proceeding과 ProgramBook을 넣는 일. 모든 사람들이 한 시간 가량 이 준비를 했다. 그리고 숙소로가서 가방을 놓고 나와서 갑천을 건너서 수목원을 산책하고 저녁을 먹으러 갔다.


대전 수목원은 정말 잘 되어 있고 많은 수종과 꽃이 있었는데 한 중간에 있는 공연장에서는 '국카스텐'이 공연을 하고 있는 듯. 그러나 대부분의 동행자들은 '국카스텐'의 이름도 모르는 분들. 무시하고 나무와 풀들을 보러 갔다.^^ (나무와 풀에 밀린 국카스텐ㅠㅠ)

수목원의 서쪽 반을 보고 빠져나가니 동네는 만년동. 먹자골목이 눈앞에 펼쳐졌다. 일요일이라 사람은 하나도 없는데 어디를 가나 찾다가 들어간 집은 칼국수와 뭔가 매운 것을 파는 집이었는데 사진찍은 것이 없는듯. 오징어와 두부 두루치기인가를 하나씩 시켜 먹고 막걸리도 한잔씩 돌리고 칼국수를 먹었던듯. 그리고 사람 하나도 안 다니는 수목원 담장길을 따라서 숙소로 돌아왔다.


저녁때가 되어 아까 낮에 받은 프로시딩이랑 프로그램북을 보는데 프로그램북에 어디에도 플레너리 강연의 초록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 안되는데... 열심히 찾아봐도 없어서 파일을 보니 플레너리는 삽입하지 않았네... 이런. 급히 학생에게 연락하여 세 페이지를 편집하고 인쇄소에 물어보니 일요일은 문을 닫았고 월요일 오전까지 일하기는 어렵다고, 그냥 복사집에서 하는 것이 빠를거라고 한다. 학생이 인터넷을 뒤져서 대전 토요코인 바로 밑에 있는 복사집을 알아가지고 김간사에게 전화하여 직접 뛰어가서 인쇄를 했다. 밤 11시에 가서 거의 한 시간 걸려서 한 듯. 이것을 다음날 아침에 프로그램북과 함께 나누어 주었다.


다음날 아침에 식사는 숙소 꼭대기의 식당에서 컨티넨털 스타일의 양식으로 하고 학회 개회식에 참석했다. 학회 동안 사진 몇 장 찍은 것은 나의 페북에서 보시기를. 개회식에 이어 단가 공연이 있었고 곧바로 Plenary 강연으로 들어갔는데, 나는 골치아픈 것이 시려서 들어갔다 나왔다 하면 시간때우기 작전을 썼음. 덕분에 무슨 이야기 했는지는 잘 모름. 홍교수님께서는 정말 열심히 들으셨는지 모두 재미있었다고 하셨던 듯 하다. 그리고 논문 발표 세션이 시작되었다. 한 세션 끝나고는 점심시간.  만년동에 나갔다. 이창구 교수님께서 일찍 오셔서 모시고 강교수님께서 소개하신 대나무밥집으로 갔다. 여러 가지 우리 음식이 나와서 맛있게 먹고 잘 돌아왔다.


저녁때는 동양사람들이 모임을 만들기 위해서 준비 발표회를 했는데 제목이 Preparatory Meeting for Asian HPM이었던가? 홍성사 교수님께서 사회를 보시고 발표는 전 한국수학사학회장이셨던 이창구교수님과 일본의 모리모토교수님께서 발표해주셨다. 이것은 경청하였는데 이창구 교수님은 조선시대의 수학과 이 때 사용했던 중국의 수학책들에 대한 말씀이었고, 모리모토 교수님은 17세기 일본의 위대한 수학자 세키 다카카즈의 제자 가운데 형제인 두 사람의 업적에 대한 소개였다. 


이것이 끝나고 만찬을 들었는데 DCC 2층의 식당에서 부페로 했다. 음식 수준은 괜찮은 정도. 그래도 간단한 회와 메일국수 그리고 충분한 메뉴와 디저트가 있어서 모두들 즐거웠던 듯 하다. 황선욱 교수와 바방(Barbin) 교수가 인사를 하고 몇 사람이 돌아가며 인사하고 식사했다. 우리는 일본 교수님들과 마주 앉아서 식사했고 내 앞에는 이소다 마사미 교수가 식사했다. 이 친구는 낮동안에 자기가 만든 여러 가지 교육용 자료를 보여주었고 여기서도 이런 이야기를 많이 했다. 특히 자기 어머니는 백제계 사람이어서 백제 사람들이 이주해서 사는 동네 이야기를 했다. 모리소바가 있는 것을 보고 너무 좋아했던 친구.

저녁을 먹고 헤어져서 숙소에 와서는 꼭대기층 식당에 모여 맥주 한 잔을 했는데, 맥주사러 나와 이상욱교수님이 나갔다 왔다. 넉넉히 6팩을 사와서 한 두팩을 마셨다. 나머지는 나중을 위해서 저장... 


다음날 아침은 일요일날 이승온선셩님이 사다 주신 토마토와 빵으로 때우고 나가서 플레너리 강연 듣다 말다 하고 세션을 돌아가며 듣고, 참석하신 박창균 회장님과 좌장을 바꾸어서 박회장님이 오후의 내 시간에 대신 좌장을 맡으시고, 나는 저녁때의 두번째 Asian HPM 사회를 했다. 이번에는 중국의 취안징 교수님의 중국 HPM의 역사 소개와 Chairman 바방 교수님의 본토 HPM의 역사 소개가 있었다. 이것이 끝나고는 아시안 HPM에 참석했던 몇분 교수님들과 저녁식사를 하러 만년동으로 갔다. 중국집 차이나공에서 식사는 했는데 음식은 그냥 그런 정도. 예산이 부족하니 어쩔 수 없는 듯. 그래도 거기의 최 연장자인 곽서춘(구오 슈 츈) 교수님은 매우 좋아하시는 듯. 술도 잘 드시고 부인과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바방 교수와 남편은 황선욱 교수님, 김성숙 교수님, 이상욱 교수님과 같이 즐거운 시간을 보낸 듯. 홍교수님 내외분은 곽서춘교수님 내외분과 잘 지냈고 모리모토교수님과 이소다 교수님은 나와 취안징교수님과 또 홍콩의 린선생님 그리고 시안에서 같이 오신 첸교수님과 모두 어울려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다. 

다시 들어와서는 꼭대기층에 갔었나 기억나지 않는다. 이승온 교수님은 아마도 학교일로 학교에 돌아가셨다가 다음날 오신댔나 해서 우리끼리만 올라갔던 듯.


그 다음날은 수요일이고 오전에 Plenary 강연을 듣고 워크숍인가가 있고는 Excursion으로 공주로 가기로 되어 있었다. 물론 갔다. 나는 발표준비를 해야 해서 빠졌고 홍교수님 일행은 공주는 보실 필요가 없어서 선운사를 향했다. 그런데 수요일 오후에는 비가 오기로 되어 있다고 해서 걱정이었는데 모두들 돌아올때까지 비가 많이 오지 않아서 다행이었던 듯. 나는 학회장 앞에서 간단히 식사를 하고 방에 들어가서 발표준비를 하려고 했으나 피곤하여 잠시 잤던 듯. 4시쯤 방이 더워서 1층에 내려와서 발표준비를 하니 어느새 모두 돌아와서 5시 반쯤인가 저녁먹으러 나가자고 한다. 조금 준비한 것을 뒤로하고 다시 만년동으로 나갔나? 가서 먹은 것은 내 기억이 맞다면 순두부. 모두 순두부를 먹고 이상욱교수님만 콩국수로... 그리고 들어와서는 꼭대기층에서 또 맥주 한 잔 하면서 이승온교수님 오시기를 기다렸다. 8시가 넘어서 회의가 끝나고 그리고도 조금 걸려서 도착하신 이승온교수님과 또 11시까지 마셨던 듯. 마신 양은 맥주 한 캔. 결국 발표준비는 못했다.


수요일 밤부터 태풍이 올라온다는 말이 있었는데 목요일 새벽이 되어 갑자기 바람이 엄청나게 불고 비도 좀 오고 해서 바람소리에 새벽부터 깨서 잠을 설쳤다.

오늘은 기필코 발표준비를 하려고 오전에 플레너리를 듣고 저녁때의 LOC 식사도 마다하고 낮부터 방에 들어간다고 했지만... 점심에 중국 교수들을 데리고 만년동에 다시 갔다. 곽서춘교수님과 취안징 교수님을 모시고 한국수학사학회 관계자들과 모인 자리라서 또 한참 식사를 했고 발표시간인 2시반이 다 되어서야 돌아왔는데... 다시 Jin교수님이 따님과 대전 구경을 한다고, 또 김성숙 교수님 생신이고 해서 케익이나 사야지 하고 둔산동에 나갔다. 윤혜순 박사님은 김창일 교수님 호텔을 옮기러 토요코인에 들리고, 그리고 나서 방에 들어와 피곤한 중에 준비를 한 1/4 정도 했는데 저녁때가 되어 다시 홍교수님과 식사하러 갔다. 이번에 간 집은 사리원면옥. 저녁은 이승온 교수님께서 사셨다. 돼지불고기와 냉면을 맛있게 먹고 소주도 한 잔 했는데, 돌아오니까 피곤해서 잠시 누워서 쉬고 해야지가 깜박 잠이 들어버렸다. 자다 깨 보니 새벽 2시반. 물을 한병 반을 마시고서야 정신이 들어서 발표준비를 했는데 한 시간 반 정도에 대충 끝내고 잠이 들었다. 


금요일 아침에 8시 20분에 눈이 떠져서 급히 간단히 요기하고 세수하고 (면도도 못한 채로) 9시 홍성사 교수님의 Plenary 강연에 참석했다. 한 5분 늦은 듯. 오후에 내가 할 발표 내용의 상당부분을 이 강연에서 해 주셔서 내 강연은 편해지게 되었다. 플레너리를 듣고 나서 다시 올라가서 짐을 싸가지고 체크아웃 하고 내려왔다. 오전 세션에 배교수님이 발표하는 것을 우리말로 하시는데, 갑자기 영어 해설을 조금 넣었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거기 있던 영문과 학생들과 번역 원고를 만들었다. 발표 20분 전에 시작해서 조금 하다 보니 도저히 불가능해서, 발표 시간을 다음분과 바꾸어 놓고 번역을 했다. 발표 시간 1분 전에 끝을 내고 나니 정신이 없다.

점심은 우리끼리 갔었나? 김소영 간사만 두고 우리끼리 사리원 면옥에 가서 만두 한개랑 냉면 한 그릇을 먹었다. 이번에는 김창일 교수님이 점심을 샀나? 맛은 괜찮은듯. 그리고는 들어와서 조금 있다가 마지막 우리 세션이 있었다. 첫째 발표시간은 나와 Jin Yuzi 교수의 발표 (발표는 Jin교수님이), 둘째는 나와 홍교수님 내외의 발표 (발표는 내가), 그런데 발표장이 달라서 이쪽에 있다가 저쪽 방으로 뛰어가는 식이었는데, 그런대로 무난히 넘어갔다. 발표는 준비가 안 된 것에 비해서는 그런대로 무난히 잘 한 듯. 영어야 그저 그러했지만 내가 준비를 잘 못한 홍정하의 부분은 아침에 홍교수님께서 잘 설명해 두셔서 나는 말만 꺼내고 자세한 부분은 안해도 되어서 다행이었다. 원리 부분만 자세히 설명할 수 있어서 그런대로 넘어가고 나니 좌장을 맡았던 Pengelley 교수가 자기도 비슷한 것을 공부한다면서 내 발표 부분의 한 가지가 흥미로왔다고 했다. 처음 보는 친구(나보다 4-5년 위인 듯)여서 뭐를 공부하나 홈페이지를 나중에 들쳐보니 Algebraic topology를 공부하면서 수학사도 강의하는 것이 나와 비슷한 것에 관심이 있는 친구인 듯. 내 발표 끝나고 홍교수님의 발표를 듣고 나니 학회 일정이 모두 끝났다. Closing ceremony에는 못들어가고 Jin Yuzi 교수 보내고 나서 학회가 파하니 모두들 헤어졌다. 나는 OC가 준비해온 쵸콜렛과 와인 선물을 받고 회의장을 모두 치우는 간사님 등의 일을 보고 거의 마지막으로 회의장을 나왔다.


올라오는 길은 수학사학회 간사님 등이 같이 올라오는 차편에 끼어탔고, 많은 물건들을 실어서 트렁크는 꽉 찼고 앞자리에까지 가방을 싣고 올라왔다. 역시 안성에서 고속도로가 막혀서 휴게소에서 저녁을 먹고 다시 올라오니 10시다. 거의 4시간 걸린 셈. 중간에 윤박사님을 내려드렸지만...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김간사님과 정박사님은 집이 가까워서 나를 내려주고 같이 떠났다.


써 놓은 것을 다시 보아도 먹은 이야기 밖에는 없고, 정신없이 지냈는데 별로 한 것도 본 것도 없는 것 같다. 결국 내가 빠진 저녁식사장에서 이상욱교수님이 나를 대신해서 학회의 계획을 외국 교수님에게 전했던 듯. 그래도 빠트린 일은 없는 것같고, 참가했던 사람들도 기분나쁜 기억은 없을 듯하다. 이것만으로도 성공적이라고 할만 한 듯. 가장 많은 일을 한 분은 배재대 김성숙 교수님이고, 그 다음으로 비슷하게 많은 일을 한 분은 숭실대 황선욱 교수님이다. 아마 학회 성공의 공은 이 두 분에게 돌려야 할듯. 


이 학회의 후속으로 몇 가지 학회가 계획되어 있다. 조만간에 중국에서 모임을 만들겠다는 취교수님과 2014년에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ICM의 위성학회를 일본에서 연다는 모리모토교수님이 있고 또 중국 하이난에서는 내년에 모임이 한가지 이미 계획되어 있다. 우리 학회로서는 갑작스럽게 국제화가 진행되는 듯하고 많은 사람들이 바빠지게 될거 같다. 모두 힘을 합해야 겨우 해나갈 수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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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상빈 2012.10.11 18: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뭔가 교수님들 모임같지 않은 분위기? 뭔가 진지하고 그럴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네오 ㅎ

    • 그로몹 2012.10.17 01:48  댓글주소  수정/삭제

      교수님들 모임 맞아요. 그래도 뭔가 내용은 조금 친한 친구들의 모임 같아서 진지하면서도 유머 있는 식으로 진행되었는데요. DCC의 양해가 있어서 주점부리를 많이 놓고 진행해서 파티 분위기가 물씬 났어요. 김성숙 교수님의 아이디어이고 또 대부분 몸소 뛰셨지만, 덕분에 학회는 성황이었습니다.

ICME와 HPM

수학/컨퍼런스 2012.07.06 00:15

ICME란 "국제 수학 교육자 대회"이고, HPM이란 "수학의 역사와 교육"이다. 이 둘은 국제적인 학회로서 올해에는 한국에서 열린다. ICME-12, 그리고 HPM2012라는 이름으로 ICME는 서울 코엑스에서 다음주 한주 동안(일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열리고, HPM은 곧이어 다음주 동안(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대전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다.


ICME는 정말 큰 학회여서 아마도 3000명 정도의 전 세계 수학교육자들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학회 동안에 수 많은 교육학 연구 발표가 있고 이 대부분은 외국 학자들의 발표이다. 재미 있음직한 논문이 제목만 보아도 많이 눈에 띈다. 나는 그 다음 주의 HPM에서 맡은 일이 한 두 가지 있어서 ICME는 형식적으로만 참석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ICME를 열심히 들으면 그 다음 주에는 너무 지쳐서 정작 맡은 일을 못 할 지경일 것이다. 우리나라 수학계 많은 분들이 지난 3-4년 동안 이 행사를 준비하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 이제 며칠 후면 그 결실을 얻을 때이다.


한편 HPM은  ICME의 위성학회로 열리는 학회로 비교적 조그만 학회이다. 참석인원은 200명 정도가 되리라고 예상하고 있다. HPM은 History and Pedagogy of Mathematics의 약자이고 유럽을 중심으로 수학사가 수학교육에 미치는 영향을 공부하는 학회이다. 조금은 개인적이고 소규모의 학회이지만 여러 가지 주제에 대하여 연구하는 것이 상당히 학구적인 학회이다. 


나는 한국수학사학회와 관련해서 이 학회를 조직하는 일에 관여하게 되었다. 수학의 역사는 오래 되었지만 이를 공부하는 것은 얼마 오래되지 않았다. 그러나 수학의 역사를 공부해 보면 생각보다 많은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일전에 중국 시안에 가서 거기서 유럽과 중국의 수학사가들을 만나보았지만, 그들은 수학교육과 관련된 연구를 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이번에 모이는 사람들은 주로 수학교육과 관련된 수학사 연구를 하는 사람들이다. 이번 모임에서 동양 수학자들의 수학사 연구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그 바탕이 되는 논의가 있을 것도 같다.


수학사는 역사 가운데서도 사람들이 가장 잘 모르고 또 관심도 없는 분야이다. 그런데 이 내용을 잘 보면 다른 역사가 보인다. 사람들의 삶이 보인다. 수학은 쓸데 없는 것을 절대로 하지 않는 분야였다. 이런 것은 아무도 필요로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학에서 어떤 문제들을 다루었는지를 보면 그 사회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이었는가를 알 수 있다. 실제로 역사를 들여다보면 현대인의 눈으로 보면서 이랬을 거야 하고 생각하던 것이 여지없이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 수학의 역사도 그래서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어째서 공부를 하는가,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가르쳐준다. 


역사를 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료를 남기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한 사람이 공부를 많이 하고 훌륭한 연구를 했어도 자기가 아는 것을 남기지 않으면 자기 한 사람으로 끝나버리는 것을 너무 잘 알 수 있다. 당연한 이야기임에도 직접 역사에서 보면 다르게 느껴진다. 우리 나라 수학 역사는 조선시대 역사만이 남아있지만 이것을 보아도 자료를 많이 남긴 때는 조선이 발전할 때 뿐이었다. 여력이 남아서 수학 자료를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것이 만들어졌을 때만 나라가 제대로 나아갈 수 있었을 것이란 것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지금의 우리를 보면 인쇄되는 수 많은 책들 가운데 정말 지금의 중요한 생각을 뒤에 전하는 그런 책은 얼마나 있는가? 외국과 비교해 볼 때 그런 책의 양은 너무 적다. 정부 정책에 따라 좋은 연구를 하고 훌륭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사람은 많아졌지만, 자기가 알아낸 것을 정리하고 남기려는 노력은 너무 적다. 결국은 다음 사람은 똑같은 것을 다시 반복해야 하고, 지금 잘 하는 사람도 지금 한 때로 끝나버릴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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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난주에 중국에 다녀왔다.

중국 시안(西安)에서 수학사학회를 하는데 참석차 다녀왔는데 아무런 obligation 없이 다녀온 것이어서 마음이 조금 편한 감이 있다. 물론 우리 학회 전 회장님을 수행하는 일이 있었지만...

중국말을 잘 하는 이박사님을 수행원으로 참여시켜서 정말 편했다. 안그랬으면 아마도 아무것도 제대로 못했을 것이다. 


중국은 두번째이고 2년전에 충칭(重慶)을 갔을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여행이었다.

충칭은 중국이 한국을 초대한 학회여서 대접이 융숭했었고 많은 사람들이 갔었지만 그쪽에서 우리에 대한 준비를 많이 했던 학회였다. 이번 학회는 물론 학회 준비는 많이 했지만 우리는 그리 대단히 중요한 참가자에 끼지 못하는 듯 했다. 


중국 안에서는 비교적 가까운 두 곳이었지만 전혀 다른 지방이었다. 정말 대비되는 두 도시였는데 충칭은 산지이고 시안은 평지인데, 충칭은 비가 많이 오는 듯하고, 수목이 잘 자라고 사천지방의 특색을 갖춘 시골같은 곳이었는데, 시안은 메마른 공기에 먼지가 많고, 커다란 성으로 둘러싸인 오래된 대도시의 면모를 갖춘 중국의 가장 오래되고 오랫동안 수도를 했던 도시의 느낌을 조금은 간직한 도시였다.


단지 이것이 이미 1000년이 넘은 옛날 이야기이다 보니까 현대인의 눈으로 보기에는 그리 impressive하지 않고, 지금은 중국의 변방같이 느껴지는 곳이 되어서인지 현대식 발전은 아직 많이 들어오지 않은 듯한 조금 이중적이면서도, 확실히 중국같지만 외국같은 느낌은 나지 않는 그런 곳이었다.


4박 5일을 있었지만 도착한 날은 학회가 없었고 떠나는 날은 아침 일찍 나왔으니 실제로 3일을 있었다. 이 가운데 2일은 확실하게 학회에 참석했고, 마지막날은 알아들을 수 없는 중국 사람들의 영어 강의를 뒤로하고 몇 군데 근처 관광지를 돌았다. 이곳은 예전 중국의 장안長安이라 불리던 곳으로 주周나라부터 시작해서 진나라 한나라 당나라 등의 수도였던 곳이어서 많은 유적이 있는 곳임에 틀림 없다. 몇 군데 절도 보고 싶었고 비림碑林도 한 번 봤으면 했지만 모두 못했다. 대신 마지막날 본 것은 반파촌半坡村이라는 신석기시대 유적지와 진시황릉이었다. 반파촌은 처음 듣는 곳이었지만 꽤 큰 유적지이고, 나중에 책을 읽어보니 20세기 후반의 중국 고고학 발굴의 성과의 하나라고 할만큼 중요한 유적지라고 되어 있었다. 상당히 오래전의 유적지임에도 거기서 출토된 유물들이 매우 발전된 형태를 띄고 있었다는 것은 놀랍다. 하지만 중국이 열심히 중국 주변의 문명이 반파와 같은 중국 중심의 문명에서 전파되었다는 것을 입증하려 했어도 실제로는 그러지 못하고 중국 전역에서 유사한 정도의 서로 독립적인 문명이 존재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많은 유적지를 발굴했다는 것은 아이러니컬 하기도 하다.


2000년 전쯤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했을 때보다 500년도 더 전부터 이지방이 중국의 중심지였다는 것은 내게는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던 것이다. 나는 장안이 중국 고대의 대도시의 하나라고만 생각하였지 이곳이 가장 오랜동안 수도였다는 것은 전혀 몰랐다. 그리고 중국의 전체적인 얼굴을 보면, 중국의 가장 오래된 문명인 하, 은(상)의 중국 중심지를 초기에는 서쪽의 변방의 부족들이 쳐들어와서 나라를 세우고 통치한 것이 주에서 당까지이고, 그 이후에는 동북쪽 변방 부족의 원과 청이어서 그들의 수도가 중국 서북쪽 귀퉁이와 동북쪽 귀퉁이에 있을 수 밖에 없었다는 것도 전혀 들어본 적이 없다. 이렇지 않은 중국의 나라가 몇 안되었고 이 몇 안되는 중화민족의 나라들은 정치면에서 그리 잘 통제되지 못했다는 것도 아이러니컬 하다.


결국 중국의 실체는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계속해서 침입해온 외세가 중국 땅의 백성들을 노예처럼 부리며 200~300년을 지속하는 것의 반복이다시피 한 것은 현재 중국이 단결을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생각하는 이유가 한족의 단결이라기보다는 이러한 외세의 침입 또는 내부에서의 반란을 두려워하는 부분이 더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너무 단순한 생각인가?


이번 학회의 중국측의 event는 고희가 된 李文林교수의 칠순잔치 겸 이미 40년이 된 중국과 프랑스 사이의 수학사 교류를 축하하는 event였고 이런 사실에 무지했던 나는 마지막날 저녁의 만찬장의 분위기를 보고서야 이 학회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었다. 사실 그 때까지는 단순히 학구적인 컨퍼런스라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1970년대초부터 프랑스 수학자들이 중국 (당시 중공)을 방문했던 것은 이문림 교수의 공로일 것이고, 이러한 유대관계는 중국(동양) 수학사를 유럽에 소개하는 창구가 되었을 것이다. 영국의 니덤교수가 중국 과학기술사에 대한 treatise를 집필했지만 꾸준한 연구는 프랑스가 더 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고, 특히 그 자리에 왔던 Martzloff 교수를 위시한 많은 프랑스 수학사가들이 중국말을 쉽게 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단순히 역사에 무엇이 있었는가를 기록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 의미를 철학적 입장에서까지 분석해보는 수준의 공부를 하고 있는 그들 중에는 20세기 부르바키 학파의 거장의 하나인 캬르티에 교수가 80의 나이에도 시안을 찾아서 발표를 하고 자신의 이야기로는 처음 시안에 온 것이 1972년이었다는 것이니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는 눈이 너무 좁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로 드는 생각은 능력 부족과 함께 수학공부하고 수학사 공부하고 중국말도 배우고를 다 할 수 있는 환경에 있는 그들이 부럽다는 것이다. 왜인지 우리는 이런 것이 잘 되지 않는다. 왜일까? 나만 혼자 못한다면 나의 능력을 탓하면 되지만, 그들은 모두 다 하고 우리는 모두 다 못한다면 다른 이유가 있을 터, 이런 것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사람이 나라 교육을 맡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중국은 아직도 갈 길이 멀어보인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있다는 것은 제대로된 일을 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고 이런 것이 빛이 나는 날이 올 것 같다. 우리는 특별한 노력을 해야지만 적은 숫자로 핸디캡을 극복할 수 있겠지... 거기서 본 일본 교수님들(나의 선생님뻘)도 이러한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이 여실히 보였다. 지금 잘나가는 일본의 학자라는 생각은 추호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번 여름에는 HPM이라는 수학사 학회를 우리나라에서 연다. 여기 왔던 사람들 가운데 몇 명은 거기도 참석할 것이다. 준비할 것이 훨씬 더 늘어난 것 같고 생각할 것도 많이 늘어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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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상빈 2012.05.30 04: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중국수학 수준이 아주 높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아닌가 보네요 ;;;;; 프랑스 수학자분들은 놀랍네요. 이런 분들 얘기들을 때마다 노력했어라는 말은 정말 함부로 하는게 아니라고 항상 생각합니다

    • gromob 2012.06.09 09:14  댓글주소  수정/삭제

      중국이 갈 길이 멀다고 한 말은 수학 수준을 말씀드린 것은 아닙니다. 중국 수학은 이미 수준이 높아요. 오래 전부터 서방 국가에 나가서 살았던 사람들 중에서 수학 공부 잘 하는 사람들이 1980년대부터 중국에 돌아오거나 방문해서 교육하고, 또 외국에 가서 공부한 신세대들이 돌아온 덕에 지금은 세계적인 수준에 가까운 학자들도 있어 보입니다.
      오히려 중국의 사회가 아직도 초기 걸음마단계 같아보인다는 것입니다.
      사실 프랑스는 생각 외로 놀라운데가 있네요.

학교 교우회보에 실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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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한적실(漢籍室)이 있는 대학원도서관 건물은 1952년도에 문과대학이 문리과대학으로 개편되었을 때 현재 이과대학 수학과와 물리학과의 전신인 수물학과가 처음 자리잡았던 곳이다. 이 건물 2층에 단촐한 사무실을 가지고 있는 한적실은 별로 찾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고려대학교가 소장하고 있는 한문으로 된 옛 서적들을 관리하는 중요한 곳이다. 사무실은 자그마해도 그 맞은편 좁은 회랑을 따라 들어가면 자물쇠가 걸려 있는 큰 도서실 두 개가 나온다. 이 안에 들어서면 다른 도서관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 펼쳐진다.

근래 멋있게 변모된 우리 캠퍼스나, 최신 시설을 자랑하는 우리 도서관들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환기가 잘 안 되어 먼지 냄새가 나고 조명 시설도 잘 되어 있지 않아 어두컴컴하지만 이곳에 붙어 있는 팻말들을 보면 이과 전공인 나도 잘 알고 있는 옛사람들의 장서가 여기 모여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충 보아도 몇 만 권인지 알 수 없지만 조선시대 학자들이 쓰고 모으고 공부하였던 오래 된 책들로 고려대학교에 기증된 듯싶은 책들이 서가마다 가득 가득 들어차 있다.

나는 2년 전쯤 고려대학교가 소장하고 있는 산학원본(算學原本)이라는 책을 찾기 위하여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한적실을 처음 찾았다. 산학원본은 17세기에 은산(殷山) 군수를 지낸 박율(朴繘)이 지은 산학(지금의 수학)책으로 18세기에 황윤석이 편집한 이수신편 23권에 산학본원이란 이름으로 들어 있다. 2년전 까지도 산학본원의 원전인 산학원본은 실전되었다고 알려져 있었다. 따라서 고려대학교 도서관에서 산학원본을 발견한 것은 매우 중요한 사건이 될 수밖에 없었다.

박율은 이 책을 통하여 13세기에 중국 수학이 전성기를 이룰 때 쓰여진 주세걸(朱世傑)의 산학계몽을 제대로 공부할 수 있도록 수학의 입문에서 어려운 계산법까지를 설명하였다. 많은 학자들이 단순히 유명한 책을 그대로 옮기며 해설을 붙이는 것과는 달리, 그는 산학계몽의 내용을 이해하고 정리하여, 산학에 필요한 기본 계산법으로 구고술(句股術)이라 부르는 피타고라스 정리와, 원과 관련된 공식, 그리고 천원술(天元術)이라 불리는 다항방정식의 해법, 등을 추리고, 이로써 당시 알려진 수학을 모두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을 보고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은 이 책을 저술한 시기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서양수학책인 수리정온보다 수십 년 앞섰으면서도 천편일률적인 중국 수학의 방법을 지양하고 통일된 관점에서 여러 계산법을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율이 17세기 중엽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현대적인 사고를 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오히려 19세기에 서양수학을 접했던 학자들보다도 훨씬 더 진보된 관점으로 현대수학의 핵심인 개념화와 구조화를 보여주는 책을 썼음을 알 수 있다.

산학원본 서문을 보니 조선 중기에 인조반정의 공신인 최명길의 손자로 여덟 차례 영의정을 지냈으며 스스로도 산학책을 저술한 최석정이 서문을 썼다. 이조시대의 수학은 주로 중인집안에서 배출되는 산학자들이 담당했었다. 그러나 옛 산학책 가운데 많은 것들을 양반 유학자들이 썼다는 사실은 놀랍다. 박율, 최석정은 물론 영의정을 지낸 조태구, 판서를 지낸 남병철, 남병길 형제, 유명한 유학자인 황윤석, 홍대용, 배상설, 조희순 등 많은 유학자들은 산학에서도 당대 최고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 조선이 많은 어려움을 뚫고 500년의 역사를 자랑할 수 있게 된 데는 그 중심인물들 스스로 경학과 함께 실용과학인 산학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것이 큰 역할을 하였으리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이런 놀라운 사실을 한적실 한 모퉁이의 낡은 책 하나가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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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학원본 개요

  • 算學原本은 양휘산법과 算學啓蒙의 계산법을 풀어 설명한 책이다.
  • 조선시대에 朴繘박율이 편찬하였으며 그의 아들 朴斗世가 간행(1700)하였다. 17세기 算書.
    • 朴繘(1621~?):본관 蔚山, 자 子明, 호 梧里. 은산 현감, 장령
    • 朴斗世 (1650~1733): 牧使, 中樞府知事. 要路院夜話記요로원야화기
    • 崔錫鼎 (1646~1715): 序文. 최명길(崔鳴吉)의 손자, 이조참판, 한성부판윤, 이조판서. 산서 九數略 저술.

최석정의 서문의 의미

최석정이 산학원본의 서문을 쓴 것은 지금 우리가 보기에는 큰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박두세가 최석정에게 서문을 부탁한 것은 잘 아는 높은 사람에게 서문을 부탁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그 서문을 쓴 최석정은 서문을 쓸 만큼 수학에 대하여 해박한 사람으로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최석정은 당대 이조판서를 지낸 조선 정치 및 정부의 중심인물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러한 그가 산학을 공부하였으며 산서 구수략을 집필한 것은 당시의 사대부는 물론 정부의 핵심인물의 하나가 당대의 수학자와 버금가는 수학적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단순히 수가 6예의 하나라서가 아니라 정치를 제대로 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방법가운데 하나임을 알고 있었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아니라면 정치에 바쁜 사람이 어찌 계속해서 산학자와 교류하고 산학을 공부하고 산학책을 저술하고 있었겠는가?)

이러한 사실은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을 가르쳐 준다. 작금의 정부 관료와 정치가들 스스로는 수학이나 과학적 방법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다. 조선 시대의 정치가 많은 잘못을 하였던 것 처럼 비판하지만 우리는 조선시대의 정치가나 관료 만큼도 과학적 방법론을 공부하고 사용하지 않고 있다고 보인다. 현재의 우리나라 정치나 국정 운영이 조선시대 보다도 못하다고 보이는 것도 이유가 있다고 생각된다.


崔錫鼎최석정의 서문


數於六蓺, 居其一, 君子屑用心焉.
6예에서 수는 그 중 하나를 차지한다. 군자가 달갑게 그에 마음을 써 왔다.

我東處僻, 業筭者, 率握齱無所識知儒學又靡暇, 余嘗病之.
우리 동방은 궁벽한데 처하여서, 산수를 업으로 하는 자는 대부분 작은 것을 붙잡아 지식이 없고, 유학자는 또 겨를이 없으니 내가 일찍이 그것을 안타깝게 여겼다.

從朴牧使斗世氏, 得其先大夫所著筭學原本一書, 而觀之儘數家之閫奧也.
목사 박두세로부터, 그 아버지가 지은 산학원본 일서를 얻어, 그것을 보니, 수가의 깊은 경지를 다한 것이었다.

盖數家以之分爲要妙. 之者, 子數也, 分者, 母數也.
대개 수가는 之分으로써 오묘함을 삼는데, 지는 자수이고 분은 모수이다.

九章列之, 分於諸篇之首,
구장은 그것을 펼쳐서 제편의 앞머리에 나누어 놓았다.

而古人以爲用筭之喉襟, 或以爲開筭之戶牖.
옛사람들은 산수의 사용에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했고, 혹은 산수를 시작하는 문이라고 생각했다.

其法誠有難解者至於開方一門,
그 법에서 진실로 난해한 것은 개방 일문에 이르러서 이다.

松庭朱世傑立天元號爲最深.
송정 주세걸의 입천원은 가장 깊은 것으로 불린다.

而今此書, 於九章諸篇, 發其通分會極之妙.
그런데 지금 이 책은 구장 제편에서 통분 회극의 묘함을 드러낸다.

立天元一法, 亦探朱氏之所未闡, 而指次甚詳.
입천원 일법도 주씨가 미처 드러내지 못한 바를 탐구했고, 순서(次)를 드러낸 것도 매우 자세했다.

揚子所云, “纖者入無倫.” 殆是之謂矣.
양자가 말한바 “자세한 점이 비교할 곳이 없을 정도이다.”라는 말은 거의 이것을 가리킨 것이라 하겠다.

余少時, 訪任郡守濬氏. 論及九數,
내가 젊었을 때 군수 임준씨를 방문하여, 구수에 대하여 논급했다.

其言頗精深, 今又見此書, 得以豁其蒙蔽, 庸非淺見之幸歟?
그 말이 매우 정심하였는데, 지금 또 이 책을 보니 나의 어리석음을 탁 트이게 해 주니, 어찌 천견의 다행함이 아니겠는가?

朴丈, 邃於經學, 旁通曆象, 惜其名位之未大顯也.
박장은 경학에 깊고, 역상에 널리 통하여, 그 명성이 크게 드러나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牧使君以才業世其家, 方宰晉陽, 謀入梓, 廣其傳. 余爲之, 精加校訂, 俾游蓺者, 有以沿求云.
목사군이 재업으로 그 집안의 대를 이어, 바야흐로 진양에서 수령을 하니, 판각하여 그것을 널리 전하기를 꾀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교정을 자세히 하고, 유예자(수학을 즐겨 공부하는 사람)로 하여금 찾아 구함이 있게 하려 한다.

歲庚辰孟秋完山崔錫鼎汝和甫序
때는 경진년(1700년) 맹추(음7월) 완산 최석정 여화 서문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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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romov 2008.12.22 11: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쓴이가 다는 커멘트이지만... 최석정 서문의 마지막에 나오는 遊藝者라는 말은 논어(?)인가의 글에 遊於藝라는 말에서 유래한 듯 하다. 홍성사 교수님의 강연에서 알게된 이 말은 수학을 포함하는 6예는 遊 즉 즐거워서 하는 것이라는 의미를 품고 있다. 최석정도 이 말에서 유예자라는 말을 사용하는가보다. (실제로 최석정은 본문에 游라는 글자로 사용하고 있지만 쓰려고 했던 것은 遊자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