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로즈의 책

수학/수학책 2021. 8. 14. 17:34

우연히 Roger Penrose가 쓴 책 The Road to Reality를 보게 됐다. paperbound로 된 두꺼운 책이라 잠시 빌려 놓고 언제 읽어볼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오늘 잠시 서문을 봤는데 수학 공식을 쓰지 않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기로 했다고 써있다. 그러니까 그냥 수학으로 설명한다는 말 같아서...

 

알라딘, 교보 등의 책방에 들어가니 한글 번역도 있다. 누가 이런 책을 번역하지 싶지만 정말 힘든 일을 했다고도 생각되고 여기 나오는 수학을 다 아는지도 궁금하다. 어떤 의미에서 이 내용의 일부분이 내 전공이지만 나도 잘 모르는 부분이 많은데...

하지만 책에 대한 평에 보니 사람들이 자연의 실체를 수학으로 설명해서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고들 썼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학생들에게 수학을 강의하면서 그리고 나도 수학을 이해하려고 고민하면서 깨달은 것 하나는 이미 어딘가에다 썼던대로이다. 즉 무엇인가에 대해 알 수 있다는 것은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어떤 틀에 이 새로운 무엇을 갖다 맞출 수 있을 때이다. 물론 정말 새로운 것은 잘 맞지 않는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틀들 가운데 가장 잘 맞는 것을 가져다 맞추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이것을 더 탐구해보다 보면 내 틀을 보완할 수 있게 된다. 즉 더 확장된 틀로 바꾸면서 이 새로운 대상을 이 새로운 틀로 이해하게 된다.

이 틀은 예전에 다른 것을 이해하는 틀이었으므로 이 새로운 틀은 예전에 알던 것과 이번의 새로운 것에 모두 맞춰볼 수 있는 틀이 되고 나는 이 새 틀에 익숙해지면서 이 둘을 (서로 비슷한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착각일 수도)을 가지게 된다.

 

펜로즈 교수가 이 책을 쓸 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아직 책을 읽어보지 않아서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사람이 자연의 법칙을 이해하고 그에 대해 무엇인가를 쓰려고 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자연의 법칙 또는 물리의 법칙을 여러 가지로 설명한 것을 보고 여기서 하나 또는 그 이상의의 새로운 관점을 보았을 것이다. 이것이 현대물리와 같이 복잡하고 이상한(!) 것이다 보니, 위에 설명한 바에 입각해서 보면, 이것을 이해할 수 있는 틀이 별로 없다. 즉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것을 가지고 있을리가 없다. 이 비슷한 것도 한 번도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펜로즈 교수는 수학을 많이 그리고 잘 알고 있을테니까 이 자연의 법칙에 맞춰볼 수 있는 수학적 틀을 많이 가지고 있을 것이고 이 가운데서 자신이 알아볼 수 있었던 부분과 잘 맞는 틀을 찾았을 것이고 이 책에서는 이런 부분을 설명했을 것이다. 그가 서문에서 수학 공식을 그대로 사용하겠다고 한 것은 바로 이 틀 밖에는 가져다 쓸 것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일반인에게 해설하는 책이니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설명하기를 바라겠지만 일반 언어로 된 틀 가운데는 이 목적에 맞는 틀은 하나도 없는 것이 (적어도 내게는) 명백하고 보면 그가 무슨 책을 쓴 것인지는 안 봐도 알 수 있다 (내가 그 내용을 안 봐도 안다는 말이 아니다). 그는 자기가 알아낸 insight를 적어놓고 싶은데 지금은 이를 적을 수 있는 언어(틀)가 수학밖에 없어서 할 수 없이 수학으로 설명한다는 말이다. 그가 제목을 "실체에 이르는 길"이라고 붙인 것이 사람들이 이 내용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호도한 것이라면 그렇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이 이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 것은 어려워도 위에 설명한 것과 같은 펜로즈 교수의 상황과 어려움을 이해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당연한 이런 상황을 한번 쯤 생각해보고 나서 그의 책의 제목을 본다면 설마 그가 수학을 모르는 사람에게 물리적 실체를 해설하려고 했을 것이라는 생각은 안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수십년 전에 박사를 갓 받았을 때 어떤 잡지에서 당시 발전하고 있든 초끈 이론을 설명하면서 물리적 공간에 존재하는 물질이라는 것은 별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요. 공간(11차원인지?)의 일부 방향이 에너지때문에 그 위치에 매우 심하게 휘어져서 (예를 들면 원자 하나의 크기만큼으로 돌돌 말려)있는 것일 뿐이고, 다른 원자(내 몸의 말려있는 원자 하나)가 공간의 그 위치에 가면 두 말린 공간이 서로 풀어지기 전에는 위치를 서로 바꿀 수 없어서 (에너지 부족이다) 그 지점을 못지나가니까 두 물체가 부딛친 것으로 느껴진다는 설명을 읽은 적이 있다. 기하학을 전공한다고 하는 사람도 이런 (수식을 쓰지 않은 말로 한) 설명이 잘 상상이 되지 않는데...

 

수학 전공자가 이 책을 읽으면 분명히 뭔가 얻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반인도 이런 책에서 조금 다른 것이더라도 무언가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미국의 과학 잡지 American Scientist인가 하는 것은 그 목표가 자기 잡지에 설명되는 정도의 과학 내용은 미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믿음으로 글을 쓰는 것이라고 하고 있었다. 실제로 이 잡지 내용은 미국 대학원에서 강의 교재로 자주 사용되는 내용들이 많다는 것을 들어 알고 있다. 비록 이 잡지의 목표가 조금 과장된 것이라 하더라도 이들은 일반인이 과학과 수학을 어느정도는 알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과학을 겉으로 말만 할줄 아는 것이 아니다. 이 잡지의 내용은 실제로 그 과학을 이해하는 수준으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우리는 새로운 보통 사람들이 과학을 이 수준으로 알아야 하는 시대가 됐다는 느낌이 든다. 요즘 관심의 대상인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은 우리 생활의 모든 부분을 바꿔 놓는다. 특히 일상생활에서 내려야 하는 여러 결정 단계에 개입하고 있다. 예를 들어 경제적인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할 때 예전에는 잘 아는 사람에게 자문을 구하면 충분했다. 그러나 지금은 일반인들도 인공지능을 활용해서 전문가보다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물론 인공지능을 잘 아는 사람만 가능하다. 예전과 달라진 것은 이런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것과 이 능력의 유무에 따라 나뉘는 두 그룹의 경제적 차이는 매우 커진다는 것이다.

 

또 하나가 있다. 이런 능력은 예전에 정부의 개발 정보 같은 것을 빼내서 투자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이와 비슷한 능력을 인공지능을 통해서 얻는 것이라고 보이는데... 예전의 방법들은 불법적인 방법이었다면,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시대에 와 있다면 펜로즈 교수가 자기가 설명하고 싶은 것을 조금 전문적으로 설명해 놓는 것은 미래를 위해 중요한 이야기를 전달해 주는 것이다. 자기 생애를 걸쳐 알아낸 아무도 모르는 비밀을 사람들에게 전해주려는 데 적합한 말이 수학밖에 없는 상황은 너무 잘 이해된다. 나머지는 독자의 몫이다.

아직 책은 읽어보지 못했다. 펜로즈 교수가 한마디를 설명하는 데 1000쪽을 사용했는지 아니면 수많은 여러 가지 내용을 해설하고 있는지 아직 모른다. 누군가가 이 내용을 장별로(34개의 장이 있다) 요약해서 설명해줄 수 없을까? 하나하나 다 읽기는 너무 힘들어 보인다.

 

 

 

 

블로그 이미지

그로몹

운영자의 개인적 생각을 모아 두는 곳입니다.

,

페북에 이모군이 「수학의 정석이 싫어」라는 요지의 글과 사진을 올렸다. 하는 말의 내용은 어떤 부분은 이해가 되고 몰라도 아마 이런 뜻이겠거니 짐작가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수학의 정석을 요즈음의 책들과 비교하는 것은 문제가 좀 있다.


예전에 내가 고등학교 공부할 때도 수학의 정석은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참고서였고 우리 아이들이 공부하던 시절까지도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요즈음은 잘 모르겠다. 이제는 관심이 별로 없어서 상황이 어떤지 파악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의 학생들도 정석이 싫다는 말을 한다는 것은 정석의 위치가 아직 비교적 건재하다는 반증이 아닐까 생각된다.


수학의 정석은 꽤 옛날에, 내가 정석을 사야 하던 시절보다 훨씬 더 먼저 만들어졌다. 내 기억으로 내가 초등학교 들어가던 시절(1960년대 초)에는 정석이 없었던 듯하다.(우리 집에는 수학책이 다 있었으니까. 내 기억에 없다.) 다른 분의 정석보다 조금 간결한 참고서는 기억난다. 저자 성명은 기억 안나는데 김모라는 분이었던지? 어쨌든 그것도 일본 참고서를 참고하고 쓰신 것인지 간결한 설명이 좋았던 것으로 기억되지만...


하지만 내가 고등학교 가기도 전에 정석이 나왔고, 저자는 홍성대 선배님으로 되어 있지만 들은 풍문으로는 홍선배님의 여러 후배들이 힘을 합쳐서 참고서를 저술하였다고 한다. 정확한 내용은 잘 모르지만 적어도 몇 분이 같이 작업하셨다고 하고 그 중 한 교수님은 이미 몇 년 전에 타계하셨다. 내용을 보면 당시 구할 수 있었던 일본 수학 참고서 거의 대부분의 문제를 총 망라하고 있어서 내용은 많고 정리는 조금 잘 안 되어 있다고 할 그런 책이다.(우리 집에는 당시 중요한 일본 참고서가 여러 개 있었다.)


요즈음은 내가 수학사를 공부하다 보니 이 책을 보는 눈도 수학사적인 관점이 조금 들어간다. 우리 나라가 해방된 이후, 사실 6.25가 지난 후의 학교 공부 관점에서 보면 많은 수학자와 수학 선생님 그리고 교육과정을 언급할 수 있지만 이와 함께 병행해서 참고서도 수학사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보아야 하겠고 이 부분에서는 단연 독보적인 위치를 점했던 책이다. 이 책 밖에는 없었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반은 된다.


사실 이 책이 지금도 학생들이 무시할 수 없는 위치에 있다는 것은 놀라운 현실이다. 다른 모든 것이 부침을 계속하는 동안 이 참고서는 중요한 위치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상황에 맞게 변화하려는 노력도 있었겠지만 사실 많이 변하지 않은 것 같은데도 말이다.


수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 책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실제로 이 책은 좋은 문제를 많이 모아놓았다는 장점을 제외하면 교과서를 앞지르기 힘들다. 교과서의 정확하고 핵심을 짚는 설명, 꼭 필요한 내용만 모아 놓은 점, 그리고 특히 한 마디도 틀리지 않았다는 것에 비하면 일반 참고서들은 정말 엉망이다. 문제도 틀리고 설명도 틀리고 정의도 없고...  수학의 정석은 이에 비하면 비교적 낫다고 하겠지만 그래도 참고할 책으로서의 참고서를 넘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이런 책이 있어서 모든 사람들이 공부에 도움을 받고 있는 것이다.


우리 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변하지 않는 것은 학생들이 이런 참고서에 너무 의지하는 것이다. 공부하기 싫은 학생들을 공부로 끌어들이는 것은 선생님이 할 몫이지만 사실 아무런 방법도 주지 않고 그냥 교실에서 끌어들이는 것은 아무도 할 수 없다. (교실에서의 방법은 약장사가 되는 것 뿐이다.) 참고서가 이런 부분을 대신한다. 하기 싫은 공부를 억지로나마 할 수 있게 해 주는 부분은 조금만 읽어도 조금은 할 수 있게 해 주는 좋은(!) 참고서이다. 문제는 이렇게 하는 것만으로는 수학을 제대로 시작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괜히 책 이야기를 하다가 수학 교육 이야기로 들어가는 듯한데 들어간 김에 한 마디만 더 하면 이렇게 공부한 후유증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실 우리나라가 이렇게 수학공부를 하지 않았으면 지금 모든 분야가 더 탄탄해졌을지도 모른다. 단적으로 수학 올림피아드에서 상을 받은 학생들이 많이 수학과로 진학하기는 하지만 그런 중에서도 많은 뛰어난 인재들이 결국은 수학을 떠난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고 보이지만 큰 이유 가운데 하나가 진짜 공부하는 데에 가면 지금까지 공부한 방법이 결코 도움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이만 줄이기로 하자.


다시 수학의 정석으로 돌아가자.


첫 째, 이 책은 지금의 책과 비교하는 것은 조금은 무리가 있다. 이것은 마치 100년전 수학 전공 서적을 지금의 서적과 비교하는 것과 비슷하다. 정석은 처음 만들어졌을 때와 기술 방식이 거의 변하지 않았다.


둘 째, 이 책이 좋은 참고서가 아니라고 한 이 군의 말은 일리가 있지만, 이것은 이 책이 의도하였던 것이 문제를 풀이까지 쓰는 시험에 맞게 기술한 책이었기 때문이고, 현재 입시 문제 형식에서 보면 별로 깔끔하지도 못하니 좋은 참고서가 아니겠지만, 원래 의도대로라면 별로 나쁜 참고서가 아니다. 풀이를 쓰는 시험을 아직도 보는지 일본 참고서는 아직 이런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 밖에 이 책의 표지가 너무해 보인다면... 이것은 정석 초창기 때랑 하나도 변한 것이 없다. 디자인을 할 줄 몰라서라기 보다는 아마 원래의 것을 고집한다고 보인다.


원래 쓰고 싶었던 것은 뭔가 다른 이야기였는데 시작하고 보니 너무 여러 가지가 떠오른다. 그냥 쓰지 말까 하는 생각도 있지만 두서 없는 이야기도 이유가 있을 것이니까 그냥 두기로 한다. (글 쓰는 사람이 나이가 든 것도 한 가지 이유.)


한 가지만 추가해 둔다면 수포자가 공부 못하는 이유가 교과서나 참고서가 나빠서라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일률적인 교과과정은 문제이다. (못하는 사람은 아래 학년 것을 늦게라도 공부하면 된다.) 하지만 교과서가 정말 사람의 마음을 끌어서 공부하기 싫은 사람을 공부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아니면 교과서 설명이 너무 멋있게 되어 있어서 수학 공부하기는 싫어도 교과서만 읽으면 이런 싫은 수학이 머리 속에 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더 큰 오산이다. 수학을 공부할 수 있는 것은 그 수학이 재미있을 때 뿐이고, 재미있으려면 (1) 문제가 풀릴 때, 그리고 (2) 내용이 이해될 때 뿐이다. 그러니까 수포자는 모두 여기까지 못 와봤기 때문인 것이다.


혹시라도 수학은 어려운 것이어서 수포자 대부분은 그럴 수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것 또한 크게 잘못된 것이다. 아무 수포자도 초등학교 수학에서 시작하여 어디까지는 잘 안다. (숫자 계산도 잘 할 것이다.) 자기가 아는데 까지 수학을 들여다 보자. 하나라도 어려운 것이 있는가? 그 위의 수학도 마찬가지다. 알고 나면 너무 쉽다. 다시 잘 말하면 익숙해지만 너무 쉽다. 짧은 시간에 많은 내용을 싫어하면서 공부한다는 것은 천재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수포자가 할 일은 첫째가 이것이 어째서 재미있는지를 찾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수학의 정석은 그 여러 단점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져다 주었다. 특히 홍성대 선배님은 수학의 정석으로 얻은 이익에서 후학들을 위해서 수학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하셨다. 서울대에 처음으로 수학과 전용 빌딩이 생긴 것도, 이 분이 세운 상산고등학교도 이 밖에 우리나라 교육의 여러 부분이 이 분의 도움을 받았다. 이것만으로도 모범적인 참고서(!)라고 할 수 있을지도...

블로그 이미지

그로몹

운영자의 개인적 생각을 모아 두는 곳입니다.

,

오늘 이동흔 선생님이 페북에다 올려 주신 책이 있다. 이름하여 Symmetry라는 책이고 몇 년 전에 미국수학회에서 대학 학부 학생들을 위해 출간하는 수학교과서 시리즈에 행렬군으로 리군의 이론을 소개한 좋은 책을 쓴 분이 새로 쓴 책인가보다. 책의 내용은 보지 못했지만 링크에 있는 목차만을 보고 이 책이 괜찮은 책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책은 읽어봐야 알겠지만 지난번 책이 간결하게 잘 설명되어 있었던 것을 보면 이번 책도 지지하게 풀어쓴 책은 아니리라는 생각이고 여러 장의 뒷부분에 있는 절의 제목을 보면 조금은 폭넓은 예까지 다룬듯 보여서 판에 박힌 내용만 있는 것은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다. 구체적으로는 군group의 이론을 설명하는데 구체적인 예로서 변환군transformation group을 주제로 잡아 이것을 보면서 군의 이론을 알아보겠다는 식으로 설명한 책일 것이라고 추측해본다. 이것은 매우 좋은 아이디어이다. 실제로 갈루아Galois가 군의 이론을 처음 만들었들 때 갈루아도 이런 것 중의 한가지를 생각하고 있었지만, 아마 당시의 많은 사람들이 많은 구체적인 상황에서 이러한 아이디어를 싹틔우고 있었을 것이라고 어렵지 않게 상상해볼 수 있다.


내가 처음 대수학을 배울 때 군론은 추상적인 이론과 구조적인 아름다움에 깊이 매료되었던 과목이지만 사실 구체적인 예가 너무 부족하여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너무 대수적인 예들만 보면서 당연히 그런것을 다루는 이론이리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나중에 기하학을 전공하고 나서 보니 이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풍부한 예를 가진 분야였다. 물론 학부 때 내가 들었던 군론 강의 중의 하나에서 박승안 교수님께서 설명하시면서 비록 군론을 공부할 때 유한군 또는 이산군론을 먼저 배우지만 사실 이 이론은 모두 리군Lie Groups의 이론에서 비롯되었다고 여러차례 강조하셨다. 하지만 이 이론은 대학원에 가야 배울 수 있는 어려운 이론으로 치부되어서 읽어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보면 이것들을 당연히 함께 공부했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이 책이 그에 필요한 내용을 잘 소개해주는 것이 아닐까 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갈루아가 군론을 만든 때에서 10년이 지나서 리Sophus Lie가 태어났다고 되어있다. 그러니까 리가 그의 리군 이론을 만든 것은 갈루아보다 몇십년 늦은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이론이 상미분방정식의 계로서 리군의 변환에 잘 따라 움직이는 방정식은 그 해들도 그러한 좋은 성질을 가진다는 것을 설명하려는 것이었다면 이것은 지금에 보아도 상당히 어려운 이론이다. 오히려 이보다 조금 늦게 클라인이 에를랑겐 목록Erlanger Program을 발표할 때 사용한 변환군의 개념에 오면서 훨씬 더 구체적인 공간의 움직임에 대한 변환군으로써 이해하기 쉬운 대상이 된다. 자세한 상황은 잘 모르지만 클라인이 기하학적 변환을 처음 사용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갈루아 전후해서부터 이러한 공간적인 변환을 사용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되고, 이러한 바탕에서 리가 미분방정식에도 변환군을 사용할 수 있다는 이론을 발표하자 클라인이 거기 필이 꽂히게 된 것일 것이다. 즉 클라인은 리가 소개한 방법인 하나의 변환을 보지 않고 변환 전체를 군으로 보면 설명이 편하여진다는 것을 처음 일반적인 방법론으로서 간파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갈루아가 처음이지만 갈루아는 이산군만을 생각했고, 연속군을 처음 사용한 것은 아니니까.) 즉 일종의 패러다임 쉬프트가 일어난 시점들이다.


추측성의 역사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나로서는 이러한 내용을 알수 있었으면 공부가 훨씬 편하고 이것을 더 좋아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동흔 선생님은 이러한 내용을 고등학교 학생들의 공부에 잘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지금의 학생들은 복받은 학생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마디만 사족을 붙이면, 위와 같은 긴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예전에 내가 공부한 것처럼 예를 별로 많이 주지 않고 공부하는 방법이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런 방법의 장점은 이론을 많은 구체적인 예가 없이 파악해 내면서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새로운 돌파구나 응용가능성 찾아내는 일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흔한 것은 아니지만...) 즉 많은 구체적인 예를 주는 것은 이해의 깊이를 깊게 해 주지만, 반대로 창의성의 눈을 가려버릴 수 있다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인다. 선생님 노릇 하기 어려운 것은 이 양면성 사이에서 줄타기를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지 판단하기 어려운 것이고, 특히 학생 개인마다 이것이 다르다는데 딜레마가 있다고 하겠다. 


그래도 이동흔 선생님은 특유의 재간으로 학생들에 맞는 공부거리를 만들어주시는 것 같다. 이런 재주는 흔치 않은 것이니, 아마 지금 학생들이 받은 복은 이런 좋은 설명이 있다는 것 차체 보다는, 이런 설명을 적절히 선별해주시는 선생님을 만난 복이 더 큰지도 모르겠다.


블로그 이미지

그로몹

운영자의 개인적 생각을 모아 두는 곳입니다.

,

한 두 주일 전에 미국에서 소포가 왔다.

미국에 주문했던 중고책 몇 권이 들어 있었다.

이 책은 amazon이나 alibris를 통해서 찾아 주문했었다.

이 가운데 한 권의 책은 어딘가에서 좋은 책이라고 해서 주문해 보았다.


제목은 Calculus of Variations이고 Gelfand와 Fomin의 책이다.



이 책은 아마도 20세기 중엽에 중요한 역할을 했을지도 모르는 책이고 이보다 조금 일찍 구입한 Lanczos의 Variational principles of mechanics라는 책도 여러 군데서 언급하는 유명한 책이다. 이 책은 수학의 이론 부분에서 잘 해설한 조금은 짧은 책이라고 하겠지만 Lanczos는 응용을 염두에 두고 쓴 책이라고 보인다.

(요즘 Springer의 Grundlargen? 시리즈에서 나온 Calculus of Variations 책으로는 두꺼운 2권짜리 책으로 순수이론을 총망라한 편미분방정식 책이 있다.)


Lanczos를 보면서 느끼는 점은 20세기 중엽의 책으로 보기에는 상당히 편안하게 쓰여있고 내용도 깊게 들어가지 않는 듯하다. 물리적인 문제도 들고 계산도 보여주면서 나가서 기초적인 변분학 내용을 익힐 수 있게 쓰여져 있는 듯하다. (아직 한 번 들쳐본 정도라서 잘은 모른다.) 이 사람이 쓴 Applied Mathematics 책도 이와 비슷하게 너무 이론적인 것에 치우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이 책이 여러 공학자, 물리학자 등에게 읽히고 그런 논문에 refer되는 것 같다.


이렇게 구입하는 책들 가운데 상당부분은 미국의 지방 대학 도서관이나 public library에서 소장하고 있던 것을 방출한 것이다. (Released 도장이 찍혀 있는 적법하게 방출된 copy이다.) 더 이상 둘 곳이 없고 읽는 사람도 없다고 생각되어서 방출한 것일 것이겠지 싶다.


그런데 우리나라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우리는 이런 책이 꼭 필요하다. 현재 산업과 기술이 발전하는 단계에 있는 우리 수준에는 초보적인 연구 기반을 구축할 때라고 보인다. 비록 S사가 세계적인 상품을 생산하고 있지만 그 뒤를 받치는 기초적 연구는 아직 초보단계이다. 이럴 때 꼭 필요한 수학적 지식은 이런 책에 들어있는 것처럼 조금은 낡은 그리고 조금은 쉬운 수학일 것이다. 그리고 공대에서 공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이런 이론을 알아야 하겠지만 분명히 제대로 배우고 있을 리가 없다. 공대 교수님 중에 이런 수준의 강의를 제대로 할 수 있는 분은 많지 않고, 수학과에 와서 듣지도 않으니까... 


선진국은 필요 없다고 버리지만 우리는 꼭 필요해 보여서 버리는 책을 사고 있는데, 사실 이런 것이 제대로 기반이 되려면 우리 말로 쓰여져 있어야 할 것이다. 다시 번역 내지는 교과서 논리로 돌아가게 되겠지만 이런 것들을 얼마나 accessible한 형태로 만들어 두는가가 다음세대의 발전을 위해서 중요할 것이다. Calculus of Variations 없이 응용수학이 나아갈 수 없을것이고, 지금은 그럭저럭 해나가고 있지만 조금 있으면 산업체에서 이런거 잘 하는 사람 없나 하고 찾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우리나라에 준비되지 않으면 이런 것은 외국 사람을 불러서 시키는수 밖에 없는데, 지금 교과부의 생각이 이런 것이라면, 글쎄 과연 이런 식으로 기반되는 이론을 얼마나 받쳐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결국 우리나라에는 이 결과로 남는 end 기술만 있고 이를 개발하는 능력은 영원히 정착하지 못할지로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늦었어도 빨리 대비하는데는, 특히 현재의 부족한 인력으로 감당할 수는 없으니 지금 공부하는 세대가 빨리 진입할 수 있게 하려는데는, 쉬운, 하지만 핵심을 짚는 책이 필수이다. Gelfand와 Fomin의 책은 이런 것을 할 수 있게 쓰여진 듯하다. 응용문제는 별로 없지만 본론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쉽게 쓰고 있다. (러시아의 수학 책의 특징이라고 하겠다.) 이런 것과 Lanczos와 같은 이론 문제 해설서 정도를 가지고 있으면 어떤 문제집을 가지고와도 해결할 수 있는 준비가 되지 않을까?



블로그 이미지

그로몹

운영자의 개인적 생각을 모아 두는 곳입니다.

,
1990년도에 일본 이와나미(岩波) 서점은 基礎數學選書라는 교과서 시리즈를 간행하기 시작했다. 일본서적에 관심을 많이 가지지 않던 시절이어서 이 책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제작되었는지는 잘 모른다. 이와나미는 이 이전에 1970년대에 강의록 시리즈를 출간했고 이것들 가운데 좋은 책들은 나중에 책으로 되어 나왔었다. 그러나 이 1990년대의 시리즈는 따로 기획된 강좌에서 시작되었고 앞의 것과 별로 상관이 없던 듯하다. 

이 시리즈는 일본 수학의 거봉인 코다이라 쿠니히코(小平邦彦) 교수님이 감수하고 7명의 편집진이 더 있다. 그리고 실제로 이 감수자와 편집진들 중의 상당수가 책을 집필하였다. 이 시리즈의 맨 처음에 감수자인 코다이라 교수님이 간행사로 쓴 글이 한 페이지 있어서 여기 옮겨 둔다. (일어를 거의 모르는 사람이 번역한 것이니 대략만 보시기를...)

부제는 "수학적 현상의 파악을"이라고 되어 있다. 1990년 6월의 글이다.

간행을 맞아서
- 수학적 현상의 파악을 -

현대의 수학은 형식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서 수학 책도, 정의, 공리, 정리, 증면을 나열한 형식으로 쓰여진 것이 많다. 형식주의에 의하면 수학은 그 자신은 의미를 갖지 않는 기호를 주어진 '룰'에 따라 나열해가는 게임에 불과하다고 하는 것이지만, 이것은 수학의 가장 본질적인 것을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예를 들면, 공리적 구성의 규범이 된 Hilbert의 기하학기초론에는, '점', '직선', 등은 의미가 없는 무정의술어, 즉 기호여서, '고양이', '참새', 등으로 바꾸어도 전혀 문제 없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이것은 사실과 반대이다. 실제로, Hadamard가 지적하였듯이, 기하학기초론에는 그의 매 항목마다 그림이 게재되어 있다. 그림을 그리지 않고, 머리 속에서 그림을 상상하지도 않고, 논리만으로 Hilbert의 기하학기초론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이와 같이 의미를 생각하지 않는 형식주의의 입장에 서는 한, 기하학기초론마저도 이해할 수 없다.

나의 관점에서는 수학은 실재하는 수학적 현상을 기술하고 있는 것이고, 수학을 이해한다고 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그 기술한 수학적 현상의 이미지를 말하자면 감각적으로 파악해서, 형식주의로는 포착할 수 없는 수학적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다.

이와나미 강좌 '기초수학'은 현대 수학의 기초부분의 기본적인 내용을 위에 설명한 의미로 감각적으로 알기 쉽게 해설하는 것을 목표로 편집되었다. 이번 시리즈는 이 강좌 중에서 학부정도의 기초교과에 상당하는 것을 뽑아 '岩波其礎数学選書'로서 편집한 것이다.

이 기회에 각장 끝의 문제에 대하여 해답과 힌트를 첨부하여, 학생의 공부에 도움을 주도록 하였다.

1990년 6월

小平邦彦 
 
이 시리즈는 일본 강의록에서는 처음으로 정리와 증명이라는 형식에서 벗어나서 될수 있으면 예를 많이 들고 다른 곳에 응용되는 것을 해설해 넣은 책 시리즈이다. (그렇다고 해서 증명은 대충하고 응용수학 문제를 끼워넣었다거나 한 것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상당히 빡빡한 이론적인 수학을 펴고 있다.) 이것은 20세기 말에 나타난 이해에 대한 새로운 사조와 맥을 같이 한다.

우리가 어떤 것을 이해하는 것은 그 사실을 문자 그대로 머리속에 적어 넣으면 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적어도 내가 어떤 것을 이해할 때는 그것과 관련된 어떤 선행된 경험과 내가 이해하려는 것을 매치시켜 놓아야만 한다. 새로운 이론을 공부할 때 이 선행된 경험이 되는 것은 예로 들어주는 것들이 되고, 이것이 부족하면 내가 상상으로 만들어서라도 이러한 경험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말만으로 기억하고 있을 뿐 이해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리고 공부해나가는 과정은 이러한 이해의 폭을 넓혀가도록 새로운 경험들을 추가하고 그것을 이론에 맞게 배열하여 이론과 링크시키는 과정으로 보인다. 물론 이것이 기억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기억하는 것이 매우 쉽고 효율적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내가 이런 식의 분석이 가능하게된 것은 공리주의적인 생각에 많이 익숙해지고 이를 통해서 이해하려는 노력을 통해서였다.)

이 시리즈는 간행되었을 때 한 두권만 사서 보았다. 이 중에 함수해석학 책은 아마도 Brezis의 책을 흉내냈던 것인지 아니면 독창적인 것이었는지 편미분방정식론을 기본으로 해서 쓰여졌었고 이를 보고 강현배교수와 함께 감탄했던 적이 있다. 최근에 중고 책으로 코다이라 교수님이 쓴 '해석입문'과 '복소해석학'을 구했다. 평범한 내용을 적은 것이지만 매우 유용한 책으로 널리 사용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 우리도 이러한 수준의 책이 적어도 한 권씩이라도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한다. 

이번학기 복소함수론은 어느것을 따라갈까라고 생각하면서 기본적으로 노구치교수의 교과서를 따라가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내용이 비교적 기하학적이고 너무 어렵지도 않다. 일본에서는 조금 수준 높은 강의로 (어쩌면 대학원에서) 한 학기에 강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지만 학부에서 1년에 걸쳐서 강의하면 자세히 따라가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와 함께 Ahlfors를 같이 읽는다면 미국에서 내가 공부했던 1년 트랙의 복소함수론의 2/3 정도는 커버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열심히 하고 잘 이해해 내는 학생에 한한 이야기이다. 기하학적인 이야기는 결국 눈에 보이게 만드는 것이니까 이해가 필수다. 계산만을 원하는 학생들에게는 조금 미안할까? 
 
블로그 이미지

그로몹

운영자의 개인적 생각을 모아 두는 곳입니다.

,
다음 학기에 복소해석학 강의를 하게 되었다. 집합론도 맡았으니 잘 안 하던 강의를 두 개 씩이나 하게 된 것이다. 다른 교수님의 강의를 넘겨 받은 것이지만 내가 선뜻 하겠다고 한 것이니 변명의 여지는 없다. 복소해석학 강의는 예전 내가 부임하고 몇년 지났을 때에 한 번 해보았다. 당시 복소해석학을 맡으시던 김성운 교수님께서 안식년으로 나가시는 해여서 대신 했던 것이고 그 다음번 안식년때 즈음에는 복소해석 전공하는 교수님들이 늘어서 내가 할 필요가 없었다.

당시에 썼던 교재는 Marsden의 책이었는데 이미 사용하고 있던 것이었던가 내 선택은 아니었다. 이제 새삼 교재를 정해야 하는데 무엇을 쓸 지 모르겠다. 가지고 있는 책은 많고 또 일부 보충도 했는데 마땅한 책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욕심이 너무 많은지 선뜻 손에 잡히는 책이 없는 것이다.

교과서를 보면 우리나라 뿐이 아니라 외국도 점차 쉬워지는 추세이다. 인류가 퇴보하고 있는가? 아니면 이것이 더 좋은 교육방법이라는 것인가? 쉽게 잘 이야기하는 것만이 좋은 교육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나에게는 이런 변화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굉장히 힘들어하면서도 학부 3학년에서 Ahlfors를 교재로 사용하던 세대 틈에서 공부했던 나에게는 쉽게 익숙해지지 않는다. (내가 공부한 학년에서는 Herb Silverman을 썼다.) 결국 유학가서 대학원에서 교재 아닌 교재로 Ahlfors를 사용했는데 공부하는 동안에는 감명깊게 읽었다. 지금도 당연히 Ahlfors를 최고의 교재로 꼽는데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내가 교재로 선정할 경우에는 과연 강의가 제대로 될까 생각해보면 자신이 없다. 학생들이 못견딜 것 같다는 것이 눈에 보인다. 우선 Ahlfors의 delicate한 생각을 영어 틈에서 읽어낼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한 문장 한 문장을 정성들여 읽고 영어의 뉘앙스까지도 감지할 정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데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해석학에서 Rudin을 사용하는 것도 거의 마찬가지이다. 실제로 Rudin은 현재 교과서로 쓰이고 있는데 학생들 가운데 이 내용을 제대로 읽어내는 사람은 얼마나 있는지 궁금하다. 

다시 복소해석 교과서로 돌아가자. 복소해석학은 학부에서 보면 학생들에게 너희가 수학을 얼마나 잘 할 수 있나 보자 하는 식의 내용이다. 학부에서 공부하는 거의 모든 것을 총망라하여 제시하고 심지어는 대학원에서 공부할 내용은 물론 물리학이나 공학까지 넌즈시 이것 저것 들추는 그런 과목이기 때문이다. 이것 다 캐무시하고 그냥 계산만 시켜서 내보낼 수는 있지만 이것은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게 욕심 때문인듯 하다.) 그러다보니 학부에서 교과서를 무엇을 쓸지가 고민되는 것이다. 

몇 가지 내용을 검토하게 된다. 한 가지는 해석학적 부분이다. 구르사 정리의 증명을 넣으려면 증명 자체는 짧아도 결국 해석학적 관점에 대한 이야기가 길어질텐데  이것은 학생들의 흥미가 어떨지...  이것을 빼고 함수가 실 미분가능하다는 가정을 하고 나가는 것이 현명할지 모른다. 그러면 복소수를 가르쳐주고 다변수 미적분학만 리뷰해주는 것으로 필요한 것은 더 없을지도 모른다. 물론 point set topology나 함수 급수의 이야기도 해석학에서 알고 와야 하는 것이지만 어차피 한 번 다시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이 되는 것이니까 논외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타카기의 해석개론에서 복소해석에 대한 장을 보는 것 정도 뿐일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기초적인 계산법, 급수, 미분, 코시-리만 방정식, 해석함수의 성질들, 적분과 코시이론, 선적분의 계산과 residu이론, 등각사상의 구성법, 그리고 어려운 것 한 두 가지를 1년 동안에 한다고 생각해 보자. 

토픽은 아마도 리만사상정리를 생각하는 방법인 normal family와 compactness, 리만면으로 나아가는 복소함수의 사상적 측면과 고전 계산, 극소곡면의 구성에 사용된 Weierstrass의 이론과 그림그리는 방법, 이밖에 또 뭐가 있을까? 다변수는 안 다루겠지만 log함수 같은 것을 다루다 보면 sheaf를 생각하는 당연한 이유가 보일 것이고 이러다 보면 잘못하면 sheaf cohomology를 이야기하게 될 수도 있다. 이렇게 하면 결국 내가 학부때 복소해석학 2학기에 지동표 교수님께 들었던 이야기랑 같게 되는데 이거 정말 이해하기 힘들었던 강의였으니 이러면 안되겠지. 이 가운데 꼭 해본다면 리만사상정리 관련된 것이나, 리만면, 극소곡면의 표현공식과 그림 가운데 한 두가지 정도가 전부일 것이다.

그러면 교과서는? 역시 마땅한 것이 많아보이지 않는다. Silverman은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쓰이고 있지만 뭔가 방대한 것 같고, 새로이 Silverman이 인도 수학자와 낸 새 버젼은 조금은 쉬운데 조금 두꺼운 듯하고,  그러다보니 문제를 중심으로 보는 것은 어떤가 하는 생각도 든다. 각 토픽마다 문제를 미리 정해놓고 이것을 풀 수 있게 이론을 전개하면 전혀 새로운 책이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교과서 중에는 Kapoor의 책이 문제집을 포함하고 있다. 이것과 함께 이론적인 문제 한두 개를 미리 뽑아서 시작해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교과서를 새로 쓰는 것인데 그래도 될까?
 
블로그 이미지

그로몹

운영자의 개인적 생각을 모아 두는 곳입니다.

,

좋은 책 번역

수학/수학책 2010. 10. 27. 15:31
며칠 전 트윗에 박부성교수님이 "우리 나라에 제대로 번역된 수학책이 (별로) 없다"고 해서 내 답은 "직접 번역하시오"였는데... 사실 좋은 수학책은 많지만 번역이 나쁜 것도 있고 또 번역되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라... 

예전에 TeX을 소개하는 글을 쓰면서 그 글 말미에 한글로 된 책(교과서)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급한 적이 있는데, 사실 책 쓰기가 정말 힘들고 번역을 제대로 하기는 쓰기보다 몇 배나 더 힘들기 때문에 제대로된 번역이 아니더라도 번역을 해 주시는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하는 것 같다.

단지 전공도 수학이 아닌 분이 직접 원서를 번역하지도 않고 다른 언어로 번역된 것을 중역하는 일이 흔하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는 상황에서는 대부분의 번역서들은 번역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을 고칠 방법은 별로 없다. 수학책이 만들어져도 팔리는 부수가 1년에 몇 백부 정도라면 잘 팔리는 것이라서 보통 출판사는 출판도 안 해주려고 하는데다가, 여기다 몇 년씩 번역하고 고치고 강의해보고를 되풀이하면서 책을 번역해야 하니 내려는 사람이 없는 것은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고, 출판사 입장에서는 이런 사람들에게 맡기면 언제 일이 끝날지를 모르니 당연히 뚝딱 번역해 주는 사람을 찾아가는 것도 나무라기 힘들다.

그러니 할 수 있는 일은 양질의 번역서, 저서를 만들어 경쟁력을 갖춘 책들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비록 일반인은 구별하지 못하고 이책 저책 다 보겠지만 전공하는 사람들은 어느 책이 좋은지를 금방 알 수 밖에 없으니까 좋은 책을 제대로 번역하면 돈은 안 되더라도 조금의 개선 효과는 있지 않을까?

요즈음은 컴퓨터가 좋아져서 책을 만드는 일이 쉬워졌다. 앞에 말한 TeX을 사용하면 일반인도 거의 전문가 수준의 교과서 쯤은 만들 수 있다. 그래도 번역과 저술은 쉽지 않아서 몇 사람이 같이 작업해야 할 것 같다고 느낀다. 이런 동료를 모을 수 있으면 한 번 시작해봐도 좋다는 생가이 든다. 우리 학교 교수님 가운데 이에 관심있는 분이 한두 분 또 있어서 본격적인 작업을 해 보나 하는 생각을 한 지는 1~2년 되었고 학교니 학회니 이곳 저곳에서 일이 돌아가는 것이 이런 일을 시작할만큼 환경도 조성되어가는 것 같다.

책을 쓰면 가장 어려운 것이 책이 통일된 내용을 갖도록 하는 것이니 착실한 Editor를 확보하는 일인데 나 같이 게으른 사람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아마도 다른 교수님께 부탁드리는 방법 밖에는 없을 듯... 그래도 우리도 좋은 교과서를 제대로 번역한 것이 나올 수만 있다면... 해 볼만한 일이라고 생각은 된다. 
블로그 이미지

그로몹

운영자의 개인적 생각을 모아 두는 곳입니다.

,
앞 글에서 현대벡터해석이란 조금 오래 된 책에 대하여 글을 쓴지 넉 달은 된 것 같다.

그 동안 바삐 이것 저것 하다 보니 별 일 못하고 여름 방학을 다 보냈다. 학기중 보다는 방학이 더 바쁜듯이 느껴지는 것도 이제는 5년이 넘은 것 같다. 아마 계속 이런 추세가 늘어날 것이라고 보인다.

오래 전에 (아마도 2년 전 쯤에) 일본 나고야 대학 수학과의 홈페이지에서 그 학교 강의 목록을 받아보았었다. 자세히 읽어보지 않아서 그냥 저장해 두었는데 이제야 한 파일을 열어서 살펴보았다. 일본의 학부 및 대학원 수학과 강의 목록은 예전과는 조금 달라진 것이 아닐까 한다. (일본에서 공부한 적이 없어서 예전에 어땠는지는 잘 모르지만 일본의 교과서들의 제목을 보며 내가 공부하던 때의 과목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요즘은 제목들도 조금 통합되거나 하고 틀에 박힌 내용들이 줄어들었으며 새로운 내용의 강의가 많이 보인다. 우리학교의 강의 내용과 비교하면 우리 것이 좀 낡은 듯이 보이기도 해서 벤치마킹이라도 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던 참이었다.

그 학교 2007년도 2학기의 강의를 보던 중 내 전공인 기하학 분야의 강의로 기하학요론II 라는 강의가 보였고 무엇을 가르치나 보니 벡터해석과 그 응용 정도라고 보인다. 교과서는 없고 참고서만 6권이 있는데 거기서 맨 마지막에 적혀있는 책이 이 스틴로드/스펜서/니커슨 등이 쓴 현대벡터해석으로 되어 있어 놀랐다.

강의는 학부 3학년생 대상인데 벡터해석을 가르치는 참고서들 중에 Fukaya의 "전자기장과 벡터해석"이나 "해석역학과 미분형식"이 들어 있고, Matsushima의 "다양체입문"과 이 책이 있으니 그 수준은 높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참고로 Fukaya의 해석역학 책은 몇 년 전에 내가 대학원 강의에서 교재로 썼던 것이다. 그리고 이 현대벡터해석은 그보다도 수준이 더 높다고 해야 한다. 물론 참고서이다. 하지만 나라면 학부학생들에게 이것을 참고서로 소개하지는 않을 것 같다. 나중에 한 번 보아라 할 정도 일까?

일본은 기초과학과 수학에 대한 경시 풍조가 없는가? 아닐 것이다. 일본이 더 하면 더 하겠지... 그런데 이런 강의를 열면 학생들이 따라 오는가? 아니 이런 강의를 듣겠다고 하는 학생들이 있는가? 혹시 필수로 지정하고 꼭 듣게 하는가? 잘 알 수 없지만 이런 강의가 제대로 열린다면 우리보다 좋은 시스템을 가지고 있거나 또는 일반인(학생을 포함해서)들의 수학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되어 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우리 나라의 대학 강의도 이러한 수준에 도달하려면 어떤 점에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감이 잘 잡히지 않는다. 어쩌면 조금 더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분석을 해 볼 시점일지, 아니면 좀 늦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어쨌든 잘 사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책이 버젓이 지금도 참고도서에 올라 있는 것에 한 방 먹은 것 같은 느낌으로 쓴다.
블로그 이미지

그로몹

운영자의 개인적 생각을 모아 두는 곳입니다.

,
얼마 전에 아는 분 사무실에 갔다가 책을 몇 권 업어왔다. 아니 안고 왔나?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 가운데 관심이 가는 책이 한 두권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현대벡터해석"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부제는 "벡터해석에서 조화적분으로"라고 되어 있다. 원 제목은 Advanced Calculus로 Nickerson, Spencer, Steenrod 세 사람이 쓴 책으로 Van Nostrand에서 1959년에 출판된 책이다. 번역은 岩波서점에서 1965년에 原田重春, 佐藤正次 두 사람이 하고 있고 1971년까지 5刷가 나와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책이 Princeton 대학의 교과서로 쓰여졌다는 것이고 책에는 학부 3학년생을 위한 것이라고 되어 있다. Advanced Calculus라면 학부 3학년에서 공부하기에 적절한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조금 일반적인 교과서라고 할 수 없다. 프린스턴 대학의 교육 수준이 높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지만 이 책의 내용은 수준 면에서 조금 산만하다. chaper를 살펴보면

벡터대수, 벡터공간의 1차변환, 스칼라 곱, R^n의 벡터곱, 자기 준동형 대응, 실수 상의 벡터값 함수, 벡터를 변수로 갖는 스칼라값 함수, 벡터를 변수로 하는 벡터값 함수, 텐서곱 및 다원환, 위상수학과 해석학에서의 준비, 미분형식의 미분법, 적분정리, 복소구조

등이다. 이 책은 학부에서 사용되었던 교과서임에 틀림 없다. 이 보다 앞서서 어떤 수업을 듣고 Advanced Calculus를 들었을까? 적어도 미적분은 듣고 그리고 또 한 두학기 정도의 1변수 미적분을 epsilon-delta 와 함께 공부했던지 아니면 이것들을 1~2학년동안에 나누어 공부했던지 어쨌든 3학년에서는 다변수 해석학을 확실하게 공부하고 있다. 각 장의 내용을 보아도 벡터함수는 물론, 선형대수와 다중선형대수의 이론을 잘 공부하고 있고 뒤쪽으로 가면 텐서와 미분형식으로 무장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보통 공부하는 이 부분 강의에 비교하면 정말 단단히 공부했다는 느낌이다. 50년 전에 말이다.

뒤쪽에 가면 외미분과 리만계량, singular homology 와 cohomology, 그리고 de Rahm정리, 조화형식과 cohomology의 관계, 복소미분형식과 복소 Poincare 도움정리, Hermite계량, Kaehler계량 까지도 다룬다는 것이다.

이 내용들이 저자인 Spencer, Steenrod 등의 전공인 복소기하학과 위상수학의 내용으로 치우쳐 있다는 것은 이상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학부 3학년에게 이런 강의를 하는 것이 좋은지는 잘 모른다. 비록 프린스턴 대학의 학생들이 천재에 가까워도 이렇게 빨리 나가도 제대로 공부하는가?

하지만 이것은 프린스턴의 문제이고 내가 걱정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또 한 가지는 일본은 왜 이런 책을 번역했는가? 특히 수학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이와나미 서점은 왜 이런 책을 번역했는가? 그리고 몇 년 동안에 5刷까지 인쇄했는가? 단지 프린스턴대학의 교재여서 당시 일본 수학자들이 최 첨단 교재를 보고자 하는 것이었을까? 잘 알수가 없지만 이 교재가 일본에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을 것 같다. 미국의 유수학 대학, 예를 들면 프린스턴, 하바드, MIT 등의 대학원 강의 수준을 보면 학부 수준도 꽤 높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고 위와 같은 교과서가 계속되어 사용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런 교재는 그리 popular한 책은 아니다. 적어도 우리 나라에서나 일본에서는 이런 교과서를 쓰는 곳이 몇이나 있는가? 도쿄나 교토 대학은 잘 모르겠지만 다른 곳은 절대로 아닐 것이고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교과서를 학부 3학년에 쓰는 곳은 적어도 지금은 없다. 아마 1960년대에 서울대학교에서 Advanced Calculus 교재로 당시 Dieudonne가 쓴 해석학 시리즈 첫 권인 Foundations...를 썼던 것이 아마도 가장 어려운 교재였을 것이고 그 다음에는 Rudin의 Principles...를 넘어간 일은 없을 것 같다.

지금에 와서 보면 이런 책이 한 권쯤 도서관에 있는 것은 나쁠 것이 없다고 생각된다. 우리말로 말이다. 교과서로는 쓰이지 않아도 공부하면서 이런 책도 한 번쯤 들춰보고 지금 당장은 필요없을 것 같은 개념들도 조금만 공부하면 읽을 수 있는 내용이구나 하고 생각해 둘 수 있다면 새로운 개념들로 나아가면서 어려움이 훨씬 덜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 우리말로 된 교과서를 둘러보면 학부 2학년 정도 까지의 교과서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고 그 이상의 교과서는 제대로 된 것을 찾기 힘들다고 생각된다. 해석개론만 해도 내가 들 수 있는 것은 한 두개 뿐이고 위상수학이나 미분기하학도 나온지 오래된 교과서 아니면 외국 교과서의 편역 등을 제외하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대수학도 은퇴하신 우리 은사님 한 분이 예전에 쓰신 책 말고 또 있는지 궁금하고 집합론의 저자들도 모두 은퇴하셨다. 지금 현장을 담당하는 교수님들은 뭐를 하시는 건가? 강의 부담은 내가 처음 교수가 되었을 때의 반으로 줄었는데... 그런데도 책을 만드는 사람은 거의 없다.

책 쓰는 것이 돈이 되지 않기는 하지만 이것이 큰 이유는 아닐 것이다. (사실 대학원 교재는 써도 팔리지 않는다고 출판해 주지 않지만...) 아마도 연구에 대한 압박에 책을 쓸 여유가 없는 것이 큰 이유일 것이다. 저서는 특히 교과서 급은 학교에서 연구 업적으로 거의 인정하지 않는 현실에서 책을 쓸 사람이 없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고 하겠다.

아마도 교과부 정책에 변화가 있어야 할 것 같다. 우리나라 교육이 발전하는 것은 단지 정부가 모든 것을 담당해서는 안되는 것이 자명하다. 정부가 하는 만큼 일반인들도 도움이 되는 특히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는 일을 많이 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논문을 많이 쓰는 것 만큼 좋은 교과서를 쓰는 것이 중요하다. 50년이 지난 지금에도 들여다보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교과서라면 꼭 써야 하는 것이다. 쓰기 힘들면 번역이라도 해 두어야 한다. 우리 말로 읽을 수 있으면 고등학생 중학생이라도 읽어볼 수 있고 이런 가운데 뛰어난 사람이 나오는 것이니까.


블로그 이미지

그로몹

운영자의 개인적 생각을 모아 두는 곳입니다.

,

이 책은 포항공과대학교의 김강태 교수가 여러 해 동안 미국과 한국의 대학원에서 강의하며 다듬은 미분기하학에 대한 교재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대학원 미분기하학의 교재라고 하면 마땅한 것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미분기하학의 주된 흐름을 따라 대학원 수준의 이론을 망라한 책은 여럿이 있다. 이 중에 몇을 예로 들면

 Helgason, Bishop and Crittenden, Kobayashi and Nomizu, Hicks

가 있고, 특히 리만기하학에 관련하여는

 Klingenberg, Cheeger and Ebin, Jost, Chavel, do Carmo

등을 들 수 있으며, 근래의 거리미분기하학 분야에 Gromov의 책을 비롯하여 몇 권이 나오고 있다. 이 가운데 대학원에서 미분기하학 강의를 시작할 때 어떤 책을 교재로 쓸까를 생각하면 위의 어느 책도 선뜻 집히지 않는다. 그 이유에는 내용이 너무 방대하고, 내용의 구성이나 기술 방법이 우리에게 너무 어색해 보이기도 하며, 너무 어려운 책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분다양체 만의 이론이라면 아직도 Boothby나 Frank Warner의 책을 꼽을 것이다. 그러나 미분기하학의 고급 응용을 생각하는 입문에서는 다른 내용이 필요하며 이에 알맞는 미분기하학 교과서는 찾기가 쉽지 않다. 리만기하학이라면 아마 do Carmo의 "리만기하학"을 선택할 것이지만 이 것도 내용이 꼭 좋아서라기 보다는 1 - 2 학기 강의에 적합한 양과 초심자가 따라갈 수 있을 정도의 설명에 기인한다고 하겠다. 미분기하학에서는 아마도 Hicks를 선택할 것 같다. 그러나 내용이 매우 요약되어 있다는 점이 조금 불만스럽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 볼 때, 김강태 교수의 "미분기하학"(교우사)은 드물게도 이러한 필요에 부응하는 교재이다. 실제로 영어권에서도 이러한 책을 찾기는 힘들다. 내용을 살펴보자.

제 1 장 곡면 기하학 재조명

여기서는 오일러, 가우스 등에 따라 성립된 고전기하학의 이론을 역사적으로 설명하며 그 핵심 개념을 현대적 입장에서 요약하여 놓고 있다.

제 2 장 리만 공변 미분 연산자와 평행이동 개념

리만 계량, 표준좌표계와 공변미분, 접속, 평행이동, 곧은선(geodesic), 호프-리노브의 정리등

제 3 장 리만 곡률 텐서

곡률의 정의, 제 2 변분공식, 야코비 벡터장, 켤레점, 한계점, 초점 등의 개념

제 4 장 리만 다양체의 비교정리

지표 형식, 라우치, 카르탕-아다마르, 라플라스 연산자 비교정리, 부피 비교정리, 토포노고프 정리 등

부록 A 미분다양체, 벡터장 및 미분 형식
부록 B 상미분방정식에 관한 피카드 정리
부록 C 벡터다발과 접속

이 책의 특징은 고전의 역사적 기하학과 현대의 리만기하학의 관점을 통일하여 보여주려는 시도가 그 하나이며(1장), 기하학의 많은 결과들을 나열하기 보다는 중요한 개념 몇개 만을 따라서 현대 미분기하학의 요체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저자의 다음과 같은 서문에 잘 나타나 있다.

" ... 이 책을 읽으면 미분기하학은 어느 정도 이해하였고, 심지어는 연구자가 될만한 지식을 얻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 (중략) ... 그러나, 이 책은 지금 우리가 구할 수 있는 다른 미분 기하학 책을 읽는 데에는 중요한 도움이 될 책이 되도록 구성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썼습니다. ..."

저자는 서문에서 Klingenberg의 책을 읽기 위한 준비로서 이책을 읽는 것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지만, 실제로 Cheeger and Ebin의 책을 읽기 위하여 그 책의 첫째 장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이러한 책이 있는 것에 감사하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현대 미분기하학 연구의 입문을 위한 가장 훌륭한 입문서라고 생각된다.

물론 이 책은 한글로 쓰여져 있다. 이 또한 입문서로써의 훌륭한 점이다. 처음 보는 이론을 자신의 언어(mother tongue)가 아닌 언어로 읽는 어려움은 자신의 언어로 쓰여진 책을 읽어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이 책이 있음으로 해서 어려워서 미분기하학에 접근하지 못했던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대학원의 미분기하학을 공부하려면 학부 미분기하학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고 이 말이 틀리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입문서라면 학부 미분기하학과 관계 없이 대학원 수준의 미분기하학 공부를 시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본인은 이렇게 공부를 시작한 경우에 해당한다.)

블로그 이미지

그로몹

운영자의 개인적 생각을 모아 두는 곳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