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교우회보에 실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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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한적실(漢籍室)이 있는 대학원도서관 건물은 1952년도에 문과대학이 문리과대학으로 개편되었을 때 현재 이과대학 수학과와 물리학과의 전신인 수물학과가 처음 자리잡았던 곳이다. 이 건물 2층에 단촐한 사무실을 가지고 있는 한적실은 별로 찾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고려대학교가 소장하고 있는 한문으로 된 옛 서적들을 관리하는 중요한 곳이다. 사무실은 자그마해도 그 맞은편 좁은 회랑을 따라 들어가면 자물쇠가 걸려 있는 큰 도서실 두 개가 나온다. 이 안에 들어서면 다른 도서관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 펼쳐진다.
근래 멋있게 변모된 우리 캠퍼스나, 최신 시설을 자랑하는 우리 도서관들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환기가 잘 안 되어 먼지 냄새가 나고 조명 시설도 잘 되어 있지 않아 어두컴컴하지만 이곳에 붙어 있는 팻말들을 보면 이과 전공인 나도 잘 알고 있는 옛사람들의 장서가 여기 모여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충 보아도 몇 만 권인지 알 수 없지만 조선시대 학자들이 쓰고 모으고 공부하였던 오래 된 책들로 고려대학교에 기증된 듯싶은 책들이 서가마다 가득 가득 들어차 있다.
나는 2년 전쯤 고려대학교가 소장하고 있는 산학원본(算學原本)이라는 책을 찾기 위하여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한적실을 처음 찾았다. 산학원본은 17세기에 은산(殷山) 군수를 지낸 박율(朴繘)이 지은 산학(지금의 수학)책으로 18세기에 황윤석이 편집한 이수신편 23권에 산학본원이란 이름으로 들어 있다. 2년전 까지도 산학본원의 원전인 산학원본은 실전되었다고 알려져 있었다. 따라서 고려대학교 도서관에서 산학원본을 발견한 것은 매우 중요한 사건이 될 수밖에 없었다.
박율은 이 책을 통하여 13세기에 중국 수학이 전성기를 이룰 때 쓰여진 주세걸(朱世傑)의 산학계몽을 제대로 공부할 수 있도록 수학의 입문에서 어려운 계산법까지를 설명하였다. 많은 학자들이 단순히 유명한 책을 그대로 옮기며 해설을 붙이는 것과는 달리, 그는 산학계몽의 내용을 이해하고 정리하여, 산학에 필요한 기본 계산법으로 구고술(句股術)이라 부르는 피타고라스 정리와, 원과 관련된 공식, 그리고 천원술(天元術)이라 불리는 다항방정식의 해법, 등을 추리고, 이로써 당시 알려진 수학을 모두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을 보고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은 이 책을 저술한 시기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서양수학책인 수리정온보다 수십 년 앞섰으면서도 천편일률적인 중국 수학의 방법을 지양하고 통일된 관점에서 여러 계산법을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율이 17세기 중엽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현대적인 사고를 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오히려 19세기에 서양수학을 접했던 학자들보다도 훨씬 더 진보된 관점으로 현대수학의 핵심인 개념화와 구조화를 보여주는 책을 썼음을 알 수 있다.
산학원본 서문을 보니 조선 중기에 인조반정의 공신인 최명길의 손자로 여덟 차례 영의정을 지냈으며 스스로도 산학책을 저술한 최석정이 서문을 썼다. 이조시대의 수학은 주로 중인집안에서 배출되는 산학자들이 담당했었다. 그러나 옛 산학책 가운데 많은 것들을 양반 유학자들이 썼다는 사실은 놀랍다. 박율, 최석정은 물론 영의정을 지낸 조태구, 판서를 지낸 남병철, 남병길 형제, 유명한 유학자인 황윤석, 홍대용, 배상설, 조희순 등 많은 유학자들은 산학에서도 당대 최고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 조선이 많은 어려움을 뚫고 500년의 역사를 자랑할 수 있게 된 데는 그 중심인물들 스스로 경학과 함께 실용과학인 산학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것이 큰 역할을 하였으리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이런 놀라운 사실을 한적실 한 모퉁이의 낡은 책 하나가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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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한적실(漢籍室)이 있는 대학원도서관 건물은 1952년도에 문과대학이 문리과대학으로 개편되었을 때 현재 이과대학 수학과와 물리학과의 전신인 수물학과가 처음 자리잡았던 곳이다. 이 건물 2층에 단촐한 사무실을 가지고 있는 한적실은 별로 찾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고려대학교가 소장하고 있는 한문으로 된 옛 서적들을 관리하는 중요한 곳이다. 사무실은 자그마해도 그 맞은편 좁은 회랑을 따라 들어가면 자물쇠가 걸려 있는 큰 도서실 두 개가 나온다. 이 안에 들어서면 다른 도서관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 펼쳐진다.
근래 멋있게 변모된 우리 캠퍼스나, 최신 시설을 자랑하는 우리 도서관들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환기가 잘 안 되어 먼지 냄새가 나고 조명 시설도 잘 되어 있지 않아 어두컴컴하지만 이곳에 붙어 있는 팻말들을 보면 이과 전공인 나도 잘 알고 있는 옛사람들의 장서가 여기 모여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충 보아도 몇 만 권인지 알 수 없지만 조선시대 학자들이 쓰고 모으고 공부하였던 오래 된 책들로 고려대학교에 기증된 듯싶은 책들이 서가마다 가득 가득 들어차 있다.
나는 2년 전쯤 고려대학교가 소장하고 있는 산학원본(算學原本)이라는 책을 찾기 위하여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한적실을 처음 찾았다. 산학원본은 17세기에 은산(殷山) 군수를 지낸 박율(朴繘)이 지은 산학(지금의 수학)책으로 18세기에 황윤석이 편집한 이수신편 23권에 산학본원이란 이름으로 들어 있다. 2년전 까지도 산학본원의 원전인 산학원본은 실전되었다고 알려져 있었다. 따라서 고려대학교 도서관에서 산학원본을 발견한 것은 매우 중요한 사건이 될 수밖에 없었다.
박율은 이 책을 통하여 13세기에 중국 수학이 전성기를 이룰 때 쓰여진 주세걸(朱世傑)의 산학계몽을 제대로 공부할 수 있도록 수학의 입문에서 어려운 계산법까지를 설명하였다. 많은 학자들이 단순히 유명한 책을 그대로 옮기며 해설을 붙이는 것과는 달리, 그는 산학계몽의 내용을 이해하고 정리하여, 산학에 필요한 기본 계산법으로 구고술(句股術)이라 부르는 피타고라스 정리와, 원과 관련된 공식, 그리고 천원술(天元術)이라 불리는 다항방정식의 해법, 등을 추리고, 이로써 당시 알려진 수학을 모두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을 보고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은 이 책을 저술한 시기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서양수학책인 수리정온보다 수십 년 앞섰으면서도 천편일률적인 중국 수학의 방법을 지양하고 통일된 관점에서 여러 계산법을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율이 17세기 중엽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현대적인 사고를 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오히려 19세기에 서양수학을 접했던 학자들보다도 훨씬 더 진보된 관점으로 현대수학의 핵심인 개념화와 구조화를 보여주는 책을 썼음을 알 수 있다.
산학원본 서문을 보니 조선 중기에 인조반정의 공신인 최명길의 손자로 여덟 차례 영의정을 지냈으며 스스로도 산학책을 저술한 최석정이 서문을 썼다. 이조시대의 수학은 주로 중인집안에서 배출되는 산학자들이 담당했었다. 그러나 옛 산학책 가운데 많은 것들을 양반 유학자들이 썼다는 사실은 놀랍다. 박율, 최석정은 물론 영의정을 지낸 조태구, 판서를 지낸 남병철, 남병길 형제, 유명한 유학자인 황윤석, 홍대용, 배상설, 조희순 등 많은 유학자들은 산학에서도 당대 최고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 조선이 많은 어려움을 뚫고 500년의 역사를 자랑할 수 있게 된 데는 그 중심인물들 스스로 경학과 함께 실용과학인 산학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것이 큰 역할을 하였으리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이런 놀라운 사실을 한적실 한 모퉁이의 낡은 책 하나가 보여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