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학기에 복소해석학 강의를 하게 되었다. 집합론도 맡았으니 잘 안 하던 강의를 두 개 씩이나 하게 된 것이다. 다른 교수님의 강의를 넘겨 받은 것이지만 내가 선뜻 하겠다고 한 것이니 변명의 여지는 없다. 복소해석학 강의는 예전 내가 부임하고 몇년 지났을 때에 한 번 해보았다. 당시 복소해석학을 맡으시던 김성운 교수님께서 안식년으로 나가시는 해여서 대신 했던 것이고 그 다음번 안식년때 즈음에는 복소해석 전공하는 교수님들이 늘어서 내가 할 필요가 없었다.

당시에 썼던 교재는 Marsden의 책이었는데 이미 사용하고 있던 것이었던가 내 선택은 아니었다. 이제 새삼 교재를 정해야 하는데 무엇을 쓸 지 모르겠다. 가지고 있는 책은 많고 또 일부 보충도 했는데 마땅한 책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욕심이 너무 많은지 선뜻 손에 잡히는 책이 없는 것이다.

교과서를 보면 우리나라 뿐이 아니라 외국도 점차 쉬워지는 추세이다. 인류가 퇴보하고 있는가? 아니면 이것이 더 좋은 교육방법이라는 것인가? 쉽게 잘 이야기하는 것만이 좋은 교육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나에게는 이런 변화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굉장히 힘들어하면서도 학부 3학년에서 Ahlfors를 교재로 사용하던 세대 틈에서 공부했던 나에게는 쉽게 익숙해지지 않는다. (내가 공부한 학년에서는 Herb Silverman을 썼다.) 결국 유학가서 대학원에서 교재 아닌 교재로 Ahlfors를 사용했는데 공부하는 동안에는 감명깊게 읽었다. 지금도 당연히 Ahlfors를 최고의 교재로 꼽는데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내가 교재로 선정할 경우에는 과연 강의가 제대로 될까 생각해보면 자신이 없다. 학생들이 못견딜 것 같다는 것이 눈에 보인다. 우선 Ahlfors의 delicate한 생각을 영어 틈에서 읽어낼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한 문장 한 문장을 정성들여 읽고 영어의 뉘앙스까지도 감지할 정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데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해석학에서 Rudin을 사용하는 것도 거의 마찬가지이다. 실제로 Rudin은 현재 교과서로 쓰이고 있는데 학생들 가운데 이 내용을 제대로 읽어내는 사람은 얼마나 있는지 궁금하다. 

다시 복소해석 교과서로 돌아가자. 복소해석학은 학부에서 보면 학생들에게 너희가 수학을 얼마나 잘 할 수 있나 보자 하는 식의 내용이다. 학부에서 공부하는 거의 모든 것을 총망라하여 제시하고 심지어는 대학원에서 공부할 내용은 물론 물리학이나 공학까지 넌즈시 이것 저것 들추는 그런 과목이기 때문이다. 이것 다 캐무시하고 그냥 계산만 시켜서 내보낼 수는 있지만 이것은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게 욕심 때문인듯 하다.) 그러다보니 학부에서 교과서를 무엇을 쓸지가 고민되는 것이다. 

몇 가지 내용을 검토하게 된다. 한 가지는 해석학적 부분이다. 구르사 정리의 증명을 넣으려면 증명 자체는 짧아도 결국 해석학적 관점에 대한 이야기가 길어질텐데  이것은 학생들의 흥미가 어떨지...  이것을 빼고 함수가 실 미분가능하다는 가정을 하고 나가는 것이 현명할지 모른다. 그러면 복소수를 가르쳐주고 다변수 미적분학만 리뷰해주는 것으로 필요한 것은 더 없을지도 모른다. 물론 point set topology나 함수 급수의 이야기도 해석학에서 알고 와야 하는 것이지만 어차피 한 번 다시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이 되는 것이니까 논외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타카기의 해석개론에서 복소해석에 대한 장을 보는 것 정도 뿐일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기초적인 계산법, 급수, 미분, 코시-리만 방정식, 해석함수의 성질들, 적분과 코시이론, 선적분의 계산과 residu이론, 등각사상의 구성법, 그리고 어려운 것 한 두 가지를 1년 동안에 한다고 생각해 보자. 

토픽은 아마도 리만사상정리를 생각하는 방법인 normal family와 compactness, 리만면으로 나아가는 복소함수의 사상적 측면과 고전 계산, 극소곡면의 구성에 사용된 Weierstrass의 이론과 그림그리는 방법, 이밖에 또 뭐가 있을까? 다변수는 안 다루겠지만 log함수 같은 것을 다루다 보면 sheaf를 생각하는 당연한 이유가 보일 것이고 이러다 보면 잘못하면 sheaf cohomology를 이야기하게 될 수도 있다. 이렇게 하면 결국 내가 학부때 복소해석학 2학기에 지동표 교수님께 들었던 이야기랑 같게 되는데 이거 정말 이해하기 힘들었던 강의였으니 이러면 안되겠지. 이 가운데 꼭 해본다면 리만사상정리 관련된 것이나, 리만면, 극소곡면의 표현공식과 그림 가운데 한 두가지 정도가 전부일 것이다.

그러면 교과서는? 역시 마땅한 것이 많아보이지 않는다. Silverman은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쓰이고 있지만 뭔가 방대한 것 같고, 새로이 Silverman이 인도 수학자와 낸 새 버젼은 조금은 쉬운데 조금 두꺼운 듯하고,  그러다보니 문제를 중심으로 보는 것은 어떤가 하는 생각도 든다. 각 토픽마다 문제를 미리 정해놓고 이것을 풀 수 있게 이론을 전개하면 전혀 새로운 책이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교과서 중에는 Kapoor의 책이 문제집을 포함하고 있다. 이것과 함께 이론적인 문제 한두 개를 미리 뽑아서 시작해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교과서를 새로 쓰는 것인데 그래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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