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도에 일본 이와나미(岩波) 서점은 基礎數學選書라는 교과서 시리즈를 간행하기 시작했다. 일본서적에 관심을 많이 가지지 않던 시절이어서 이 책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제작되었는지는 잘 모른다. 이와나미는 이 이전에 1970년대에 강의록 시리즈를 출간했고 이것들 가운데 좋은 책들은 나중에 책으로 되어 나왔었다. 그러나 이 1990년대의 시리즈는 따로 기획된 강좌에서 시작되었고 앞의 것과 별로 상관이 없던 듯하다. 

이 시리즈는 일본 수학의 거봉인 코다이라 쿠니히코(小平邦彦) 교수님이 감수하고 7명의 편집진이 더 있다. 그리고 실제로 이 감수자와 편집진들 중의 상당수가 책을 집필하였다. 이 시리즈의 맨 처음에 감수자인 코다이라 교수님이 간행사로 쓴 글이 한 페이지 있어서 여기 옮겨 둔다. (일어를 거의 모르는 사람이 번역한 것이니 대략만 보시기를...)

부제는 "수학적 현상의 파악을"이라고 되어 있다. 1990년 6월의 글이다.

간행을 맞아서
- 수학적 현상의 파악을 -

현대의 수학은 형식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서 수학 책도, 정의, 공리, 정리, 증면을 나열한 형식으로 쓰여진 것이 많다. 형식주의에 의하면 수학은 그 자신은 의미를 갖지 않는 기호를 주어진 '룰'에 따라 나열해가는 게임에 불과하다고 하는 것이지만, 이것은 수학의 가장 본질적인 것을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예를 들면, 공리적 구성의 규범이 된 Hilbert의 기하학기초론에는, '점', '직선', 등은 의미가 없는 무정의술어, 즉 기호여서, '고양이', '참새', 등으로 바꾸어도 전혀 문제 없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이것은 사실과 반대이다. 실제로, Hadamard가 지적하였듯이, 기하학기초론에는 그의 매 항목마다 그림이 게재되어 있다. 그림을 그리지 않고, 머리 속에서 그림을 상상하지도 않고, 논리만으로 Hilbert의 기하학기초론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이와 같이 의미를 생각하지 않는 형식주의의 입장에 서는 한, 기하학기초론마저도 이해할 수 없다.

나의 관점에서는 수학은 실재하는 수학적 현상을 기술하고 있는 것이고, 수학을 이해한다고 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그 기술한 수학적 현상의 이미지를 말하자면 감각적으로 파악해서, 형식주의로는 포착할 수 없는 수학적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다.

이와나미 강좌 '기초수학'은 현대 수학의 기초부분의 기본적인 내용을 위에 설명한 의미로 감각적으로 알기 쉽게 해설하는 것을 목표로 편집되었다. 이번 시리즈는 이 강좌 중에서 학부정도의 기초교과에 상당하는 것을 뽑아 '岩波其礎数学選書'로서 편집한 것이다.

이 기회에 각장 끝의 문제에 대하여 해답과 힌트를 첨부하여, 학생의 공부에 도움을 주도록 하였다.

1990년 6월

小平邦彦 
 
이 시리즈는 일본 강의록에서는 처음으로 정리와 증명이라는 형식에서 벗어나서 될수 있으면 예를 많이 들고 다른 곳에 응용되는 것을 해설해 넣은 책 시리즈이다. (그렇다고 해서 증명은 대충하고 응용수학 문제를 끼워넣었다거나 한 것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상당히 빡빡한 이론적인 수학을 펴고 있다.) 이것은 20세기 말에 나타난 이해에 대한 새로운 사조와 맥을 같이 한다.

우리가 어떤 것을 이해하는 것은 그 사실을 문자 그대로 머리속에 적어 넣으면 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적어도 내가 어떤 것을 이해할 때는 그것과 관련된 어떤 선행된 경험과 내가 이해하려는 것을 매치시켜 놓아야만 한다. 새로운 이론을 공부할 때 이 선행된 경험이 되는 것은 예로 들어주는 것들이 되고, 이것이 부족하면 내가 상상으로 만들어서라도 이러한 경험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말만으로 기억하고 있을 뿐 이해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리고 공부해나가는 과정은 이러한 이해의 폭을 넓혀가도록 새로운 경험들을 추가하고 그것을 이론에 맞게 배열하여 이론과 링크시키는 과정으로 보인다. 물론 이것이 기억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기억하는 것이 매우 쉽고 효율적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내가 이런 식의 분석이 가능하게된 것은 공리주의적인 생각에 많이 익숙해지고 이를 통해서 이해하려는 노력을 통해서였다.)

이 시리즈는 간행되었을 때 한 두권만 사서 보았다. 이 중에 함수해석학 책은 아마도 Brezis의 책을 흉내냈던 것인지 아니면 독창적인 것이었는지 편미분방정식론을 기본으로 해서 쓰여졌었고 이를 보고 강현배교수와 함께 감탄했던 적이 있다. 최근에 중고 책으로 코다이라 교수님이 쓴 '해석입문'과 '복소해석학'을 구했다. 평범한 내용을 적은 것이지만 매우 유용한 책으로 널리 사용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 우리도 이러한 수준의 책이 적어도 한 권씩이라도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한다. 

이번학기 복소함수론은 어느것을 따라갈까라고 생각하면서 기본적으로 노구치교수의 교과서를 따라가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내용이 비교적 기하학적이고 너무 어렵지도 않다. 일본에서는 조금 수준 높은 강의로 (어쩌면 대학원에서) 한 학기에 강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지만 학부에서 1년에 걸쳐서 강의하면 자세히 따라가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와 함께 Ahlfors를 같이 읽는다면 미국에서 내가 공부했던 1년 트랙의 복소함수론의 2/3 정도는 커버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열심히 하고 잘 이해해 내는 학생에 한한 이야기이다. 기하학적인 이야기는 결국 눈에 보이게 만드는 것이니까 이해가 필수다. 계산만을 원하는 학생들에게는 조금 미안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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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학기 강의에 대한 "강의 평가와 소감"을 읽은 소감을 정리해본다.

우선 이번 학기에 강의한 두 강의의 전체적인 평가 점수는 수학과 전체 평균보다는 조금 낮고 이과대학 전체평균 보다는 조금 높다. 뭐 그리 중요한 내용이 있는 문항이 아니므로 그리 크게 신경쓰지는 않는다. 그러나 개방형 설문 1, 2번 문항은 학생들의 소감이 구체적으로 적혀 있으므로 궁금한 점이 있다. 특히 여기서 듣게 되는 내용은 강의에 반영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1번 문항은 수업에 대한 소감이고, 2번 문항은 수업에 대한 건의이다.
이에 대한 소감 가운데 강의에 positive한 것을 제외하고 몇 가지를 뽑아 변명을 해 둔다.

우선 기하학 개론을 보자. 이번학기는 학생수가 적어서 강의만의 강의를 조금 벗어난 점이 있다. 시작부터 강의 내용을 예전보다 적게 잡았다. 몰아쳐나가는 수업으로는 조금 많은 수학을 가르쳐주기는 하지만 학생들은 얻는 것이 더 많다고 할 수는 없다. 건국대나 중앙대에서 내 강의록으로 강의하신 교수님들의 조언이 내용이 너무 많고 뒷부분이 어려워서 전체의 반 정도만 강의하면 알맞았다고 하시므로, 나도 반 정도에 조금 다른 말들을 추가하는 것을 시험해보았다.

  • 너무 어려웠다. 
  • 수업이 체계적이지 못하고 수업시간에 비해서 직접적인 수업내용이 많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한시간 반 내내 수업과 관련없는 이야기를 한 적도 있었고, 반정도만 수업과 관련된 이야기를 한적도 많았습니다. 

너무 어렵다는 것은 이 강의 내용을 못 알아들었다는 말이다. 강의를 못 알아듣는 학생이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모든 사람을 동시에 똑같이 이해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최소한의 내용을 알아들어도 자신의 기대와 비교해서 말하는 것은 못알아들었다는 것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두번째 소감은 조금 다르다. 이것은 강의에서 기대한 것이 전혀 다른 것이었다는 뜻이다. 다른 학생들도 모두 강의에서 내가한 이야기들을 기대하고 들어온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어떤 학생들은 그것을 좋아하고 어떤 학생들은 그것이 싫다. 특히 쓸데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되는 것이 많다고 하는 학생은 나쁜 학생이 아니다. 단지 그가 말하는 내가 한 쓸데 없는 이야기는 그 강의의 내용이 아니라 조금 긴 시간 동안의 공부에 도움이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이미 그것을 알거나 느끼고 있다면 그에게는 쓸데 없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 학생은 단지 참을성이 부족한 것일지도... 아니라면 공부를 항상 잘 해서 이런 이야기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거나...

한편 교양과목에서의 소감을 보자.

  • 감사합니다 그런데 출석체크를하는 수업이었다면 좀더 학생들이 적극적일거같아요.

출석 체크는 잘 안한다. 체크하면 출석률은 올라가지만 학생들은 들어와서 다른 짓을 하고 강의를 흐트러트린다. 대학에서는 출석 만큼은 자신이 컨트럴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못 들어온다면 그 책임은 자기가 지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글쎄요. 과연 교수님의 논리가 법이고 진리일까요?

이것은 무엇인가 자신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이 강의에서는 이럴 부분이 거의 없다. 내가 요구하는 것은 전체적으로 과목의 제목에 해당되는 것이면 어떤 토픽을 잡아 공부하고 발표해도 되고, 또 연구해서 설명하는 내용은 합리적이기만 하면 어떠한 아이디어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반긴다는 강의이니까.
  이 강의에서는 나의 논리를 강요한 적은 없다고 생각되니까, 어쩌면 질문은 "과연 논리가 법이고 진리일까요?"였다면 하고 생각한다. 이런 경우라면, 이 강의에서는 논리를 train하자는 것이지 논리가 옳다고 주장하고 주입시키려는 것은 아니니까 이 질문은 잘못된 것이 당연하다고 하겠다. (배워본 다음에 자신이 믿고 쓸 것인지 버릴 것인지는 자신의 몫이므로...)

  • 교수님 목소리가 약간 작으신편이라서 뒤쪽에 앉을 때는 가끔 안들릴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 점을 보충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점은 예전에 항상 지적당하던 것이었다. 우선 목소리는 귀가 예민한 사람은 작게 내고 귀가 무딘 사람은 크게 낸다고 생각한다. (귀에 이어폰을 끼고 이야기를 하면 누구나 무의식중에 목소리가 커지는 것을 경험한다.) 자신의 약점을 잘 알고 있으므로 이 강의에서도 마이크를 사용했다. 물론 마이크를 못 사용한 경우도 몇 번 있었지만 이것이라면 원래 강의가 계획된 시간이 아니었는데 몇분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경우였을 것이고 어쩔 수 없겠다.
  그러나 이것 외에도 이점을 잘 알고 있어서 강의 시작때는 잘 안들린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될 수 있으면 앞쪽에 앉으라는 이야기를 여러번 했다. 이 이야기를 무시한 것일까? 못 들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만.

  • 그룹은 원하는 사람들끼리 짝지어 주시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조원과의 마찰이 한 학기를 너무 괴롭혔습니다.

이것은 처음에 설명했고 그리고 강의 웹페이지에 써있는 강의방침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과 조를 짜면 좋은 점이 있지만 학점만을 위해서 같이가는 쪽으로 발전할 뿐 모르는 사람과 조율하면서 일해나가는 법을 익힐 수는 없다. 물론 일이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과 하는 것이지만 항상 마음에 맞게 일을 나눌 수는 없다. 이런 경우에도 적절하게 같이 일하는 사람과 잘 이야기하고 적절하게 일을 나누는 것은 경험이 필요하다.
  특히 잘 아는 사람이 없는 학생과는 형평성 문제가 제기된다. 그래서 항상 무작위로 학생을 선택하고 될 수 있으면 연령대, 학과 등이 서로 다른 학생들이 한 팀이 되도록 짠다. 그 대신 조의 일을 하는데 불공정한 점이 있으면 각자의 personal report에 적을 수 있고 이를 성적에 반영하고 있다. 이것도 학생들에게 학기초에 이야기하였고 또 web site에 설명이 있으니 강의에 대해서 제대로 듣지 않은 경우일 것이다.

이런 강의의 가장 어려운 점은 시험을 보지 않으므로 (볼 수 없으므로) report를 평가하는 일이다. 실제로 평가에 대한 좋은 지침은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는 절대로 완벽하지 못한 report를 읽고 평가하는 것은 어렵다. 읽는데 시간도 많이 걸리고, 애매한데서 학생들의 생각을 읽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강의가 재미있기는 하지만 쉬운 강의는 수학을 가르쳐주고 시험을 보아 성적을 딱딱 내는 것이다. 얼마나 배웠는지, 얼마나 알고 있는지가 비교적 분명하게 나오는 것이 쉽다.

다음 학기는 이런 강의를 두개 한다. 쉽기만 하면 재미 없으니까 내가 어려워할 것을 만들어 넣는다. 이번 학기에는 강의 교재를 새로 만들 기초 작업을 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한 강의는 새로운 방식으로 내용을 구성할 것이다. 겉보기 모양을 바꾸는 쪽이 되겠지만 뭐 그것도 상당히 어려운 작업이 될 것이다. 이미 학기 시작이 한달 정도밖에 안 남아 있으니까 바쁜 일이 되겠지. 어째 방학이 점점 더 바빠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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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학교의 수학 교육을 새로이 고치려는 노력이 한창이다.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나아가서는 대학교에서도 어떻게하면 학생들이 수학을 재미있게 그리고 효율적으로 공부하게 할 수 있을까를 가지고 고민이 많다.

이와 관련해서 최근 교육부가 계획하는 새로운 계획을 기대를 가지고 바라보는 눈이 많다. 이러한 새로운 시도를 반기는 매스컴의 기사들도 눈에 뜨인다. 그런 기사를 훑어보면 여러 이야기가 뒤섞여 있어서 뭔가 논점을 잡기 힘든 경우가 있다. 이번 교육부의 개선 방향을 이야기하는 기사에도 이런 개선을 옹호하는 전체적인 방향에는 동감하면서도 그에 대한 이유를 드는데 있어서는 조금 조심해서 말하면 좋겠다는 것들이 보인다. 예를 들어 한 기사에 나온 여러 가지 논의 가운데서 몇 가지만 들어서 조금 수정된 이야기를 해 보자.

이 기사는 수학도 재미를 가지고 공부할 수 있는 과목이며 누구나 어려서의 재미있는 기억에서 출발하여 수학을 좋아할 자질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비록 이런 것이 증명하기는 힘든 것이지만 나도 분명히 누구나 수학을 좋아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점이라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 자신도 어려서 언제까지인가는 수학을 싫어했지만 몇 가지 계기를 지나며 수학이 재미있어졌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수학을 싫어하게 되는 이유로 든것 중에서

"이처럼 수학이 학생들의 비인기과목이 된 가장 큰 이유는 문제풀기식 대학입시제도다. 한 문제를 더 풀기 위해 매달리다 보면 학생들은 수학에 대해 싫증을 느끼게 된다.

라고 하는 것은 어쩌면 잘못된 생각인지도 모른다. 비록 대부분의 학생들이 시험보는 것을 싫어할지 몰라도 6, 70년대의 문제풀기식 대입제도를 통해서도 수학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이 생겼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똑같은 문제풀기식이더라도 푸는 문제가 한 번도 보지 못한 문제라면 풀리면 재미가 생기지만, 맨날 보는 문제인데 아차 실수하면 틀리는 식이라면, 풀어도 감흥이 없고 틀리면 스트레스만 쌓인다. 그러니까 "문제풀기식 대학입시"보다는 "쉬운 문제풀기식 대학입시"가 주범이 아닐까? 또, 

"수학문제 하나 더 푸는 것은 그다지 중요치 않다고 말했다. 학생들에게 수학이 재미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어야 한다는 것."

라고 하지만, 어느나라에서나 수학을 잘 하고 재미있다고 하는 학생들에게 `무엇이 재미있는가?' 하면 문제가 풀리는 것이 재미있다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문제가 풀릴 때가 아니면 수학에 어떤 부분이 재미있겠는지 알 수 없다. (혹시 수학의 역사 같은 이야기를 듣는 것이 재미있다면 그것은 분명히 듣기에 재미있는 이야기겠지만 암만 들어도 이것만 들어서는 수학을 배울 수 없다. 이것은 단순히 motivation이 될 뿐이다.)

그러니까 수학문제를 (하나든 많이든) 푸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중요한 점은 문제를 풀 때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말씀을 한 분의 생각은 똑같은 문제를 되풀이해서 풀며 틀리지 않도록하는 훈련 같은 것을 피할 것이지, 문제를 풀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수학교육은 해방이후 지난 60여 년간 거의 변화가 없었다."

라는 말은 겉을 보고 하는 말이 될 수 밖에 없다. 분명히 어떤 형태로든 입시가 계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변화가 없어 보이지만, 입시 하나만 본다고 해도 그 안에서 일어나는 내용은 정말 많이 변했다. 일정한 방향으로 변해오는 것도 아니다. 즉 좋은 방향이나 나쁜 방향으로 계속 변하는 것이 아니라 이리 저리 떠다니듯이 마구 변해 왔다. 교육의 내용도 6차에서 7차 그리고 그 이후의 변화들은 결코 작은 것이라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새롭게 노력해야 하는 것은 재미 있는 이야기만을 늘리는 것으로는 턱도 없다. 학생들이 문제를 풀며 재미를 느끼도록 하는 것 말고는 생각할 수 있는 대안이 없다. 이것은 위의 기사에서 이야기하기를 개선을 위해서 꼭 필요하다는 "선생님들이 짊어질 힘든 일"에 비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일이 될 것이다. 특히 현재와 같은 쉬운 문제만을 교육하는 시스템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을 일선의 선생님들께 떠안기는 일이 되지 않을까? (이것으로 학교 선생님들을 평가하지나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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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학기에 복소해석학 강의를 하게 되었다. 집합론도 맡았으니 잘 안 하던 강의를 두 개 씩이나 하게 된 것이다. 다른 교수님의 강의를 넘겨 받은 것이지만 내가 선뜻 하겠다고 한 것이니 변명의 여지는 없다. 복소해석학 강의는 예전 내가 부임하고 몇년 지났을 때에 한 번 해보았다. 당시 복소해석학을 맡으시던 김성운 교수님께서 안식년으로 나가시는 해여서 대신 했던 것이고 그 다음번 안식년때 즈음에는 복소해석 전공하는 교수님들이 늘어서 내가 할 필요가 없었다.

당시에 썼던 교재는 Marsden의 책이었는데 이미 사용하고 있던 것이었던가 내 선택은 아니었다. 이제 새삼 교재를 정해야 하는데 무엇을 쓸 지 모르겠다. 가지고 있는 책은 많고 또 일부 보충도 했는데 마땅한 책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욕심이 너무 많은지 선뜻 손에 잡히는 책이 없는 것이다.

교과서를 보면 우리나라 뿐이 아니라 외국도 점차 쉬워지는 추세이다. 인류가 퇴보하고 있는가? 아니면 이것이 더 좋은 교육방법이라는 것인가? 쉽게 잘 이야기하는 것만이 좋은 교육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나에게는 이런 변화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굉장히 힘들어하면서도 학부 3학년에서 Ahlfors를 교재로 사용하던 세대 틈에서 공부했던 나에게는 쉽게 익숙해지지 않는다. (내가 공부한 학년에서는 Herb Silverman을 썼다.) 결국 유학가서 대학원에서 교재 아닌 교재로 Ahlfors를 사용했는데 공부하는 동안에는 감명깊게 읽었다. 지금도 당연히 Ahlfors를 최고의 교재로 꼽는데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내가 교재로 선정할 경우에는 과연 강의가 제대로 될까 생각해보면 자신이 없다. 학생들이 못견딜 것 같다는 것이 눈에 보인다. 우선 Ahlfors의 delicate한 생각을 영어 틈에서 읽어낼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한 문장 한 문장을 정성들여 읽고 영어의 뉘앙스까지도 감지할 정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데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해석학에서 Rudin을 사용하는 것도 거의 마찬가지이다. 실제로 Rudin은 현재 교과서로 쓰이고 있는데 학생들 가운데 이 내용을 제대로 읽어내는 사람은 얼마나 있는지 궁금하다. 

다시 복소해석 교과서로 돌아가자. 복소해석학은 학부에서 보면 학생들에게 너희가 수학을 얼마나 잘 할 수 있나 보자 하는 식의 내용이다. 학부에서 공부하는 거의 모든 것을 총망라하여 제시하고 심지어는 대학원에서 공부할 내용은 물론 물리학이나 공학까지 넌즈시 이것 저것 들추는 그런 과목이기 때문이다. 이것 다 캐무시하고 그냥 계산만 시켜서 내보낼 수는 있지만 이것은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게 욕심 때문인듯 하다.) 그러다보니 학부에서 교과서를 무엇을 쓸지가 고민되는 것이다. 

몇 가지 내용을 검토하게 된다. 한 가지는 해석학적 부분이다. 구르사 정리의 증명을 넣으려면 증명 자체는 짧아도 결국 해석학적 관점에 대한 이야기가 길어질텐데  이것은 학생들의 흥미가 어떨지...  이것을 빼고 함수가 실 미분가능하다는 가정을 하고 나가는 것이 현명할지 모른다. 그러면 복소수를 가르쳐주고 다변수 미적분학만 리뷰해주는 것으로 필요한 것은 더 없을지도 모른다. 물론 point set topology나 함수 급수의 이야기도 해석학에서 알고 와야 하는 것이지만 어차피 한 번 다시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이 되는 것이니까 논외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타카기의 해석개론에서 복소해석에 대한 장을 보는 것 정도 뿐일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기초적인 계산법, 급수, 미분, 코시-리만 방정식, 해석함수의 성질들, 적분과 코시이론, 선적분의 계산과 residu이론, 등각사상의 구성법, 그리고 어려운 것 한 두 가지를 1년 동안에 한다고 생각해 보자. 

토픽은 아마도 리만사상정리를 생각하는 방법인 normal family와 compactness, 리만면으로 나아가는 복소함수의 사상적 측면과 고전 계산, 극소곡면의 구성에 사용된 Weierstrass의 이론과 그림그리는 방법, 이밖에 또 뭐가 있을까? 다변수는 안 다루겠지만 log함수 같은 것을 다루다 보면 sheaf를 생각하는 당연한 이유가 보일 것이고 이러다 보면 잘못하면 sheaf cohomology를 이야기하게 될 수도 있다. 이렇게 하면 결국 내가 학부때 복소해석학 2학기에 지동표 교수님께 들었던 이야기랑 같게 되는데 이거 정말 이해하기 힘들었던 강의였으니 이러면 안되겠지. 이 가운데 꼭 해본다면 리만사상정리 관련된 것이나, 리만면, 극소곡면의 표현공식과 그림 가운데 한 두가지 정도가 전부일 것이다.

그러면 교과서는? 역시 마땅한 것이 많아보이지 않는다. Silverman은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쓰이고 있지만 뭔가 방대한 것 같고, 새로이 Silverman이 인도 수학자와 낸 새 버젼은 조금은 쉬운데 조금 두꺼운 듯하고,  그러다보니 문제를 중심으로 보는 것은 어떤가 하는 생각도 든다. 각 토픽마다 문제를 미리 정해놓고 이것을 풀 수 있게 이론을 전개하면 전혀 새로운 책이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교과서 중에는 Kapoor의 책이 문제집을 포함하고 있다. 이것과 함께 이론적인 문제 한두 개를 미리 뽑아서 시작해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교과서를 새로 쓰는 것인데 그래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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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2년이 다 되어가는 2010년 1월 7, 8일에 고등과학원(KIAS)에서는 학부 학생에게 수학(특히 기하학)을 소개하는 강의를 열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나가는 4명의 기하학자가 바쁜 연구 와중에서도 학부생들에게 수학 공부의 원동력이 되는 좋은 이야기를 해 준 것이다. 고등과학원 교수로 계시는 최재경, 황준묵 교수와 미국 위스컨신대의 오용근 교수 그리고 서울대의 박종일 교수가 그 4명이고 각자 학부 수학 수준에서 자신이 공부하는 기하학을 소개했다.

이 강의가 있을 때 나도 참석해야지 하는 생각이 많았지만 다른 일이 있어서 부득이 참석하지 못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잊었지만 참석하지 못해서 아쉬웠던 기억은 확실히 남아 있다. 그런데 고등과학원의 여러 세미나와 강의, 강연들은 녹화가 되어서 과학원의 수학과 서버에서 볼 수 있다. (이런 서비스가 생긴 것은 꽤 오래 되었고 초창기에는 녹화되는 강연이 많지 않았지만 요즈음은 장비가 발달되어 많은 강연들이 거기에 올라오고 있다.) 이 강의들도 녹화가 되어 그곳에서 볼 수 있게 되어있었다. 바쁘기도 하고 해서 거기 무엇이 있는지 별로 눈여겨 보지 못하고 있었는데 며칠 전 시간이 나서 들어가보니 내가 참석하지 못했던 강의들이 올라와 있었다. 그래서 그 강의들을 조금 들어보았다. 실제로 황준묵 교수의 강의는 제대로 들었고 최재경교수와 박종일 교수의 강의는 재빨리 훑어보았으며, 오용근 교수의 강의는 아직 시작하지 못했다. 아마도 오용근 교수의 강의가 가장 재미있을지 모르지만 또 가장 어려울 수 있을거 같아서 잠시 미루어둔 것이다.

최재경교수님(강연자중 나보다 나이 많은 유일한 분이라 '님'자를 붙였음)의 강의는 나와 비슷한 분야여서 여러번 들었고 대충 예상되는 강의였다. 최재경 교수님의 강의는 항상 새로운 내용이 있어서 들을 때마다 배우는 것이 많은 강의인데 이것은 기초적인 이야기여서 그만은 못하다. 제일 놀라웠던 강의는 초창기에 대한수학회의 기하학분과 초청강연으로 충남대에서인가 별로 많지 않은 청중을 대상으로 했던 최대값원리에 대한 것인데 감명 깊게 들었지만 이에 대한 배경지식이 일천할 때여서 잘 알아듣지 못했었다. 나중에 좀 더 자세히 강연해 주기를 부탁드려본 적도 있지만 최교수님은 강연하고 싶은 새로운 내용이 넘쳐나시는 분이라 똑같은 내용은 다시 잘 안하는 것 같고 나는 아직도 일부분 밖에는 잘 모르는채로이다. 언제 시간이 되면 집중강의로 다시 부탁하는 것이 어떨지 모르겠다.

박종일 교수의 강의는 다양체에 대한 기초적인 내용에서 자신의 연구영역인 다양체의 구조와 관련된 근래의 연구 성과들을 소개했는데 잘 이해되지 않는 분야여서 역시 잘 못알아들을 것 같았고, 그래서 건성 넘어갔다.

재미있는 것은 황준묵 교수의 강의인데 대수기하학자인데 시작은 미적분학으로 하여 재미있는 내용을 전개해서 보여주었다. 들려준 이야기는 사실 100년이 넘은 시절에 수학자들의 연구 내용인데 이것이 지난 100년동안에 대수기하학에서 일어난 일의 배경이 되는 것이라 중요한 내용이라 생각된다. 멀리서 이름만 듣던 내용을 어렵지 않게 설명해주니 예전에 특히 19세기에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가 눈에 보이는 것같다. 실제로 이의 초창기 역사를 Siegel의 Complex Function Theory라는 3권짜리 책의 시작부분에서 읽은 적이 있어서 다시 꺼내보았다. 재미있게 2시간동안 들은 내용이 가만보니 Siegel의 책 3권 전부를 요약한 내용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사실 타원함수론에서 시작해서 현대 대수기하학의 입문까지를 아우르는 이야기였으니 대단한 강의라는 생각이 새삼 든다.

이 내용이 전공이니까 (그의 전공은 복소대수기하학) 뭐 이런거 잘 아는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지만 그래도 특별히 강의할 일이 없었다면 Siegel의 고전적인 책 3권을 다 읽어보는 일은 안할 듯 해서 나라면 어디를 보고 이런 역사적인 전개를 알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전공이 대수기하는 아니어서 대수기하 책도 많지 않은데다, 복소기하는 나도 반쯤 전공해 보았지만 보통 현대복소기하 책은 이런 내용을 잘 안다루니까 생각이 안 미치다가, 예전에 샤파레비치의 대수기하 책에 저자가 '자신이 학생때는 아벨적분 이론은 대학원에서 꼭 배우는 것인데 요즘은 안그렇다'는 말을 본 기억이 있어서 샤파레비치를 열어보았다. 책의 내용에는 이런 것이 따로 없었지만 2권 맨 마지막 부록에 이의 역사에 대한 해설이 있었고 이 해설이 꼭 이번 강의만큼이란 것을 알았다. 황준묵 교수가 이 책에서 강의 내용을 구성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랬다고 하더라도 이 책의 한 chapter에 해당하는 내용을 간단히 2시간에 알기쉽게 설명해 주는 것은 이 분야의 진정한 고수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는데는 이견이 없다.

나는 이렇게 설명해줄 수 있는 멋진 수학 내용이 있는가 보면 글쎄 별로 없는 것같다.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역시 공부를 열심히 해야 뭔가 쓸모있는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생각케 한다. 그러나 오일러가 얻은 적분공식과 이를 일반화한 아벨적분, 그리고 여기서 기하학을 만들어낸 리만의 함수론과 리만면의 이론은 정말 놀랍고도 재미있는 수학의 한 분야이면서 오늘날의 모든 현대수학을 잉태한 이론이란 점에서 다른 어떤 이론보다도 흥미진진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것이 재미있는 사람은 '친구가 없다'는 정리아닌 정리가 있으니 그렇기는 하지만 사실 너무 재미있는 이야기여서 수학책이라기보다는 수학 이야기책으로 구성해도 정말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을 재미있어할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은 되지만) 언제 시간내서 공부를 해서 황준묵 교수의 강의를 책으로 엮어볼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황준묵 교수 본인이 직접 쓰는 것이 가장 좋은 책이 되겠지만 지금은 그럴 틈은 없는 바쁜 와중일터이니 나라도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황준묵 교수의 강의 내용은 언제 다시 간단히 정리해 두기로 하자. 그때는 수식도 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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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교수법에 대한 어떤 연구 결과에 대한 트윗을 보았다. 이 연구에 대한 사람들의 일차적인 평가는 교수가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 보다는 어떠한 교수법을 쓰는가가 훨씬 (2배 정도) 효과가 크다는 결과이다. 이 결과를 볼 필요도 없이 이 말이 맞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 결과를 받아들일 때 주의할 점이 있다고 생각된다.

우선 이 연구가 얼마나 잘 기획된 연구인지는 읽어보지 않아서 잘 알지 못한다. 원래 실험이라는 것이 그 구성에 따라서 여러 가지 요소가 뒤얽혀들기 쉬운 것이지만 또 능력있는 연구자의 실험은 믿을만도 하다. 이 실험에 대해서 한 두 가지 곁가지 사항을 짚어두기로 하자. 

우선 이 연구에서 이야기하는 "학생들에게 정평있는 노련한 교수"가 어떤 사람인가가 궁금하다. 단순히 학생들에게 정평있는 식이라라면 정말 학생의 공부를 "잘 가르치는" 교수는 아닐 수도 있다. 그리고 "전통적 방식으로 가르친다"는 것 또한 단순한 강의와 질문시간, 그리고 시험으로 이어지는 일반적 강의를 말한다면 이 또한 너무 당연한 결과를 유도하는 실험이 되기 쉽다. 아마도 두 비교되는 강의 방식에 노출(expose)되는 학생들의 시간을 같이 잡았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 강의를 준비하는데 들어가는 시간도 같이 잡았는가?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이 두 비교가 "교수법의 비교로서" fair하다고 할 수 있을지 조금 궁금하다. 아마도 대학원생들이 하는 강의 쪽이 훨씬 많은 준비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그리고 이미 교육학에서는 공부를 할 때 과업(task)를 주고 이를 통해 습득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등등의 것이 잘 알려져 있고 이를 재확인하는 실험이었다면 별로 놀라운 결과는 아닌 것이다.

일전에 대전 K대학의 일련의 사건에서 사람들의 잘못된 평가가 그 학교 교수들이 수업을 못 따라오는 학생들에게 F를 줄 수 없다는 사실로 이어지는 것처럼 모든 "사실"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면 이번 경우는 학원 선생님들의 강의를 대학으로 들여오자는 이야기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이와 유사한 내가 의도하지 않고 했던 실험이 있다. 이미 20년이 넘도록 강의하는 과정에서 어떤 학기는 강의 과목이 열리지 않기도 해서 같은 미적분 강의를 두 개씩 하기도 했다. 똑같은 강의를 두 개 하니까, 예를 들어 강의시간이 월수에 있는 강의와 화목에 있는 강의를 맡게 되면 월수 강의는 항상 먼저 하게 되어 처음 들어가면 강의 내용이 조금 혼란스러울 때도 있고 학생들이 잘 못알아듣게 이야기 해서 힘들기도 하다. 그러나 화목 강의에 들어가면 어제 했던 강의의 내용을 떠올리며 학생들이 어디서 힘들어하는지도 다 알고 어떻게 설명하니까 잘 알아들었는지도 잘 알아서, 강의 내용도 매끄럽고 중요한 부분은 강조하고 두 번씩 설명해 주고 등등 교수도 학생도 만족스러운 강의가 되었다. 이런 것이 명강의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그런데 학기말의 성적은 뜻밖의 결과였다. 버벅대고 잘 못가르쳐줘다고 생각되는 월수 반 학생들의 성적이 훨씬 좋고 정말 ideal한 강의를 했다고 생각했던 화목 반 학생들의 성적은 상당히 나빴다. 이렇게 같은 강의를 동시에 한 경험을 서너번 하고, 매 번 빠짐없이 똑 같은 결과를 얻고 나니 강의를 매끄럽게 하고 학생들이 원하는 강의를 해 주는 것이 잘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에 대해 원인을 생각해 보면 결론은 하나 밖에 없다. 화목 반 학생들은 결과적으로 공부를 안 했다는 것이다. 수업 내용을 잘 가르쳐 주면 듣는 이야기 가운데 하나가 "강의 시간에 들으면 전부 다 아는 것 같은데 나중에 혼자서 보면 모르겠어요"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화목 반 학생들은 강의를 듣고 그것만으로 잘 알게 되었다고 오인하는 것이다. 그에 반해서 월수 반 학생들은 시간중에 들어서 잘 정리되지 않으니까 스스로 그것을 정리하고 확인하는 과정을 화목 반 학생들보다 더 많이 했다는 말이 된다. 그러니까 학생들이 공부를 잘 하게 하려면 교수가 가르쳐주지 않고 학생들이 스스로 공부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영국 대학들의 공부법이 맞는 것일까? 강의를 개설해도 실제 수업은 하지 않고 학생들이 공부하다 모르는 것만 와서 물어보는 수업만으로도 세계에서 최상급의 대학인 Oxford를 보면 교수법이 무엇인지 잘 모르게 된다.

그러니까 교육에서 핵심은 학생들이 어떻게 공부하도록 하고 어떻게 생각하도록 하는가 하는 것이다. 이것은 수동적인 의미가 아니라 능동적인 것이어서 공부하도록 그리고 생각하도록 시키고 싶은 것이다. 여기서 교수의 역할은 학생들이 이에 힘이 부칠 때, 어떤 점에서 막힐 때 이를 뚫어주고 길을 잃었을 때 가이드가 되어 주는 것을 넘지 않는다. 그러면 잘하는 교수를 찾는 이유는 어디 있는가?

이와 관련해서 보면 앞의 실험에서 두어가지 조심할 점이 있다. 

이 실험에서 강의한 대학원생이 얼마나 내용을 잘 알고 있는가가 매우 중요하다. 물론 강의하는 내용을 잘 아는 학생들을 뽑았을 것이다. 내용을 조금이라도 이해하지 못한다면 교수법이 아무리 좋아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는 치명적인 부분이 된다. 그러니까 내용을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강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학생들이 일차적으로 내용을 익히고 기본적인 이해를 얻는데 까지는 실험과 같은 기획된 수업을 통해서 충분히 잘 익힐 수 있지만, 이를 지나서 생기는 학생 개개인의 의문과 이해 못하는 점을 해결하려면, 그리고 이 내용을 넘어서 나아가는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 이의 잘 잘못을 지적해주고 가이드해주고, 또 학생들은 생각하지도 못했던 아이디어를 여기 저기서 보여주는 것은 정말 잘 이해하고 그 위를 훤히 꿰고 있는 고수 교수가 아니면 할 수 없다. 이 수준이 되면 교수법은 별로 중요한 것이 안 된다.

예를 들어 내가 대학원 시절에 강의를 들은 기제커 교수님의 강의는 교수법과는 담을 쌓은 강의였다. 그는 칠판 판서를 해도 어디가 정리고 어디가 증명인지도 표시하지 않아서 강의를 들으면서 정말 이해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 교수님의 대학원 대수기하 강의는 (이러한 강의 방식으로도) 그 내용에 대한 핵심을 짚어 강의하고 있어서 그 강의를 통해서 대수기하학의 요체를 얻을 수 있는 강의이다. 이 내용을 배워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학생들에게는 기제커 교수님의 교수법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즉, 교수법이 문제가 되는 것은 강의를 듣는 학생들의 자세가 그저 그럴 때에 훨씬 중요한 것 같다.

그러니까 맨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강의에 노련하기 보다는 강의할 내용에 노련한 교수가 잘 기획된 과업(task)를 수반하는 interactive한 강의를 한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강의를 기획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 아마 수학과에서 학부 저학년 강의 정도는 몇 개 이런 것을 개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짜 공부할 부분에 들어오면 수학과 전공 수업 같은 내용은 수학자들도 사람마다 이해 방식이 다른데 이것을 대학원생이 강의할 수 있는 수준의 interactive task로 구성한다는 것은 말이 쉽지 실제로는 불가능에 가까울 것 같다. 

아마도 위의 실험의 수업은, 그 내용을 골똘히 생각하고 친구들과 머리싸매고 토론하고 교수들의 해석을 듣고 해야만 이해가 되는 식의 수학 강의와는 좀 다른, 이해할 내용의 양은 좀 적고 알아야할 사실(fact) 또는 익혀야 할 방법이 훨씬 더 많은 강의에 더 잘 적용되는 이야기일 것 같다. 그리고 수학과 전공과목에서 이런 방식의 강의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겠지만 아마도 이를 강의하는 교수의 입장에서는 한학기나 1년에 한 강좌 정도만을 하라고 하면 이런 강의를 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한편 이런 강의의 약점도 잘 알려져 있다. 이런 수업방식의 하나인 소위 PBL이라고 하는 문제중심 학습 방법의 경우 가르쳐야할 내용을 주어진 시간에 다 가르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대학 강의 가운데 몇 개 정도 이런 수업이 있어서 고전적인 방식의 강의를 들으며 학생들이 스스로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는 정도로 충분할 것이다. 

기존의 틀에 박힌 강의가 교수의 강의와 시험만인 것이 아니다. 강의는 기본적으로 예습과 복습을 하도록 되어 있고 이 과정에서 어려운 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연습시간, 교수와의 면담시간, 퀴즈 시험과 같은 것들은 결국 위에 실험에 사용된 좋은 강의의 모델과 흡사하다. 차이가 있다면 실험의 강의는 이것을 학생들에게 강제로 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은 결국 씹어 먹여주는 또 한 가지 방법에 불과하다고 보이고, 잘못하면 이것은 결국 학생들을 잘 안 가르치겠다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위와 같은 논의가 나오는 것은 학생들은 단순히 학점과 졸업장에 연연하고 있다는 가정에서이다. 교수법이 아니라 대학의 강의의 내용이 좋아져서 학생들이 스스로 공부하여 알아야 하겠다는 것이 늘어나면 교수법은 상관 없는 강의가 늘어날 것이다. 분명히 이런 쪽이 내용은 틀에 박힌 것이지만 교수법이 좋은 것보다는 좋은 상황이라고 보인다. 강의 내용이 좋아지는 것도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쪽의 논의가 많이 살아나는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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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는 고등과학원의 황 교수님이 여는 대수기하학 겨울학교가 있어서 따라왔다. 장소는 변산의 대명콘도인데 지난 여름에 단양의 대명콘도보다 방이 훨씬 좋다. 괜찮은 호텔 수준을 갖추고 있고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좋은 장소에 있다. (내가 있는 방에서는 바다가 안 보이고 논 밭과 야산이 보인다.)

황 교수님은 공부를 강조하기 때문에 별로 다른 것 없이 열심히들 공부하고 있지만 식사는 푸짐하게 대접해 주셔서 잘 먹고 감사하고 있다. 어제는 저녁때 눈이 와서 아침에 일어나니 사방이 하얗다. 그래서 사진을 한 장 찍었는데... 


바다쪽은 류 교수님한테서 얻어야지.

공부하는 내용은 어려운 대수기하... 그래서 중간까지도 못 따라 듣고 포기상태. 혹시 real singularity 모양에 대해서 한 마디라도 들을 수 있을까 했지만 전혀 다른 이야기고, 류 교수님이 나의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보여 주신 것으로 만족.

이제 문제를 풀어달라고만 하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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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페이지는 워드프레스에서 한글과 \(\rm \LaTeX\)을 사용하는 첫번째 시도이며 이를 티스토리와 비교해 보는 시도이기도 하다. 

내용은 궁금한 복소해석 2차 미분 형식의 내용을 정리하는 것이다. 이 내용은 영어 위키피디아에서 가져온 것이며 조금 요약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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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이 발달하여 전 세계 사람들의 생각이 모두 나에게 오고 또 전 세계로 퍼져 나간다. MIT 대학의 강좌 공개 프로그램인 OCW 사이트에는 이 대학의 많은 강의들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자료들이 올라와 있다. 수학에서 대표적인 것은 Gilbert Strang 교수가 수년 전에 했던 선형대수 강의로 30시간 정도의 강의 전체의 동영상이 올라와 있다. 요즈음은 유튜브에도 동시에 공개되는데 거기는 영어 자막까지 들어가 있어서 도움이 많이 된다. 이 강의는 매우 짜임새 있는 강의로 선형대수를 수강할 때 같이 병행하여 들으면 좋을 것이다.

이 사이트를 돌아보던 중 최근에 T. Colding 교수가 학부생을 상대로 한 편미분방정식 강의록을 보았다. 기하학자가 편미분방정식을 강의하는 것은 가끔씩 있는 것이지만 원래 편미분방정식이란 분야가 넓다 보니 공부하기가 어렵고, 따라서 학부의 강의는 고전적인 계산기법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 내가 공부하던 시절 UCLA에서 S. Y. Cheng 교수가 강의하던 편미분방정식도 그의 스타일 답게 계산에 많이 치우쳐 있었고 나는 그런 강의에서 매력을 못느꼈다고 할까 (결국 따라가지 못했다고 할까) 제대로 공부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Colding 교수의 강의는 이런 것을 조금 뛰어 넘고 대학원의 수업 내용에 해당하는 내용으로 직접 들어가고 있다. 강의록 뿐이고 동영상이 없어서 아쉽기는 하지만 강의록으로도 무엇을 했는지 어렵쟎게 알아볼 수 있는 강의가 편미분방정식이므로... 사실 복잡하고 정신없는 여러 가지 방법론에 계산까지 제대로 정리하기도 쉽지 않은 것인데 학부 학생들이 알 수 있는 수준으로 이런 이야기를 보여주려고 한다. 내용은 유클리드 공간의 Laplacian에 대한 계산 반의 반학기, 그리고 뒤에 가면 divergence form의 strongly elliptic 미방으로 앞의 계산을 일반화해나간다. 중간에 열방정식을 잠시 다루고...

더 일반적인 경우 특히 비선형인 경우를 결국 알고 싶지만 직접 이런 이론으로 들어가면 복잡한 방법론 속에서 길을 잃기 쉬운데 이렇게 한 번 모든 이론을 쉬운 경우에 한 번 훑어보고 난다면 이런 어려움이 한결 덜할지도 모른다. 응용을 위하여는 구체적인 계산을 공부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이것은 이미 100년이 넘은 이론이고 지난 100년은 편미방의 해의 존재와 미분가능성의 이론을 만드는데 전념했던 만큼 이제는 학부에서도 왜 지난 100년이 이처럼 힘들고 더디었는가를 알아볼 필요가 있는지도 모른다. 일반적인 미분방정식 계산법은 어쩌면 상미분방정식과 함께 다른 과목을 알아볼 때가 되었는가?

그러나 우리에게는 MIT의 강의가 아직 어렵다. 대학원 1학년 정도에서 공부하기 좋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물론 원론적으로는 학부 4학년이면 들을 수 있어야 하지만 해석학, 선형대수를 매스터하지 못하고 헤매는 친구들에게는 조금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 방학 동안에 한 번 세미나 하듯이 훑어 보려고 하고 있다. 이런 강의록은 어떻게든 우리말로 바꾸어 놓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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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가을학기부터 UCLA의 Terrance Tao 교수는 대학원 1학년 core 과목인 실해석학(Real Analysis) 강의를 하고 있다. 특히 그의 블로그 홈페이지에 이 강의의 강의록도 올려 놓는다. UCLA는 내가 대학원 시절이 공부한 곳이어서 감회가 따른다. 이 강의는 대학원 수강 번호가 245A이고 245B, 245C로 시리즈를 이루며 대학원 실해석학의 1년 코스이다.

내가 강의를 들은 1979~80년도는 Paul Koosis 교수님이 강의해 주셨는데 매우 concrete한 예와 증명법을 사용한 소위 hard analysis를 들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들은 강의들이 매우 soft했던 데에 비하여 hard analysis는 조금 둔하고 느리다는 느낌이었는데 묘한 것은 이렇게 얼마 안 공부한 것 같은데도 soft analysis에서 하는 내용을 모두 카버했었다는 것이다. 

이제 30년이 지난 시점에서 같은 강의를 Fields' Medalist인 Tao 교수가 강의하는 것을 보니 지금은 실해석학이 얼마나 변했는가? 그리고 이 사람은 이 강의를 얼마나 잘 하는가? 하는 두 가지 궁금증이 고개를 든다. 이 강의를 해 본 일은 한 번도 없고 예전에 알던 것들도 다 잊어버린 마당이지만 이제와서 PDE를 한 번 review/공부해 보려는 마당이니 실해석학을 다시 더듬어 보는 것은 어떨런지...

강의를 맡아서 하게 되면 제대로 공부해 볼지도 모르지만 어차피 게을러서 다 공부할 자신이 없으니 그런 욕심은 내지 말고 그냥 세미나 정도로 한 번 해보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 우선 Tao 교수의 강의록부터 제대로 볼 수 있는 형태로 바꾸어 볼 필요가 있겠다. 아마 이번 겨울학기 강의도 계속될 것이고, 봄학기 강의는 뭔가 요즈음의 연구 과제들과 관련된 재미있는 내용이 될지도 모르니까 조금 준비해 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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