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토요일 낮에 후배 따님의 결혼식에 참석차 모교를 들렸다. 오랫만에 들리기도 했지만 들려도 수학과 건물에만 들렸다 돌아가곤 해서 캠퍼스를 돌아본지는 꽤 오래되었다. 결혼식이 있는 엔지니어 하우스는 학교 속 끝까지 들어가서 있는 건물이었다. 예전 같으면 우리가 공부하던 건물이 학교의 가장 안쪽 끝이었는데 이제 이것은 한 중간 쯤에 위치하는 건물이 되었으니 학교가 꽤 커졌다. 건물도 많이 늘어서 이런 많은 건물을 유지하려면 비용도 만만치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식장에서 친구와 점심을 하고 그 친구 교수실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저녁때는 다른 행사에 잠시 참석하고 집에 왔다. 그 친구와 이야기를 하던 중에 버클리 대학의 수학과 교수이셨던 小林昭七(Kobayashi) 교수님의 타계 소식을 들었다. 지난 8월 말이었고 세수가 80이시라고 하셨다. 함자의 昭七은 쇼와(昭和) 7년 생이라는 뜻이었다고 이 친구가 알려주었다. 서기로 바꾸는 것은 쇼와에 25를 더하라고 했으니 32년 생이시니 올해 80이 맞다. 이 친구의 지도교수이셨고, 내가 국내에 들어와 자리잡고 몇 년 후에 한 번 한국에 오셨을 때 우리 학교에서 말씀도 해 주셔서 잘 기억하고 있다. 실제로 만나뵌 것은 이 때 한번 뿐이었지만 인상깊은 만남이었다.


워낙 유명한 수학자이고 그분이 만든 복소다양체 위의 계량(metric)은 복소기하학의 기본이 되어버렸으니 뭐라 더 설명할 필요가 없겠다. 그분의 이름을 따서 Kobayashi metric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 분이 오셨을 때는 아직 활동이 활발하실 때였다. 오셔서 강연하셨던 내용은 오히려 기억에 없지만 강연이 끝나고 나의 교수실에서 말씀을 나누시면서 몇 가지 말씀을 하셨었다. 이 중에서 수학 공부에 대하여 오래된 내용이 오히려 더 중요하다는 말씀이 있었다. 그래서 선생님은 일본에서 3판까지 나온 이와나미 서점의 유명한 수학 사전도 자신은 1판을 옆에 놓고 항상 그것을 보신다고 하셨다. 1판은 꽤 오래된 것이라 새로운 수학 내용은 없고 정말 오래된 내용도 들어있는 그런 사전인데 나는 부친께서 가지고 계셨던거라 아직도 가지고 있다. 친구에게 들으니 이 분이 1980년 경에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유명한 수학자인 엘리 카르탕(Elie Cartan)의 논문 모음집을 다시 인쇄하였을 때 이것을 주문하면서 기뻐하셔서 자기도 한 부 같이 주문했다는 말을 했다. 이 책은 꽤 오래된 것이지만 이분 뿐만 아니라 내가 만나본 여러 사람들이 중요한 책이라고 입을 모아 말하는 것이다. 우리 나라의 대학 도서관에는 거의 없는데 나는 최근에 이중의 일부를 낡은 중고책으로 구입하였다.


코바야시 선생님께서 공부하신 내용은 이 친구 뿐만 아니라, 나도 그리고 포항공대에 있는 나의 또 다른 동기 교수도 연구의 시작으로 삼고 있는 내용인데, 세월이 흘렀는가, 20세기 복소기하학 및 기하학적 함수론의 1세대가 퇴역하고 있다. 20세기 중 후반에 크게 발전하고 수학 연구의 중심에 있었던 이 이론은 20세기 말이 되면서 점차 연구 문제가 너무 어려워지면서 응용수학과 해석학 연구 중심으로 선회하는 수학계 속에서 조금은 옆으로 밀려난듯한 기분이 든다. 그러나 코바야시 선생님은 자신이 공부하신 내용을 집대성하여 10여년 전에 Springer Verlag에서 Hyperbolic Complex Spaces라는 이름의 두꺼운 책으로 내어놓았다. 그의 생애 초반의 중요한 저작인 Holomorphic Mappings on Complex Manifolds인가 하는 책과 또 두 권의 대작 Foundations of Differential Geometry는 수학에서 이쪽 분야를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bible과 같은 책들이다. 이 밖에 Transformation Groups in Differential Geometry라는 조금은 덜 알려져 있는 책과 일본어로 된 교과서들로 몇 있다.


1960년경 당시 어렵다는 대수기하학에서 유명한 돌파구를 마련했다는 공으로 젊어서 Fields 상을 받아서 우리에게는 유명한 일본의 Hironaka(廣中) 교수님을 내가 학생시절에 뵈었을 때, Kobayashi 교수님을 가리켜서 2년만에 박사학위를 받고 대단한 업적을 내고 계시는 천재에 비유하시면서 수학 공부하는 데에서는 마음이 편안한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셨던 말씀도 기억이 난다. 코바야시 교수님은 일견 깐깐해 보이는 외모와 태도이실 수 있지만 말씀을 나누어보면 사소한 일까지도 마음을 쓰는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고, 이러한 점이 쓸데 없는 일에 흔들리지 않으면서도 delicate한 수학에서 master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힘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8월달에는 또 다른 유명한 수학자 Bill Thurston도 타계했다. 현대 수학을 지금의 모양으로 만든 대표적이 수학자 중에 두 분이 타계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져가 버렸다. 코바야시 교수님께서 1990년대 초에 우리 학교에 오셨을 때 강연료는 정말 적었고 이 밖에 선물로 우리 학교 로고가 새겨진 넥타이를 선물로 드렸던 것이 기억에 있다. 뭔가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셨겠지만 선물을 받으실 때는 좋아하셨던 모습이 생각난다. 수학적으로는 이런 분이 드무니 바라지 않지만, 적어도 인격면에서는 이런 분을 본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단 한번의 만남이었지만 이런 면에서 조금이라도 배운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램을 갖는다.


Obituary of Professor Shoshichi Kobayashi


I had a chance to visit my old college last Saturday to attend the wedding ceremony of a daughter of my friend and colleague. It has been long since I have been to the place and even longer to look around the campus. The ceremony was held at the Engineering House which is located at the farthest inside the campus. In the 70's, our Math building was located the most inside among the buildings, but now it is in the middle of the campus. The campus is growing rapidly and it must be hard to maintain such a big complex.


I met another friend of mine, who is a professor in the university. We had lunch together and had a long chat in his office. Among what he told me was the obituary of Professor Kobayashi, a world renowned mathematician who used to be a professor at UC Berkeley. He passed away last August at the age of 80. His given name Shoshichi(昭七) has the meaning of 'born in the 7th year of Showa(昭和)'. The transformation rule of Showa is adding 25 and he must have been born on 1932, he is 80 alright. He used to be the thesis advisor of this friend of mine when he was in Berkeley. Thanks to that when he visited Korea in the early 90's(?) he came to my Korea University and gave a talk. I forgot what he talked about, and I am sure it is about the geometric methods in complex analysis or so. But I clearly remember that he came to my office and we three had a chat for an hour or so. Among the chat he mentioned about old mathematics. His idea is that old math is never to be thrown away but must be kept and reviewed over and over. He mentioned also that he still kept the 1st edition math encyclopedia of Iwanami Shoten. This edition is pretty old, is missing many new maths and contains some very old ones. I still keeps this old edition owned by my father. In the 80's, he was so very much excited to order the, then newly reprinted, Oeuvres of Elie Cartan, my friend said, and he (my friend) also had ordered them. This book is old fashioned but many people i have met mentioned it as a very important reference. It is very hard to find the copies of this book in Korea, and I recently purchased some parts of it as used books.


Professor Kobayashi's mathematical works became the starting point of not just my friend's research but also mine and that of another friend of ours in Postech. But already the 1st generation of complex geometry and geometric function theory of 20th century is retiring. This field of math had been in the center of math during the mid 20th century, but due to its difficulty in problems and due to the applied math trends, it looks like giving way to other fields. Some 10 years ago Professor Kobayashi collected the materials in this field into a huge book named 'Hyperbolic Complex Spaces,' which was published from Springer Verlag. He also wrote two other books, 'Holomorphic Mappings on Complex Manifolds' and 'Foundations of Differential Geometry (with Professor Nomizu)' in his early years, and these became a bible in our field. Another small book named 'Transformation Groups in Differential Geometry' is less known but it was very important to me. He also wrote several texts in Japanese.


When I met Professor Hironaka when I was a student, he mentioned about being able to be free from anxiety is the key in studying math, and mentioned Professor Kobayashi as a young genius finishing his PhD in 2 years and being very fruitful. Professor Kobayashi may look a bit hard to come close to at first sight but as I talked to him I found he is very caring in every ways. This seems to be his power which kept him from being easily-shaken and which made him a master in this delicate field of mathematics.


Last August another famous mathematician, Bill Thurston, passed away. They were two of the most important figures who shaped the modern mathematics in this form. When he spoke in Korea University, the honorarium was very small, and I added the university souvenir, a tie with a university emblem on it. It was nothing compared to his talk but he looked very pleased to receive it. It is my hope that I had learned a little bit of something, if not math, from him through this occa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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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교수님께서 링크해주신 어떤 신문기사를 읽어보니 강남 모 초등학교에서 초등학교 학생들과 아빠들이 같은 초등학교 수학 문제를 놓고 시험들 치르는 경쟁을 했다고 한다. 결과는 아빠의 승리지만 평균 1점 차로 아이들이 분패한 것으로 나와 있다. 기자는 이 event에서 아이들이 공부하는 것이 부모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어렵다는 것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듯하고, 또 부모가 (특히 아버지가) 아이들의 생각에 참여하면 아이들의 (지능) 발달에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이 시험 경쟁은 이벤트성인 점이 상당히 있지만 이런 경험을 해 보는 것은 아이들에게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부모에게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다. 이 기사에서 다른 모든 것은 괜찮아 보인다. 결론은 조금 잘못 유도된 듯하지만, 이런 결론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되며 또 많은 생각을 해 보아야 할 부분이겠다.


문제는 시험인데, 가만히 보면 이 시험에서 불공정할 수 있는 부분이 보인다. 26분동안 10문제를 푸는데 문제가 실용적인 문제 (따라서 지문이 긴 응용문제)가 대부분이 아닌가 싶다. 비록 이 문제가 초등학교 5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문제이더라도 (나 같은 수학 교수도) 이런 문제를 오랜만에 처음 대하면 도대체 무엇을 하라는 문제인가를 파악하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이런 문제를 26분에 10문제 풀라는 자체가 무리스럽기 쉽다. 이에 반하여 아이 엄마들은 아마도 교육에 비교적 관심이 많지 싶은 것을 글에서 볼 수 있고, 아이들은 이런 종류의 시험에 조금은 경험이 있을 거라고 생각된다. (뒤쪽에 예로 들어 놓은 시험문제 하나만 보아도 어떤 시험인지 대략 알 수 있다.)


이런 문제는 (문제 지문이 길고 어렵지 않은 문제) 문제가 어떤 식인지를 아는가 모르는가에 따라 푸는데 걸리는 시간이 크게 차이난다. 아마도 여기 와서 처음 시험문제를 보았지 싶은 아빠들에게는 크게 불리한 시험이다. (게다가 모두 처음 보는 식의 문제라고 하더라도 머리가 굳어진, 수학을 본지 오래 되는 사람에게는 문제의 의도를 파악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이 문제가 두 그룹에게 모두 처음 보는 문제이고 또 풀이 방법도 배운 것을 바로 사용하는 문제였다면 조금 결과가 다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쩌면 이런 나의 기우는 단지 기우이고 실제로 학생들도 이런 문제를 처음 보았을지도 모르며, 그런 경우에는 불공평하다는 생각은 접어야 할지 모르겠다.


이런 긴 서두를 가지고 꼭 하고 싶은 말은 지난번에 적은 내용과 유사한 것이다. 이런 시험을 보일 때는 학생들이 단순히 공식만 외우지 않고 생각해서 문제를 푸는 능력을 키워왔는가를 물어보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이와 유사한 문제를 풀어본 적이 있는가와 없는가의 차이가 극명하게 갈리는 종류의 문제이다. 이런 문제가 제대로 문제 역할을 하는 것은 이런 문제를 처음 사용할 때 한 번 뿐이다. 한번 알려지고 나면, 문제에서 물어보려는 것을 (예시된 문제의 경우) 기억하는 학생들은 거의 문제를 읽지 않고도 바로 풀 수가 있게 된다. (내 경험으로는 이런 기억력은 학생 시절에 매우 좋았다.따라서 이런 문제를 처음 보는 그러나 생각하는 훈련은 열심히 한 학생을 걸러내 보겠다면 시험을 치르는 시간을 많이 주어야 한다. 이런 문제라면 빨리 푸는 학생은 1분이면 풀겠지만 혹시 다른 잘못은 없는지 내 생각이 맞는지 되돌아보면서 풀어나가는 학생은 5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한 10분 준다면 편안하게 풀고 검토할 시간이 있다고 하겠다.


예전에 본고사 시절의 문제가 왜 어려웠는가? 이 기사를 보면서 생각하게 되는 것은 쉬운 문제를 물어보는 시험은 간단한 것을 물어보아야 공정하고 (복잡하면 문제에 익숙한 사람에게 매우 유리하므로), 이런 시험이 아니라 복잡한 생각을 측정하고 싶으면 처음 보는 유형의 문제여야 할 것이라는 것이다. (답만 낸다는 가정이다.)


물론 또 한가지 방법이 있다. 비록 유형을 알고 있더라도 풀이 과정을 자세히 적도록 하면 학생들의 생각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이런 종류의 시험을 대량으로 치르기는 힘들다. 그렇다고 해도 결국 지금과 같은 식의 시험은 사교육을 부추기고 그 교육 내용도 비교육적으로 만드는 지름길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작년, 재작년이었으면 이 시험에 이 학교의 학부모이신 조모 교수님께서 참석하셨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참석하셨으면 몇 점을 맞으셨을까, 또 이런 결과에 대해 뭐라고 하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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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언론에 입시 논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보인다. 입시 시즌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겠지 하면서도 항상 나오는 똑같은 이야기, 그리고 본질을 비켜간 듯 보이는 단순화된 논리 등에 조금 마음이 상한다. 이렇게 해를 거듭해서 같은 말을 되풀이하며 해결점을 향해 나아가지 못하는 것은, 핵심을 젖혀놓은 논의와 함께, 기록에 인색하고 예전 기록을 들쳐보지 않는 습관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의 링크에 따라 읽어본 한 두 가지 기사/의견란에 대해 첨언을 해 둔다.


이 의견란은 일견 비교적 공정한 듯이 보이는 의견이 쓰여 있었다. 간단히 소개하면: 


최근 논술에 고교 교육과정을 넘는 고난도 문제가 나온다. 이것은 고등학교에서 준비하기가 어렵다. 어려운 논술고사는 학생들을 사교육으로 내몬다. 이러한 일반적인 논리에 대해서,


1. 대입 논술의 범위를 고등학교 교육과정 범위로 한정하자.


2. 초등학교부터 학교 교육과정에 논술을 넣어서 능력을 키워나가자.


라는 말씀을 하고 있다. 이에 대한 나의 의견은:


1. 우선 이러한 논의의 전제는 아이들을 사교육으로 내몰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모색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견 옳은 방향인 듯이 보이지만 핵심을 벗어나고 있다. 이것은 사교육을 막을 수 없다는 대 전제를 무시한 것이다. 사교육을 무조건 막을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어려운 시험이 없어지면 불공정하고 비교육적인 사교육만 판치고, 결국 돈 많은 사람만 유리한 쪽으로 흐르게 된다. 이에 대해서는 본인이 예전에 썼던 을 참조하면 좋을 것이다.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 원칙적으로 나의 견해에 동의한다면 수학 논술과 관련된 다음과 같은 점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2. 수학 문제는 기본적으로 배운 것을 응용하는 문제를 물어보게 된다. 그런데 교육과정을 쉬운 것으로 한정하면 물어볼 문제가 별로 많지 않다. 즉 참고서에 있는 문제가 거의 전부이다. 이런 경우에는 학생들이 공부를 할 때 내용을 이해하지 않고 그냥 케이스별 문제를 외워서 문제를 푼다. 이렇게 가르치는데 선생님들조차 익숙해지면 이런 문제가 아닌 생각해야 풀리는 문제를 출제하면 사람들이 교육과정 밖의 문제라고 한다. 특히 다른 방법을 사용하면 쉽게 풀리는 문제를 내는 경우에는 더 그렇다. 그러나 이것은 조금은 잘못된 생각이다. (뒤의 논의를 참조하세요.) 즉 범위를 고등학교 교육과정 범위로 한정한다는 말은 뜻을 알기 힘든 말이다.


3. 초등학교부터 교육과정에 논술을 가르치자는 것은 물론 매우 좋은 의견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선생님이 매우 많이 필요하고 또 선생님의 질이 매우 높아져야 한다. 내신도 몇 과목만 보고, 시험의 과목이 줄어들어서 이런 곳에 쓸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늘어나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아무도 나중에나 쓰게 될 논술보다는 지금 당장 급한 곳의 공부만 하게 될 것이다.



이제 위에 대하여 조금 부연 설명을 하자.


2.와 관련하여 이야기하면, 고등학교 수학 교과과정은 내가 공부하던 1970년대 초반에 비하여 몇 가지 토픽이 늘어났지만 개개의 깊이는 더 얕아졌다. 공부하는 내용과 양을 비교하면 1970년대에는 소위 우수한 고등학교에서 가장 잘하는 학생들도 고등학교 수학의 내용을 모두 마스터하기가 힘들었다. 특히 고등학교 범위의 문제라고 하면 고등학교의 방법만을 써서 설명할 수 있는 문제이면 시간이 오래 걸려도 문제되지 않는 것이었다. 즉 서울대학교 입학시험의 수학과목 합격자 평균이 발표는 30점이라고 했어도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낮았다고 교수님께서 말씀하셨었고, 응시자의 한 30% 정도는 0점이었던 시절이었다. 요즘 시험에 비하면 훨씬 어려운 것이다. (비교가 안되는 것이 풀이를 적어서 partial credit을 받을 수 있는 문제인데도 0점이라는 것은 전혀 한 글자도 못 썼다는 것이므로...) 그 당시의 이런 어려운 문제들도 실제로는 고등학교 교과 과정 내에서 출제된 것이었다.


지금 교과과정의 해석에 대해서 예를 들어보자. 고등학교 교과과정에 예전에는 있다가 지금은 없어진 것으로 원순열이라는 것이 있다. 몇 가지 색깔의 공을 동그랗게 늘어놓았을 때 서로 다른 모양의 갯수를 세는 문제이다. 아마도 이 문제가 고등학교 문제 가운데서 가장 복잡한 기본문제였을 것이다. 이 문제는 어렵다는 이유로 현장 선생님들의 배척을 받아서 기본교육과정에서 제외되었다. (7차 교육과정에서 였다.) 그러나 이것은 정말 말이 되지 않는다.


양쪽 면을 모두 보자. 우선 이 문제를 제외한다면 내가 납득할만한 이유는 단 한가지 있다. 이 문제는 대학의 군론(group theory)를 공부하면 배우는 Burnside의 counting principle이라는 방법을 쓰면 쉽게 계산할 수 있다. 따라서 고등학교에서 대학 과정을 선행학습을 시키게 된다면 빼는 것이 좋다 라고 주장할 수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문제를 고등학교에서 풀 때는 단순히 순열조합의 기본원리인 덧셈법칙과 곱셈법칙, 그리고 경우를 나누는 것을 사용한다. 조금 복잡하지만 고등학교 교과과정의 순열, 조합에서 배운 것을 전부 사용하는 문제로서 이것을 모두 잘 배웠는지를 확인하는 아주 좋은 연습문제이다. 내 견해로는 이것을 푸는 문제를 물어보면 아직도 고등학교 교육과정의 범위의 문제라고 판단된다. 단지 교육부 교육과정 지침에 원순열은 제외한다고 쓰여 있는 것을 확대해석한 사람들이 안된다고 하기는 하지만... (이것도 교육부의 지침은 이 문제를 교과서에 굳이 싣지는 말라는 뜻이라고 보이지, 이 문제가 교육과정의 범위 밖의 문제라는 뜻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데 말이다.)


그럼 진짜로 대학의 Burnside 법칙을 사용해서 푸는 학생이 있다고 하자. 답만을 쓴다면 실제로 선행학습이 역할을 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간단한 풀이 배경을 쓰기로 한다면 실제로 상당히 복잡한 풀이방법 구성에 대하여 써야 하고 이것을 쓸 능력이 있다면 고등학교의 방법보다 훨씬 더 어려운 것을 설명해야 하니 혹시 선행학습을 했더라도 이는 쉬운 일이 아니고, 따라서 절대로 막을 일도 아니라고 보인다. 즉 논술 시험에서는 이런 것을 막을 이유가 없다. 그리고 우리 시절에는 고등학교 선생님들이 고등학교 방법만으로 설명하는 방법을 잘 가르쳐 주셨었다. 지금 선생님들은 왜 그때 선생님들만 못해서 이런 것을 할 수 없다고 하시는지?


이런 문제를 예로 든 이유는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잘 이해하면 그 다음 스텝은 이것의 응용일 뿐인 것이다. 즉 범위 밖이라고 불리는 많은 것들은 실제로는 범위 안의 문제들이다. 이것은 너무 당연하다. 우리 교육과정은, 비록 최근에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그 근간이 되는 예전의 교육과정을 보면 다른 나라도 그대로 사용하는 (특히 일본이 사용하는) 것과 거의 같은 것으로, 매우 훌륭한 교육과정이다. 즉 이것만 공부하면 거의 모든 것을 풀고 거의 모든 것에 적용할 수 있는 교육과정이다. 그러니 이것을 제대로 공부한 사람이면 정말 많은 문제를 풀 수 있다. 단지 이것을 교과서에 있는 문제를 문자 그대로 내는 경우로 제한하는 경우에는 이상해지는 것이다.



3.과 관련하여서, 선생님의 수와 질은 예산이 문제가 된다. 그리고 선생님 수에 대한 해결책은 획기적인 투자 외에는 없다. 그리고 선생님 질에 대한 해결책은 현실적으로 막혀 있는 부분인 대학 박사급 인력이 고등학교에서 교육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는 모든 학교가 공교육이고, 교수나 교사 발령도 국가가 한다. 거기서는 새로 박사를 받으면 일부는 대학에 발령을 받지만 나머지는 고등학교에 발령받아서 몇 년 가르치며 연구를 열심히 해서 대학에 갈 자리를 찾는다.) 이런 변화는 교육학과의 소위 밥그릇과 관련되어서 쉬운 해결책은 안보이고, 따라서 고등학교 선생님의 질적 향상은 불가능해 보인다.


특히 논술과 같은 매우 매우 중요한 읽기, 쓰기 교육이 늘어나려면 학생들이 읽고 생각할 시간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처럼 많은 교과과목을 공부하려면 시간이 없다. 옛날 (우리가 공부하던 시절보다 더 전, 1960년대)과 같이 국어, 영어, 수학만 공부하면 입시는 끝나던 시절이 아이디얼하다. 이 문제도 아마 여러 과목 선생님들과 사범대학 각 학과의 밥그릇 문제가 첨예해서 지금은 교육부 장관도 감히 손을 못대는 문제이다. 어쩌면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대통령이 문제를 제대로 이해했다면 이렇게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지는 않았을 것이고, 또 당시 이해찬 장관이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기만 했더라도 혹시 무대뽀로 가능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이 때가 내가 보기에 가장 가능성을 가진 시기였고, 또 가장 크게 실기한 때이기도 하다. 이에 대한 딴지는 사절한다.


결국 대학 입시 문제에서 대학이 쉬운 문제를 내야 한다는 것과, 고등학교에서 논술을 가르치자는 것은 일견 그럴듯 하지만 약간 핵심을 벗어나간 느낌이 든다.

핵심에 가까운 방법은 위에 들었지만 결코 실행하기 쉽지 않고 이것이 해결되지 않는 한 현재 학생들이 마주친 어려운 상황은 풀릴 수 없다고 생각된다. 이것을 알고 있는 현 교육부 장관이 이명박정부의 전폭적인 지지를 가지고도 해결할 수 없다면 나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불가능한 문제를 단순히 대학이 어려운 시험문제를 내기 때문이라고 몰아가는 이유가, 언론이 이러한 것을 몰라서라면 언론의 수준이 낮은 책임이고, 언론이  알지만 이렇게 이야기한다면 사람들을 호도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하겠다. 


거의 불가능한 것이므로 이야기하지 말자고 하면, 이것은 언론(言論)으로서 또 불가능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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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5일간의 대장정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왔다. 이것은 공식적인 후기는 아니고 어느분인가가 학회 뉴스레터에 공식 후기를 쓰시기를 기다리며 간단한 기록을 한다.


HPM이 무엇인가는 앞에 짧게 소개하였지만 실제로 본 것은 이번이 처음. 일요일 오후에 여행가방을 끌고 DCC에 도착하여 처음 한 일은 선물로 주는 가방에 Proceeding과 ProgramBook을 넣는 일. 모든 사람들이 한 시간 가량 이 준비를 했다. 그리고 숙소로가서 가방을 놓고 나와서 갑천을 건너서 수목원을 산책하고 저녁을 먹으러 갔다.


대전 수목원은 정말 잘 되어 있고 많은 수종과 꽃이 있었는데 한 중간에 있는 공연장에서는 '국카스텐'이 공연을 하고 있는 듯. 그러나 대부분의 동행자들은 '국카스텐'의 이름도 모르는 분들. 무시하고 나무와 풀들을 보러 갔다.^^ (나무와 풀에 밀린 국카스텐ㅠㅠ)

수목원의 서쪽 반을 보고 빠져나가니 동네는 만년동. 먹자골목이 눈앞에 펼쳐졌다. 일요일이라 사람은 하나도 없는데 어디를 가나 찾다가 들어간 집은 칼국수와 뭔가 매운 것을 파는 집이었는데 사진찍은 것이 없는듯. 오징어와 두부 두루치기인가를 하나씩 시켜 먹고 막걸리도 한잔씩 돌리고 칼국수를 먹었던듯. 그리고 사람 하나도 안 다니는 수목원 담장길을 따라서 숙소로 돌아왔다.


저녁때가 되어 아까 낮에 받은 프로시딩이랑 프로그램북을 보는데 프로그램북에 어디에도 플레너리 강연의 초록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 안되는데... 열심히 찾아봐도 없어서 파일을 보니 플레너리는 삽입하지 않았네... 이런. 급히 학생에게 연락하여 세 페이지를 편집하고 인쇄소에 물어보니 일요일은 문을 닫았고 월요일 오전까지 일하기는 어렵다고, 그냥 복사집에서 하는 것이 빠를거라고 한다. 학생이 인터넷을 뒤져서 대전 토요코인 바로 밑에 있는 복사집을 알아가지고 김간사에게 전화하여 직접 뛰어가서 인쇄를 했다. 밤 11시에 가서 거의 한 시간 걸려서 한 듯. 이것을 다음날 아침에 프로그램북과 함께 나누어 주었다.


다음날 아침에 식사는 숙소 꼭대기의 식당에서 컨티넨털 스타일의 양식으로 하고 학회 개회식에 참석했다. 학회 동안 사진 몇 장 찍은 것은 나의 페북에서 보시기를. 개회식에 이어 단가 공연이 있었고 곧바로 Plenary 강연으로 들어갔는데, 나는 골치아픈 것이 시려서 들어갔다 나왔다 하면 시간때우기 작전을 썼음. 덕분에 무슨 이야기 했는지는 잘 모름. 홍교수님께서는 정말 열심히 들으셨는지 모두 재미있었다고 하셨던 듯 하다. 그리고 논문 발표 세션이 시작되었다. 한 세션 끝나고는 점심시간.  만년동에 나갔다. 이창구 교수님께서 일찍 오셔서 모시고 강교수님께서 소개하신 대나무밥집으로 갔다. 여러 가지 우리 음식이 나와서 맛있게 먹고 잘 돌아왔다.


저녁때는 동양사람들이 모임을 만들기 위해서 준비 발표회를 했는데 제목이 Preparatory Meeting for Asian HPM이었던가? 홍성사 교수님께서 사회를 보시고 발표는 전 한국수학사학회장이셨던 이창구교수님과 일본의 모리모토교수님께서 발표해주셨다. 이것은 경청하였는데 이창구 교수님은 조선시대의 수학과 이 때 사용했던 중국의 수학책들에 대한 말씀이었고, 모리모토 교수님은 17세기 일본의 위대한 수학자 세키 다카카즈의 제자 가운데 형제인 두 사람의 업적에 대한 소개였다. 


이것이 끝나고 만찬을 들었는데 DCC 2층의 식당에서 부페로 했다. 음식 수준은 괜찮은 정도. 그래도 간단한 회와 메일국수 그리고 충분한 메뉴와 디저트가 있어서 모두들 즐거웠던 듯 하다. 황선욱 교수와 바방(Barbin) 교수가 인사를 하고 몇 사람이 돌아가며 인사하고 식사했다. 우리는 일본 교수님들과 마주 앉아서 식사했고 내 앞에는 이소다 마사미 교수가 식사했다. 이 친구는 낮동안에 자기가 만든 여러 가지 교육용 자료를 보여주었고 여기서도 이런 이야기를 많이 했다. 특히 자기 어머니는 백제계 사람이어서 백제 사람들이 이주해서 사는 동네 이야기를 했다. 모리소바가 있는 것을 보고 너무 좋아했던 친구.

저녁을 먹고 헤어져서 숙소에 와서는 꼭대기층 식당에 모여 맥주 한 잔을 했는데, 맥주사러 나와 이상욱교수님이 나갔다 왔다. 넉넉히 6팩을 사와서 한 두팩을 마셨다. 나머지는 나중을 위해서 저장... 


다음날 아침은 일요일날 이승온선셩님이 사다 주신 토마토와 빵으로 때우고 나가서 플레너리 강연 듣다 말다 하고 세션을 돌아가며 듣고, 참석하신 박창균 회장님과 좌장을 바꾸어서 박회장님이 오후의 내 시간에 대신 좌장을 맡으시고, 나는 저녁때의 두번째 Asian HPM 사회를 했다. 이번에는 중국의 취안징 교수님의 중국 HPM의 역사 소개와 Chairman 바방 교수님의 본토 HPM의 역사 소개가 있었다. 이것이 끝나고는 아시안 HPM에 참석했던 몇분 교수님들과 저녁식사를 하러 만년동으로 갔다. 중국집 차이나공에서 식사는 했는데 음식은 그냥 그런 정도. 예산이 부족하니 어쩔 수 없는 듯. 그래도 거기의 최 연장자인 곽서춘(구오 슈 츈) 교수님은 매우 좋아하시는 듯. 술도 잘 드시고 부인과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바방 교수와 남편은 황선욱 교수님, 김성숙 교수님, 이상욱 교수님과 같이 즐거운 시간을 보낸 듯. 홍교수님 내외분은 곽서춘교수님 내외분과 잘 지냈고 모리모토교수님과 이소다 교수님은 나와 취안징교수님과 또 홍콩의 린선생님 그리고 시안에서 같이 오신 첸교수님과 모두 어울려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다. 

다시 들어와서는 꼭대기층에 갔었나 기억나지 않는다. 이승온 교수님은 아마도 학교일로 학교에 돌아가셨다가 다음날 오신댔나 해서 우리끼리만 올라갔던 듯.


그 다음날은 수요일이고 오전에 Plenary 강연을 듣고 워크숍인가가 있고는 Excursion으로 공주로 가기로 되어 있었다. 물론 갔다. 나는 발표준비를 해야 해서 빠졌고 홍교수님 일행은 공주는 보실 필요가 없어서 선운사를 향했다. 그런데 수요일 오후에는 비가 오기로 되어 있다고 해서 걱정이었는데 모두들 돌아올때까지 비가 많이 오지 않아서 다행이었던 듯. 나는 학회장 앞에서 간단히 식사를 하고 방에 들어가서 발표준비를 하려고 했으나 피곤하여 잠시 잤던 듯. 4시쯤 방이 더워서 1층에 내려와서 발표준비를 하니 어느새 모두 돌아와서 5시 반쯤인가 저녁먹으러 나가자고 한다. 조금 준비한 것을 뒤로하고 다시 만년동으로 나갔나? 가서 먹은 것은 내 기억이 맞다면 순두부. 모두 순두부를 먹고 이상욱교수님만 콩국수로... 그리고 들어와서는 꼭대기층에서 또 맥주 한 잔 하면서 이승온교수님 오시기를 기다렸다. 8시가 넘어서 회의가 끝나고 그리고도 조금 걸려서 도착하신 이승온교수님과 또 11시까지 마셨던 듯. 마신 양은 맥주 한 캔. 결국 발표준비는 못했다.


수요일 밤부터 태풍이 올라온다는 말이 있었는데 목요일 새벽이 되어 갑자기 바람이 엄청나게 불고 비도 좀 오고 해서 바람소리에 새벽부터 깨서 잠을 설쳤다.

오늘은 기필코 발표준비를 하려고 오전에 플레너리를 듣고 저녁때의 LOC 식사도 마다하고 낮부터 방에 들어간다고 했지만... 점심에 중국 교수들을 데리고 만년동에 다시 갔다. 곽서춘교수님과 취안징 교수님을 모시고 한국수학사학회 관계자들과 모인 자리라서 또 한참 식사를 했고 발표시간인 2시반이 다 되어서야 돌아왔는데... 다시 Jin교수님이 따님과 대전 구경을 한다고, 또 김성숙 교수님 생신이고 해서 케익이나 사야지 하고 둔산동에 나갔다. 윤혜순 박사님은 김창일 교수님 호텔을 옮기러 토요코인에 들리고, 그리고 나서 방에 들어와 피곤한 중에 준비를 한 1/4 정도 했는데 저녁때가 되어 다시 홍교수님과 식사하러 갔다. 이번에 간 집은 사리원면옥. 저녁은 이승온 교수님께서 사셨다. 돼지불고기와 냉면을 맛있게 먹고 소주도 한 잔 했는데, 돌아오니까 피곤해서 잠시 누워서 쉬고 해야지가 깜박 잠이 들어버렸다. 자다 깨 보니 새벽 2시반. 물을 한병 반을 마시고서야 정신이 들어서 발표준비를 했는데 한 시간 반 정도에 대충 끝내고 잠이 들었다. 


금요일 아침에 8시 20분에 눈이 떠져서 급히 간단히 요기하고 세수하고 (면도도 못한 채로) 9시 홍성사 교수님의 Plenary 강연에 참석했다. 한 5분 늦은 듯. 오후에 내가 할 발표 내용의 상당부분을 이 강연에서 해 주셔서 내 강연은 편해지게 되었다. 플레너리를 듣고 나서 다시 올라가서 짐을 싸가지고 체크아웃 하고 내려왔다. 오전 세션에 배교수님이 발표하는 것을 우리말로 하시는데, 갑자기 영어 해설을 조금 넣었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거기 있던 영문과 학생들과 번역 원고를 만들었다. 발표 20분 전에 시작해서 조금 하다 보니 도저히 불가능해서, 발표 시간을 다음분과 바꾸어 놓고 번역을 했다. 발표 시간 1분 전에 끝을 내고 나니 정신이 없다.

점심은 우리끼리 갔었나? 김소영 간사만 두고 우리끼리 사리원 면옥에 가서 만두 한개랑 냉면 한 그릇을 먹었다. 이번에는 김창일 교수님이 점심을 샀나? 맛은 괜찮은듯. 그리고는 들어와서 조금 있다가 마지막 우리 세션이 있었다. 첫째 발표시간은 나와 Jin Yuzi 교수의 발표 (발표는 Jin교수님이), 둘째는 나와 홍교수님 내외의 발표 (발표는 내가), 그런데 발표장이 달라서 이쪽에 있다가 저쪽 방으로 뛰어가는 식이었는데, 그런대로 무난히 넘어갔다. 발표는 준비가 안 된 것에 비해서는 그런대로 무난히 잘 한 듯. 영어야 그저 그러했지만 내가 준비를 잘 못한 홍정하의 부분은 아침에 홍교수님께서 잘 설명해 두셔서 나는 말만 꺼내고 자세한 부분은 안해도 되어서 다행이었다. 원리 부분만 자세히 설명할 수 있어서 그런대로 넘어가고 나니 좌장을 맡았던 Pengelley 교수가 자기도 비슷한 것을 공부한다면서 내 발표 부분의 한 가지가 흥미로왔다고 했다. 처음 보는 친구(나보다 4-5년 위인 듯)여서 뭐를 공부하나 홈페이지를 나중에 들쳐보니 Algebraic topology를 공부하면서 수학사도 강의하는 것이 나와 비슷한 것에 관심이 있는 친구인 듯. 내 발표 끝나고 홍교수님의 발표를 듣고 나니 학회 일정이 모두 끝났다. Closing ceremony에는 못들어가고 Jin Yuzi 교수 보내고 나서 학회가 파하니 모두들 헤어졌다. 나는 OC가 준비해온 쵸콜렛과 와인 선물을 받고 회의장을 모두 치우는 간사님 등의 일을 보고 거의 마지막으로 회의장을 나왔다.


올라오는 길은 수학사학회 간사님 등이 같이 올라오는 차편에 끼어탔고, 많은 물건들을 실어서 트렁크는 꽉 찼고 앞자리에까지 가방을 싣고 올라왔다. 역시 안성에서 고속도로가 막혀서 휴게소에서 저녁을 먹고 다시 올라오니 10시다. 거의 4시간 걸린 셈. 중간에 윤박사님을 내려드렸지만...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김간사님과 정박사님은 집이 가까워서 나를 내려주고 같이 떠났다.


써 놓은 것을 다시 보아도 먹은 이야기 밖에는 없고, 정신없이 지냈는데 별로 한 것도 본 것도 없는 것 같다. 결국 내가 빠진 저녁식사장에서 이상욱교수님이 나를 대신해서 학회의 계획을 외국 교수님에게 전했던 듯. 그래도 빠트린 일은 없는 것같고, 참가했던 사람들도 기분나쁜 기억은 없을 듯하다. 이것만으로도 성공적이라고 할만 한 듯. 가장 많은 일을 한 분은 배재대 김성숙 교수님이고, 그 다음으로 비슷하게 많은 일을 한 분은 숭실대 황선욱 교수님이다. 아마 학회 성공의 공은 이 두 분에게 돌려야 할듯. 


이 학회의 후속으로 몇 가지 학회가 계획되어 있다. 조만간에 중국에서 모임을 만들겠다는 취교수님과 2014년에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ICM의 위성학회를 일본에서 연다는 모리모토교수님이 있고 또 중국 하이난에서는 내년에 모임이 한가지 이미 계획되어 있다. 우리 학회로서는 갑작스럽게 국제화가 진행되는 듯하고 많은 사람들이 바빠지게 될거 같다. 모두 힘을 합해야 겨우 해나갈 수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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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ME와 HPM

수학/컨퍼런스 2012. 7. 6. 00:15

ICME란 "국제 수학 교육자 대회"이고, HPM이란 "수학의 역사와 교육"이다. 이 둘은 국제적인 학회로서 올해에는 한국에서 열린다. ICME-12, 그리고 HPM2012라는 이름으로 ICME는 서울 코엑스에서 다음주 한주 동안(일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열리고, HPM은 곧이어 다음주 동안(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대전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다.


ICME는 정말 큰 학회여서 아마도 3000명 정도의 전 세계 수학교육자들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학회 동안에 수 많은 교육학 연구 발표가 있고 이 대부분은 외국 학자들의 발표이다. 재미 있음직한 논문이 제목만 보아도 많이 눈에 띈다. 나는 그 다음 주의 HPM에서 맡은 일이 한 두 가지 있어서 ICME는 형식적으로만 참석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ICME를 열심히 들으면 그 다음 주에는 너무 지쳐서 정작 맡은 일을 못 할 지경일 것이다. 우리나라 수학계 많은 분들이 지난 3-4년 동안 이 행사를 준비하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 이제 며칠 후면 그 결실을 얻을 때이다.


한편 HPM은  ICME의 위성학회로 열리는 학회로 비교적 조그만 학회이다. 참석인원은 200명 정도가 되리라고 예상하고 있다. HPM은 History and Pedagogy of Mathematics의 약자이고 유럽을 중심으로 수학사가 수학교육에 미치는 영향을 공부하는 학회이다. 조금은 개인적이고 소규모의 학회이지만 여러 가지 주제에 대하여 연구하는 것이 상당히 학구적인 학회이다. 


나는 한국수학사학회와 관련해서 이 학회를 조직하는 일에 관여하게 되었다. 수학의 역사는 오래 되었지만 이를 공부하는 것은 얼마 오래되지 않았다. 그러나 수학의 역사를 공부해 보면 생각보다 많은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일전에 중국 시안에 가서 거기서 유럽과 중국의 수학사가들을 만나보았지만, 그들은 수학교육과 관련된 연구를 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이번에 모이는 사람들은 주로 수학교육과 관련된 수학사 연구를 하는 사람들이다. 이번 모임에서 동양 수학자들의 수학사 연구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그 바탕이 되는 논의가 있을 것도 같다.


수학사는 역사 가운데서도 사람들이 가장 잘 모르고 또 관심도 없는 분야이다. 그런데 이 내용을 잘 보면 다른 역사가 보인다. 사람들의 삶이 보인다. 수학은 쓸데 없는 것을 절대로 하지 않는 분야였다. 이런 것은 아무도 필요로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학에서 어떤 문제들을 다루었는지를 보면 그 사회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이었는가를 알 수 있다. 실제로 역사를 들여다보면 현대인의 눈으로 보면서 이랬을 거야 하고 생각하던 것이 여지없이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 수학의 역사도 그래서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어째서 공부를 하는가,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가르쳐준다. 


역사를 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료를 남기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한 사람이 공부를 많이 하고 훌륭한 연구를 했어도 자기가 아는 것을 남기지 않으면 자기 한 사람으로 끝나버리는 것을 너무 잘 알 수 있다. 당연한 이야기임에도 직접 역사에서 보면 다르게 느껴진다. 우리 나라 수학 역사는 조선시대 역사만이 남아있지만 이것을 보아도 자료를 많이 남긴 때는 조선이 발전할 때 뿐이었다. 여력이 남아서 수학 자료를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것이 만들어졌을 때만 나라가 제대로 나아갈 수 있었을 것이란 것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지금의 우리를 보면 인쇄되는 수 많은 책들 가운데 정말 지금의 중요한 생각을 뒤에 전하는 그런 책은 얼마나 있는가? 외국과 비교해 볼 때 그런 책의 양은 너무 적다. 정부 정책에 따라 좋은 연구를 하고 훌륭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사람은 많아졌지만, 자기가 알아낸 것을 정리하고 남기려는 노력은 너무 적다. 결국은 다음 사람은 똑같은 것을 다시 반복해야 하고, 지금 잘 하는 사람도 지금 한 때로 끝나버릴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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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학기 강의를 모두 종강하였다.


두 강의 중 하나는 복소해석학이었고, 이 강의는 강의를 개설하는 것을 깜박하는 실수가 있었던 관계로 학기 시작할 때즘해서야 개설했었다. 덕분에 수강신청한 학생들 수가 10여명에 불과했고 결국 12명의 학생이 끝까지 수강을 마쳤다.


보통 강의를 하면 학기 중간쯤 되어서는 학생들의 1/3 이상이 수업을 따라오지 못하는지 재미가 없는지 강의에 들어오지 않는다. 조금 심한 강의는 반 이상이 포기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그런데 이번 복소함수론은 낙오자가 거의 없어보였다. 신기하게도 마지막 수업시간에도 출석 12명으로 수업을 마쳤다. 이런 적은 없었는데, 이후에도 쉽지 않을 것이다.


복소함수론 강의는 어땠는가? 학기초에 강의를 계획했던 것처럼 Noguchi의 교과서를 따라서 나갔다. 그런데 자세히 읽어보니 Noguchi는 학부에서는 조금 어려운 교과서임에 틀림 없었다. 물론 우리가 학생 때 사용했던 Silverman의 내용도 만만치 않았었지만... 그러나 초반에 나오는 평면의 위상과 멱급수power series의 이론을 조금 자세히 보다 보니 시간이 많이 흘러버렸다. 그래서 멱급수의 후반부는 조금 빨리 마치고 겨우 복소미분에 들어갔다. 원래 계획은 residue의 정리는 이야기했으면 했지만, singularity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끝났다. 겨우 한 것이 코시의 적분정리와 적분공식, 모레라의 정리 정도이다.

하지만 Fujimoto의 교과서를 잠시 참조하면서 \( \partial/\partial\overline{z} \) 에 대한 공식도 다루었다. 이것은 보통 교과서에서는 찾기 힘든 것이다.


다음 학기 복소해석학 강의는 어찌될지 잘 모른다. 학교에서는 10명 이상의 학생이 수강신청을 해야지만 과목을 열어준다. 이 12명 가운데 졸업하는 학생도 있고 하니 10명을 유지할 수 있을까? 물론 다음학기에 수학사 강의를 계획하고 있어서 결국 기하학개론과 함께 3개의 강의를 계획하고 있는데 벅찬 강의 스케쥴이기는 하다. 열렸으면 하는 마음과 너무 힘들까 하는 마음이 교차하는 학기이다.


이와 함께 강의했던 집합론은 반학기 집합론과 반학기 거리공간 이론을 공부했다. 집합론을 줄인 이유는 조금 어렵고 논리적인 부분을 희생하고 실수의 구성과 그 위의 수렴 이론을 더듬어봄으로써 해석학 공부에 도움이 되고 또 공부한 집합론의 위상 이론에의 활용을 맛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실제로 이런 방향으로 바람직한 결과를 얻었다고 생각된다. 교과서인 Munkres의 Topology는 집합론 부분이 약간 이상하게 쓰여 있지만 직관적이라는 점에서는 높이 살만 하고, Spanier의 1955년도 강의록은 매우 요약되어 있지만 꼭 필요한 것만 있다는 점도 좋다.이렇게 연계된 강의록을 하나 쓰는 것도 좋겠다. Spanier의 강의록이 원래 이런 형태이지만 이것은 이미 50년이 넘어서 조금은 구식이고 너무 형식적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용만은 최고라고 아니할 수 없다.)


다음학기 강의는 앞에 말한대로 기하학 개론, 복소해석학, 그리고 특강으로 동양수학사를 할 예정이다. 복소해석학 부분은 어려워지는 부분이고, 동양수학사는 처음하는 강의인만큼 신경이 쓰인다. 내가 재미있으니 학생들도 재미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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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난주에 중국에 다녀왔다.

중국 시안(西安)에서 수학사학회를 하는데 참석차 다녀왔는데 아무런 obligation 없이 다녀온 것이어서 마음이 조금 편한 감이 있다. 물론 우리 학회 전 회장님을 수행하는 일이 있었지만...

중국말을 잘 하는 이박사님을 수행원으로 참여시켜서 정말 편했다. 안그랬으면 아마도 아무것도 제대로 못했을 것이다. 


중국은 두번째이고 2년전에 충칭(重慶)을 갔을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여행이었다.

충칭은 중국이 한국을 초대한 학회여서 대접이 융숭했었고 많은 사람들이 갔었지만 그쪽에서 우리에 대한 준비를 많이 했던 학회였다. 이번 학회는 물론 학회 준비는 많이 했지만 우리는 그리 대단히 중요한 참가자에 끼지 못하는 듯 했다. 


중국 안에서는 비교적 가까운 두 곳이었지만 전혀 다른 지방이었다. 정말 대비되는 두 도시였는데 충칭은 산지이고 시안은 평지인데, 충칭은 비가 많이 오는 듯하고, 수목이 잘 자라고 사천지방의 특색을 갖춘 시골같은 곳이었는데, 시안은 메마른 공기에 먼지가 많고, 커다란 성으로 둘러싸인 오래된 대도시의 면모를 갖춘 중국의 가장 오래되고 오랫동안 수도를 했던 도시의 느낌을 조금은 간직한 도시였다.


단지 이것이 이미 1000년이 넘은 옛날 이야기이다 보니까 현대인의 눈으로 보기에는 그리 impressive하지 않고, 지금은 중국의 변방같이 느껴지는 곳이 되어서인지 현대식 발전은 아직 많이 들어오지 않은 듯한 조금 이중적이면서도, 확실히 중국같지만 외국같은 느낌은 나지 않는 그런 곳이었다.


4박 5일을 있었지만 도착한 날은 학회가 없었고 떠나는 날은 아침 일찍 나왔으니 실제로 3일을 있었다. 이 가운데 2일은 확실하게 학회에 참석했고, 마지막날은 알아들을 수 없는 중국 사람들의 영어 강의를 뒤로하고 몇 군데 근처 관광지를 돌았다. 이곳은 예전 중국의 장안長安이라 불리던 곳으로 주周나라부터 시작해서 진나라 한나라 당나라 등의 수도였던 곳이어서 많은 유적이 있는 곳임에 틀림 없다. 몇 군데 절도 보고 싶었고 비림碑林도 한 번 봤으면 했지만 모두 못했다. 대신 마지막날 본 것은 반파촌半坡村이라는 신석기시대 유적지와 진시황릉이었다. 반파촌은 처음 듣는 곳이었지만 꽤 큰 유적지이고, 나중에 책을 읽어보니 20세기 후반의 중국 고고학 발굴의 성과의 하나라고 할만큼 중요한 유적지라고 되어 있었다. 상당히 오래전의 유적지임에도 거기서 출토된 유물들이 매우 발전된 형태를 띄고 있었다는 것은 놀랍다. 하지만 중국이 열심히 중국 주변의 문명이 반파와 같은 중국 중심의 문명에서 전파되었다는 것을 입증하려 했어도 실제로는 그러지 못하고 중국 전역에서 유사한 정도의 서로 독립적인 문명이 존재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많은 유적지를 발굴했다는 것은 아이러니컬 하기도 하다.


2000년 전쯤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했을 때보다 500년도 더 전부터 이지방이 중국의 중심지였다는 것은 내게는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던 것이다. 나는 장안이 중국 고대의 대도시의 하나라고만 생각하였지 이곳이 가장 오랜동안 수도였다는 것은 전혀 몰랐다. 그리고 중국의 전체적인 얼굴을 보면, 중국의 가장 오래된 문명인 하, 은(상)의 중국 중심지를 초기에는 서쪽의 변방의 부족들이 쳐들어와서 나라를 세우고 통치한 것이 주에서 당까지이고, 그 이후에는 동북쪽 변방 부족의 원과 청이어서 그들의 수도가 중국 서북쪽 귀퉁이와 동북쪽 귀퉁이에 있을 수 밖에 없었다는 것도 전혀 들어본 적이 없다. 이렇지 않은 중국의 나라가 몇 안되었고 이 몇 안되는 중화민족의 나라들은 정치면에서 그리 잘 통제되지 못했다는 것도 아이러니컬 하다.


결국 중국의 실체는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계속해서 침입해온 외세가 중국 땅의 백성들을 노예처럼 부리며 200~300년을 지속하는 것의 반복이다시피 한 것은 현재 중국이 단결을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생각하는 이유가 한족의 단결이라기보다는 이러한 외세의 침입 또는 내부에서의 반란을 두려워하는 부분이 더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너무 단순한 생각인가?


이번 학회의 중국측의 event는 고희가 된 李文林교수의 칠순잔치 겸 이미 40년이 된 중국과 프랑스 사이의 수학사 교류를 축하하는 event였고 이런 사실에 무지했던 나는 마지막날 저녁의 만찬장의 분위기를 보고서야 이 학회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었다. 사실 그 때까지는 단순히 학구적인 컨퍼런스라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1970년대초부터 프랑스 수학자들이 중국 (당시 중공)을 방문했던 것은 이문림 교수의 공로일 것이고, 이러한 유대관계는 중국(동양) 수학사를 유럽에 소개하는 창구가 되었을 것이다. 영국의 니덤교수가 중국 과학기술사에 대한 treatise를 집필했지만 꾸준한 연구는 프랑스가 더 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고, 특히 그 자리에 왔던 Martzloff 교수를 위시한 많은 프랑스 수학사가들이 중국말을 쉽게 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단순히 역사에 무엇이 있었는가를 기록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 의미를 철학적 입장에서까지 분석해보는 수준의 공부를 하고 있는 그들 중에는 20세기 부르바키 학파의 거장의 하나인 캬르티에 교수가 80의 나이에도 시안을 찾아서 발표를 하고 자신의 이야기로는 처음 시안에 온 것이 1972년이었다는 것이니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는 눈이 너무 좁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로 드는 생각은 능력 부족과 함께 수학공부하고 수학사 공부하고 중국말도 배우고를 다 할 수 있는 환경에 있는 그들이 부럽다는 것이다. 왜인지 우리는 이런 것이 잘 되지 않는다. 왜일까? 나만 혼자 못한다면 나의 능력을 탓하면 되지만, 그들은 모두 다 하고 우리는 모두 다 못한다면 다른 이유가 있을 터, 이런 것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사람이 나라 교육을 맡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중국은 아직도 갈 길이 멀어보인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있다는 것은 제대로된 일을 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고 이런 것이 빛이 나는 날이 올 것 같다. 우리는 특별한 노력을 해야지만 적은 숫자로 핸디캡을 극복할 수 있겠지... 거기서 본 일본 교수님들(나의 선생님뻘)도 이러한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이 여실히 보였다. 지금 잘나가는 일본의 학자라는 생각은 추호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번 여름에는 HPM이라는 수학사 학회를 우리나라에서 연다. 여기 왔던 사람들 가운데 몇 명은 거기도 참석할 것이다. 준비할 것이 훨씬 더 늘어난 것 같고 생각할 것도 많이 늘어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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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두 주일 전에 미국에서 소포가 왔다.

미국에 주문했던 중고책 몇 권이 들어 있었다.

이 책은 amazon이나 alibris를 통해서 찾아 주문했었다.

이 가운데 한 권의 책은 어딘가에서 좋은 책이라고 해서 주문해 보았다.


제목은 Calculus of Variations이고 Gelfand와 Fomin의 책이다.



이 책은 아마도 20세기 중엽에 중요한 역할을 했을지도 모르는 책이고 이보다 조금 일찍 구입한 Lanczos의 Variational principles of mechanics라는 책도 여러 군데서 언급하는 유명한 책이다. 이 책은 수학의 이론 부분에서 잘 해설한 조금은 짧은 책이라고 하겠지만 Lanczos는 응용을 염두에 두고 쓴 책이라고 보인다.

(요즘 Springer의 Grundlargen? 시리즈에서 나온 Calculus of Variations 책으로는 두꺼운 2권짜리 책으로 순수이론을 총망라한 편미분방정식 책이 있다.)


Lanczos를 보면서 느끼는 점은 20세기 중엽의 책으로 보기에는 상당히 편안하게 쓰여있고 내용도 깊게 들어가지 않는 듯하다. 물리적인 문제도 들고 계산도 보여주면서 나가서 기초적인 변분학 내용을 익힐 수 있게 쓰여져 있는 듯하다. (아직 한 번 들쳐본 정도라서 잘은 모른다.) 이 사람이 쓴 Applied Mathematics 책도 이와 비슷하게 너무 이론적인 것에 치우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이 책이 여러 공학자, 물리학자 등에게 읽히고 그런 논문에 refer되는 것 같다.


이렇게 구입하는 책들 가운데 상당부분은 미국의 지방 대학 도서관이나 public library에서 소장하고 있던 것을 방출한 것이다. (Released 도장이 찍혀 있는 적법하게 방출된 copy이다.) 더 이상 둘 곳이 없고 읽는 사람도 없다고 생각되어서 방출한 것일 것이겠지 싶다.


그런데 우리나라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우리는 이런 책이 꼭 필요하다. 현재 산업과 기술이 발전하는 단계에 있는 우리 수준에는 초보적인 연구 기반을 구축할 때라고 보인다. 비록 S사가 세계적인 상품을 생산하고 있지만 그 뒤를 받치는 기초적 연구는 아직 초보단계이다. 이럴 때 꼭 필요한 수학적 지식은 이런 책에 들어있는 것처럼 조금은 낡은 그리고 조금은 쉬운 수학일 것이다. 그리고 공대에서 공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이런 이론을 알아야 하겠지만 분명히 제대로 배우고 있을 리가 없다. 공대 교수님 중에 이런 수준의 강의를 제대로 할 수 있는 분은 많지 않고, 수학과에 와서 듣지도 않으니까... 


선진국은 필요 없다고 버리지만 우리는 꼭 필요해 보여서 버리는 책을 사고 있는데, 사실 이런 것이 제대로 기반이 되려면 우리 말로 쓰여져 있어야 할 것이다. 다시 번역 내지는 교과서 논리로 돌아가게 되겠지만 이런 것들을 얼마나 accessible한 형태로 만들어 두는가가 다음세대의 발전을 위해서 중요할 것이다. Calculus of Variations 없이 응용수학이 나아갈 수 없을것이고, 지금은 그럭저럭 해나가고 있지만 조금 있으면 산업체에서 이런거 잘 하는 사람 없나 하고 찾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우리나라에 준비되지 않으면 이런 것은 외국 사람을 불러서 시키는수 밖에 없는데, 지금 교과부의 생각이 이런 것이라면, 글쎄 과연 이런 식으로 기반되는 이론을 얼마나 받쳐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결국 우리나라에는 이 결과로 남는 end 기술만 있고 이를 개발하는 능력은 영원히 정착하지 못할지로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늦었어도 빨리 대비하는데는, 특히 현재의 부족한 인력으로 감당할 수는 없으니 지금 공부하는 세대가 빨리 진입할 수 있게 하려는데는, 쉬운, 하지만 핵심을 짚는 책이 필수이다. Gelfand와 Fomin의 책은 이런 것을 할 수 있게 쓰여진 듯하다. 응용문제는 별로 없지만 본론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쉽게 쓰고 있다. (러시아의 수학 책의 특징이라고 하겠다.) 이런 것과 Lanczos와 같은 이론 문제 해설서 정도를 가지고 있으면 어떤 문제집을 가지고와도 해결할 수 있는 준비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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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어떤 교수님의 트윗을 통해서 요즘 유행(!)하는 수학 교과과정 간소화(이것은 내가 임의로 붙인 이름이다)에 대한 글을 읽었다. 이 글은 독일에서 자녀들을 키우고 있는 어떤 학부모가 쓰신 독일의 수학 교육과정에서 불필요한 수학을 많이 빼서 학생들이 우리나라보다 나은 수학을 공부하고 있다는 요지의 글이었다.

내가 놀랍게 생각하는 것은 이분의 생각이 아니라 이에 대해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수학자들도 있다는 것이고, 이에는 조금 혼돈스런 점이 있지 않을까 하여 글을 쓰게 되었다. 이 글에서는 물론 수학, 그리고 기초과학 나아가서는 기초학문분야 전반에 대한 변호가 주된 이야기가 되겠지만 세상이 마음먹은대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바꿀 수 있는 것은 쉽게쉽게 바꾸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점에 대하여 이야기하려 한다. 물론 필자는 수학 외에는 문외한이므로 수학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것이다.



우선 굳이 이분의 글에 딴지걸 생각은 없지만 올려주신 시험지의 내용을 보고 느끼는 점이 많았습니다. 우선 이 시험(수능모의고사에 해당함)을 보니 수학 시험에 시험문제가 3문제였습니다. 우리도 이런 시험을 볼 수 있으면 하고 정말 바라는 식의 시험이고, 현재 내가 소속돼 있는 학교에서 수시 논술시험에 내는 수학시험문제와 유사한 형태지만, 우리 경우 이런 시험문제 위주로 내면 교과부에서 곧바로 지적을 받던가 나아가서 교육부의 재정지원이 줄어들거나 합니다. (우리가 이런 논술시험은 보아도 수능시험으로는 보지 못하는 것은 첫번째가 채점자의 권위가 인정되지 않으면 아무도 채점하려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고, 둘째가 실제로 짧은 시간에 채점하는 것이 불가능한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즉 시험이 이정도만 되어도 학생들은 지금 우리나라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내용을 이해하고 나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시험에 대비해 공부하게 되면 수학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학생은 훨씬 더 늘어날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냥 공식 몇 개, 그리고 나오기 쉬운 문제 몇 개 외우면 되는 시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시험을 보고 50%라도 점수를 받으려면 시험에 나온 수학 대부분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지요. (우리나라 수능 문제의 경우 틀에 박힌 문제들만 맞추어서 50%를 맞추려면 대표적인 문제들의 틀에박힌 풀이법을 외우다시피 하면 됩니다. 물론 어려운 몇 문제를 맞추는 것은 이보다 조금 어렵지만... ) 실제로 독일 시험문제는 아마 우리나라 수능시험에서 제일 어려운 문제와 비슷한 수준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5지선다에서 답을 찾는 것과 그 문제의 풀이와 답을 적는 것은 어려운 정도가 수십배가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즉 우리나라는 시험시간에 문제 20개를 푸는 식이지만, 독일은 3문제를 푸는 식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이고요. 이렇게 시간을 많이 주는 이유는 단지 답을 적는데 걸리는 시간 때문이 아니라 이런 문제의 풀이를 머리속에서 논리적으로 정리하는데 그리고 그 과정에 결함이 없는지를 생각해보는데 시간이 그만큼 걸리기 때문입니다.


독일 교육과정 내용이 줄었다고 하는 것은 아마도 20세기 후반의 교육에 비해서 줄었다는 것이겠지요. 모든 나라의 대학 교육이 대중교육 형태를 띄면서 그 내용을 줄이는 것이 추세인 듯 생각됩니다. 하지만 수학에서는 그 나라 수학을 이끌어갈 수학 엘리트 교육과 일반인들의 사고능력을 키워줄 일반수학교육으로 이원화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실제로는 몇가지 더 나누어야 하겠지만요.) 우리나라는 이 앞의 부분이 없기 때문에 일반교육이 엘리트교육까지 하느라고 더 혼돈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프랑스의 경우에 보면 이런 엘리트교육을 받고 수학자의 길을 걷게 되는 사람들은 대학에 들어오는 순간에 우리의 대학 2학년 정도까지의 내용을 이미 공부하고 들어오고, 대학을 졸업할 때에는 우리 대학원 석사과정의 기본 내용은 모두 공부를 끝내고 있는 것 같아요. 이는 대학원에서 같이 공부해 보면 알 수 있는 일이지요. 아마 영국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유럽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대학 및 대학원 교과서는 요즈음 우리나라에서 가르치는 것보다 더 수준이 높은 것을 보면 결코 수학의 교육과정이 줄어드는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일반인은 수학을 조금 덜 배우도록 하지만 수학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수학을 더 가르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여기서 수학이 필요하다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해 봐야 합니다.

어려운 수학을 공부해야 하는 사람에는 수학자 말고도 자연과학, 공학, 그리고 인문과학 등 '과학'과 '공학'이라는 이름이 붙은 전공을 공부해서 써먹겠다는 사람들은 모두 어떤 종류의 수학을 공부해야 합니다. (모든 과목은 아니겠지만요) 그리고 이 수학에는 수학과 통계학 그리고 계산법이 포함됩니다. 전통적인 수학과 통계학 외에 직접 계산해서 답을 낼 수 있는 계산법도 매우 중요한데 여기에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써서 원하는 계산을 할 수 있는 것도 생겼습니다. 20세기 후반에 발전된 이 새 방법은 컴퓨터학과에서 배우는 전산과목 내용과는 전혀 다른 것이고요, 수학 프로그램을 활용해서 통계를 내고, 방정식을 풀고 하는 것입니다. 손으로는 절대 할 수 없는 것을 하는 것이지요. 이것을 해 보면 프로그램을 쓸 수 있는가 없는가는 수학을 얼마나 잘 이해하는가에 달렸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즉 몇 가지 틀에 박힌 문제를 풀수 있는가는 별 도움이 안되고 수학 및 논리적으로 합당한 방법을 스스로 찾아내는 것이 핵심인 것이지요. 계산은 컴퓨터에게 맡기고...

이런것을 하려 하면 수학에서 필요없다고 버릴 내용은 없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것을 해야 하는 학생들은 우리학교 1년 입학생 5000명 중에서 적어도 4000명정도에 해당합니다.  물론 이 학생들이 모두 나와서 이런 일을 할지는 모르지만 그렇다고 이 공부를 하러 들어온 학생들에게 나중에 필요없을지도 모르니 공부하지 말아라 할 수도 없는 것이고, 고등학생들이 이런 학과에 들어가려고 노력하는데 너희들 중에서 90%는 나중에 수학을 안 쓸테니 공부도 10%만 해라 할 수도 없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진로를 미리 결정할수만 있다면 수학공부를 많이 줄여줄 수도 있고 더 실용적인 수학을 가르쳐줄 수도 있겠지만 불가능한 일 같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교육해야 할 것인가? 이것은 정말 어려운 질문입니다. 가르쳐보면 볼수록 점점 더 답이 없어지는 것이기도 하고요.  우리나라 수학 교육은 입시준비를 위한 교육과 창의력을 가진 인재를 키우기 위한 두 가지 교육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모든 곳에서 목표는 두번째 것을 내세우지만 실제 교육은 첫번째 것에 맞추어 하고 있죠. 어떤 경우에는 이 두가지를 혼동하기도 합니다. 이것의 괴리를 없애지 않으면 독일같은 교육은 되기 힘들겁니다.


하지만 몇 가지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우선 어떤 선생님이 가르쳐야 하는가 하는 것인데, 입시 준비가 아니라면 하는 가정을 하고 이야기하지요. 이 경우 학생을 가르치기 어려운 정도는 아래로 내려갈수록 더 어렵습니다. 극단적으로 대학원에서 학생들에게 강의할 때는 자기가 강의하는 전공의 내용만 잘 알면 강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학원 전공과목들은 젊은 박사들도 잘 가르칩니다. 그러나 학부 과목을 창의적인 관점에서 가르치려면 수학 전반을 잘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밑으로 내려와서 초등학교로 내려가면, 수학의 내용은 쉬워보이지만 그 내용은 수학 전체가 뭉뚱그려서 나타나고, 여기서 학생들의 창의적인 생각을 알아보려면 대학과 대학원 수학을 다 알아야 그런 것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리고도 학생들의 심리적인 부분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므로 이것은 정말 뛰어난 선생님이 아니면 안 됩니다. 그래서 초등학생 때에 이러한 것을 모두 잘 아는 사람과 접할 수 있으면 나중에 공부하는데 정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 반대이지요. 초, 중등 학교 선생님들은 학생 심리를 잘 알지만 고등수학은 전혀 모르기도 하고, 고등수학을 알아도 핵심은 모르는채 문제만 풀줄 알거나, 수학은 잘 하는데 심리를 몰라서 학생들과 부닥치기도 하고...


초등학교의 교육을 조금이라도 ideal하게 바꾸어 보려는 노력이 공부하는 내용을 좀 줄이고 대신 생각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늘려보려는 시도라고 생각됩니다. 독일이 어쩌면 이런 것을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변화의 핵심은 선생님이 준비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고등수학을 잘 모르면 창의적인 생각을 하는 학생들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것인지를 알 수가 없지요. 수업시간에 어떤 생각이 나서 물어봤다가 선생님한테 야단만 맞은 경험을 가진 사람은 많을 거예요. 선생님이 준비되지 않은 경우에는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단편적인 생각만으로도 독일에서 교육의 변화가 실제로 수학을 조금만 공부하자는 것인지 잘 알 수 없게 됩니다.


이 분이 쓰신 글 가운데 독일에서 정치, 사회 교육으로 학생들에게 입센의 드라마를 보고 토론/레포트를 내주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숙제의 포인트가 민주주의에서 소수, 특히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는 소수의 중요성을 간과하기 쉽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라고 글에 쓰시고 있습니다. 수학 교육도 이와 마찬가지로 현상을 제대로 파악하는 소수의 의견이 매우 중요하고, 이를 소수로 만들지 않으려면 이 상황을 모두가 스스로 이해해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수학에 대해서 제가 잘 하는 말이 있습니다. 수학자는 정치가와 달라서 대부분 아무런 권력도 추구하지 않습니다. 러시아의 어떤 수학자처럼 명예도 헌신짝처럼 내버리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공부하는 것이 어째서 모든 나라의 시험의 첫머리에 올라가는지? 모든나라의 교육과정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지? 어째서 오바마가 수학이 국력이라고 외치는지? 이 모든 것이 수학자의 정치력이나 권력에서 나오는 것이 전혀 아니라는 점은 명백합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는 못하더라도 수학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수학은 어디까지만 공부하면 된다는 것도 없습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평생을 살면서 필요없는 수학은 없습니다. 다른 학문은 물론 같은 기초과학에서도 필요없는 물리나 필요없는 화학은 있을지 몰라도 필요없는 수학은 생각하기 힘듭니다. 수학은 언어와 유사하고 어느 나라나 언어와 수학은 교육의 기본입니다.


모든 나라가 수학을 최대한 가르치기 위해서 효율적인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초, 중등학교에서는 내용을 많이 가르치기 보다는 수학으로 생각하는 법을 많이 가르치려 변화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이는 추상적인 수학으로 현재 배척받는 20세기 프랑스의 부르바키 수학을 현실 응용 가능하게 가르치려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부분입니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수학 교육은 여러가지 심리학적 이론이 끼어들기는 했지만 19세기 말까지 미국에서 추구했던 실용수학을 20세기 수학 기반 위에 다시 세우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리고 현재의 변화는 100년 전 20세기 초의 새로운 수학 교육 물결과 마찬가지로 현재 알고 있는 이론에 맞춘 새로운 수학 교육을 시도하는 것일 수 있고, 이는 수학이 쉬워지는 것이 전혀 아닐 것이리라고 생각되는 이유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 개개인이 공부에 투자하는 노력의 총량은 변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공부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노력을 투자해서 최선의 결과를 얻으려면 공부의 효율성을 높여야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우리 교육체계는 조금만 가르치는데는 효율이 높은 형태이지만 많이 가르치려면 효율이 낮습니다. 독일은 많이 가르치는데서 우리보다 효율성이 높은 체계를 가지고 있다고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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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주 동안 강원도 정선에서 고등과학원 미분기하 겨울학교가 있었다.

월-금 5일에 걸친 기간에 4개의 집중강의가 계획되었다.
강의 시간은 오전과 저녁시간(저녁 식사 후)로 계획되었고 organizer인 최재경 교수님에 의하면 낮시간은 스키를 타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시간으로 배정해두었다는 말씀이다.

최재경 교수님: organizer

그런데 하루를 지나본 사람들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오전에 빡센 두 강의를 듣고 점심먹고 스키를 타고 다시 저녁먹고 두 시간의 빡센 강의를 듣고 보니 너무나 힘든 일정이라는 것이다. 나같이 점심먹고 한잠 잔 사람들의 경우에도 힘든 일정이라고 느껴지니 스키탄 사람들은 무리임에 틀림 없다. 왜 이런 일정을 잡으셨을까?

보통 때의 겨울학교 일정을 더듬어 보면 이렇다. 오전에 강의, 점심먹고 또 강의, 저녁때쯤 조금 쉬운 대학원생을 위한 강의, 이렇거나 오전엔 강의, 오후에는 논문 발표, 저녁먹고 자유시간, 이렇다. 이러면 무슨 일이 생기는가? 우선 조금 놀고 싶은 경우에 (여기라면 스키) 낮시간을 어찌 내야 한다. 즉 강의를 빠지는 것이다. 주변에 관광이라도 하고 싶어도 저녁먹고 깜깜해지만 볼것이 없다. 그러니까 어차피 많은 사람이 빼먹기 쉬운 시간은 아예 준다는 것. 이것 그럴듯 하다. 그런데 보통 때는 또 한가지가 있다. 저녁을 먹으면 백발 백중 한잔을 걸치게 된다. 어떤 친구들은 저녁 내, 그리고 가끔은 밤새도록 한잔이 이어져서 다음날 아침 강의를 빼먹기 일수다. 아 그런데 이번에는 그럴 수가 없었다. 저녁때 강의를 듣고 나면 피곤해서 그냥 자게 되고 한잔 할 여유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비는 낮시간에는 더욱 불가능하니... 공부시키자는 묘수였다는 중론이다.


발표자 네 명

이번에 강의를 맡은 네 사람이다. 사진 순서로 왼쪽부터 최재경, Mark Haskins, Peter Topping 그리고 Mohammad Ghomi 교수이다. 강의 내용 등은 아래에 첨부할 포스터와 KIAS 홈페이지 등을 참조하면 되겠다. 강의실은 중형의 세미나실을 빌렸는데 50명 가까이 들어가는 방이 거의 꽉 찼다.  생각보다 많은 젊은 기하학자들, 중견 교수님들로 성황이라고 아니할 수 없고, 오랜만에 기하학 강의를 들었는데 예전 같으면 그냥 "뭐 저런 것도 하나부다" 하고 쳐다보는 사람도 많았을텐데, 지금은 모두 그 내용도 열심히 듣고 질문도 하는 것이 이 내용들을 따라가고 있구나 하는 것을 잘 알 수 있었다. 젊은 박사들 경우에는 이 내용에 정통한 친구들도 보이고 하는 것이 정말 많이 발전했구나 하는 격세지감이 든다. 

강의실 전경

이번 강의는 각자 맡은 내용을 정말 잘 요약해서 강의해 준 듯하다. 나는 듣다 말다 한 듯 했지만 평소 이런 내용을 알고 싶어도 감히 책을 읽어볼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을 각각 4시간 동안에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이야기해 주는 것은 드물다. 단지 정말 쉽지 않은 내용이어서 이 4시간으로는 좀 아쉬운 감이 있다. 그러나 이들 중 몇 명은 좋은 참고도서를 알려주었기 때문에 진짜로 공부해 보겠다면 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내가 집중해서 들은 것은 Ghomi 교수의 h-Principle 강의이다. 내가 박사 공부하던 시절에 처음 나와서 그 때 세미나에서 들어보면서 뭔말인지 하나도 몰랐던 내용이어서 다시 들어봤다. 다른 교수들의 설명과 Ghomi 교수의 비교적 자상한 강연으로 어떤 식의 이야기가 있었는지는 감을 잡을 수 있었다. 본론은 이야기할 수 없어서 전혀 듣지 못했고 응용의 방식만을 이해했지만 한 번 보고 싶은 내용이다. Eliashberg의 책이 Gromov의 어려운 책을 잘 풀어 설명하고 있다고 하니 주문하자고들 한다.

최재경 교수님이 디자인한 듯한 포스터가 첫날 책상위에 가져가라고 놓여 있었다. 한 장 들고 왔었는데 마지막날 강의 사이에 연사들에게 사인을 받았다. 참가자 모두에게 받을까도 생각했지만 괜히 분위기를 망칠 듯도 해서 연사 것만 받았다. 

포스터와 연사들의 사인

우리가 묵은 방은 콘도가 새거기도 하지만 시설도 잘 되어 있어서 아주 편안하게 묵었다. 식사도 사북과 고한의 맛집들을 돌며 각종 음식을 맛보았다. 신해용 교수님의 차로 돌아다니며, 또 신교수님의 고향도 강원도라 해설도 들으면서, 재미있는 한 주를 보냈다. 내 방에서 바라보면 콘도 전경과 그사이에 있는 눈썰매장이 보이는데 아침 햇볓을 받은 사진은 꽤 예쁘다. 하지만 콘도 선전으로 보일 것 같아서 여기다 올리지는 않는다. 콘도의 서비스는 충분히 좋았다고 생각된다.

역시 끝나고 나니 이 내용에 대한 강의록 욕심이 난다. 영어로 번역할 논문이 열흘 안에 끝나야하니 거기 집중해야 하겠지 그 다음이 되면 다 잊어버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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