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Roger Penrose가 쓴 책 The Road to Reality를 보게 됐다. paperbound로 된 두꺼운 책이라 잠시 빌려 놓고 언제 읽어볼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오늘 잠시 서문을 봤는데 수학 공식을 쓰지 않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기로 했다고 써있다. 그러니까 그냥 수학으로 설명한다는 말 같아서...
알라딘, 교보 등의 책방에 들어가니 한글 번역도 있다. 누가 이런 책을 번역하지 싶지만 정말 힘든 일을 했다고도 생각되고 여기 나오는 수학을 다 아는지도 궁금하다. 어떤 의미에서 이 내용의 일부분이 내 전공이지만 나도 잘 모르는 부분이 많은데...
하지만 책에 대한 평에 보니 사람들이 자연의 실체를 수학으로 설명해서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고들 썼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학생들에게 수학을 강의하면서 그리고 나도 수학을 이해하려고 고민하면서 깨달은 것 하나는 이미 어딘가에다 썼던대로이다. 즉 무엇인가에 대해 알 수 있다는 것은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어떤 틀에 이 새로운 무엇을 갖다 맞출 수 있을 때이다. 물론 정말 새로운 것은 잘 맞지 않는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틀들 가운데 가장 잘 맞는 것을 가져다 맞추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이것을 더 탐구해보다 보면 내 틀을 보완할 수 있게 된다. 즉 더 확장된 틀로 바꾸면서 이 새로운 대상을 이 새로운 틀로 이해하게 된다.
이 틀은 예전에 다른 것을 이해하는 틀이었으므로 이 새로운 틀은 예전에 알던 것과 이번의 새로운 것에 모두 맞춰볼 수 있는 틀이 되고 나는 이 새 틀에 익숙해지면서 이 둘을 (서로 비슷한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착각일 수도)을 가지게 된다.
펜로즈 교수가 이 책을 쓸 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아직 책을 읽어보지 않아서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사람이 자연의 법칙을 이해하고 그에 대해 무엇인가를 쓰려고 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자연의 법칙 또는 물리의 법칙을 여러 가지로 설명한 것을 보고 여기서 하나 또는 그 이상의의 새로운 관점을 보았을 것이다. 이것이 현대물리와 같이 복잡하고 이상한(!) 것이다 보니, 위에 설명한 바에 입각해서 보면, 이것을 이해할 수 있는 틀이 별로 없다. 즉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것을 가지고 있을리가 없다. 이 비슷한 것도 한 번도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펜로즈 교수는 수학을 많이 그리고 잘 알고 있을테니까 이 자연의 법칙에 맞춰볼 수 있는 수학적 틀을 많이 가지고 있을 것이고 이 가운데서 자신이 알아볼 수 있었던 부분과 잘 맞는 틀을 찾았을 것이고 이 책에서는 이런 부분을 설명했을 것이다. 그가 서문에서 수학 공식을 그대로 사용하겠다고 한 것은 바로 이 틀 밖에는 가져다 쓸 것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일반인에게 해설하는 책이니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설명하기를 바라겠지만 일반 언어로 된 틀 가운데는 이 목적에 맞는 틀은 하나도 없는 것이 (적어도 내게는) 명백하고 보면 그가 무슨 책을 쓴 것인지는 안 봐도 알 수 있다 (내가 그 내용을 안 봐도 안다는 말이 아니다). 그는 자기가 알아낸 insight를 적어놓고 싶은데 지금은 이를 적을 수 있는 언어(틀)가 수학밖에 없어서 할 수 없이 수학으로 설명한다는 말이다. 그가 제목을 "실체에 이르는 길"이라고 붙인 것이 사람들이 이 내용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호도한 것이라면 그렇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이 이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 것은 어려워도 위에 설명한 것과 같은 펜로즈 교수의 상황과 어려움을 이해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당연한 이런 상황을 한번 쯤 생각해보고 나서 그의 책의 제목을 본다면 설마 그가 수학을 모르는 사람에게 물리적 실체를 해설하려고 했을 것이라는 생각은 안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수십년 전에 박사를 갓 받았을 때 어떤 잡지에서 당시 발전하고 있든 초끈 이론을 설명하면서 물리적 공간에 존재하는 물질이라는 것은 별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요. 공간(11차원인지?)의 일부 방향이 에너지때문에 그 위치에 매우 심하게 휘어져서 (예를 들면 원자 하나의 크기만큼으로 돌돌 말려)있는 것일 뿐이고, 다른 원자(내 몸의 말려있는 원자 하나)가 공간의 그 위치에 가면 두 말린 공간이 서로 풀어지기 전에는 위치를 서로 바꿀 수 없어서 (에너지 부족이다) 그 지점을 못지나가니까 두 물체가 부딛친 것으로 느껴진다는 설명을 읽은 적이 있다. 기하학을 전공한다고 하는 사람도 이런 (수식을 쓰지 않은 말로 한) 설명이 잘 상상이 되지 않는데...
수학 전공자가 이 책을 읽으면 분명히 뭔가 얻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반인도 이런 책에서 조금 다른 것이더라도 무언가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미국의 과학 잡지 American Scientist인가 하는 것은 그 목표가 자기 잡지에 설명되는 정도의 과학 내용은 미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믿음으로 글을 쓰는 것이라고 하고 있었다. 실제로 이 잡지 내용은 미국 대학원에서 강의 교재로 자주 사용되는 내용들이 많다는 것을 들어 알고 있다. 비록 이 잡지의 목표가 조금 과장된 것이라 하더라도 이들은 일반인이 과학과 수학을 어느정도는 알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과학을 겉으로 말만 할줄 아는 것이 아니다. 이 잡지의 내용은 실제로 그 과학을 이해하는 수준으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우리는 새로운 보통 사람들이 과학을 이 수준으로 알아야 하는 시대가 됐다는 느낌이 든다. 요즘 관심의 대상인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은 우리 생활의 모든 부분을 바꿔 놓는다. 특히 일상생활에서 내려야 하는 여러 결정 단계에 개입하고 있다. 예를 들어 경제적인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할 때 예전에는 잘 아는 사람에게 자문을 구하면 충분했다. 그러나 지금은 일반인들도 인공지능을 활용해서 전문가보다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물론 인공지능을 잘 아는 사람만 가능하다. 예전과 달라진 것은 이런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것과 이 능력의 유무에 따라 나뉘는 두 그룹의 경제적 차이는 매우 커진다는 것이다.
또 하나가 있다. 이런 능력은 예전에 정부의 개발 정보 같은 것을 빼내서 투자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이와 비슷한 능력을 인공지능을 통해서 얻는 것이라고 보이는데... 예전의 방법들은 불법적인 방법이었다면,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시대에 와 있다면 펜로즈 교수가 자기가 설명하고 싶은 것을 조금 전문적으로 설명해 놓는 것은 미래를 위해 중요한 이야기를 전달해 주는 것이다. 자기 생애를 걸쳐 알아낸 아무도 모르는 비밀을 사람들에게 전해주려는 데 적합한 말이 수학밖에 없는 상황은 너무 잘 이해된다. 나머지는 독자의 몫이다.
아직 책은 읽어보지 못했다. 펜로즈 교수가 한마디를 설명하는 데 1000쪽을 사용했는지 아니면 수많은 여러 가지 내용을 해설하고 있는지 아직 모른다. 누군가가 이 내용을 장별로(34개의 장이 있다) 요약해서 설명해줄 수 없을까? 하나하나 다 읽기는 너무 힘들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