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교수법에 대한 어떤 연구 결과에 대한 트윗을 보았다. 이 연구에 대한 사람들의 일차적인 평가는 교수가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 보다는 어떠한 교수법을 쓰는가가 훨씬 (2배 정도) 효과가 크다는 결과이다. 이 결과를 볼 필요도 없이 이 말이 맞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 결과를 받아들일 때 주의할 점이 있다고 생각된다.

우선 이 연구가 얼마나 잘 기획된 연구인지는 읽어보지 않아서 잘 알지 못한다. 원래 실험이라는 것이 그 구성에 따라서 여러 가지 요소가 뒤얽혀들기 쉬운 것이지만 또 능력있는 연구자의 실험은 믿을만도 하다. 이 실험에 대해서 한 두 가지 곁가지 사항을 짚어두기로 하자. 

우선 이 연구에서 이야기하는 "학생들에게 정평있는 노련한 교수"가 어떤 사람인가가 궁금하다. 단순히 학생들에게 정평있는 식이라라면 정말 학생의 공부를 "잘 가르치는" 교수는 아닐 수도 있다. 그리고 "전통적 방식으로 가르친다"는 것 또한 단순한 강의와 질문시간, 그리고 시험으로 이어지는 일반적 강의를 말한다면 이 또한 너무 당연한 결과를 유도하는 실험이 되기 쉽다. 아마도 두 비교되는 강의 방식에 노출(expose)되는 학생들의 시간을 같이 잡았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 강의를 준비하는데 들어가는 시간도 같이 잡았는가?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이 두 비교가 "교수법의 비교로서" fair하다고 할 수 있을지 조금 궁금하다. 아마도 대학원생들이 하는 강의 쪽이 훨씬 많은 준비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그리고 이미 교육학에서는 공부를 할 때 과업(task)를 주고 이를 통해 습득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등등의 것이 잘 알려져 있고 이를 재확인하는 실험이었다면 별로 놀라운 결과는 아닌 것이다.

일전에 대전 K대학의 일련의 사건에서 사람들의 잘못된 평가가 그 학교 교수들이 수업을 못 따라오는 학생들에게 F를 줄 수 없다는 사실로 이어지는 것처럼 모든 "사실"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면 이번 경우는 학원 선생님들의 강의를 대학으로 들여오자는 이야기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이와 유사한 내가 의도하지 않고 했던 실험이 있다. 이미 20년이 넘도록 강의하는 과정에서 어떤 학기는 강의 과목이 열리지 않기도 해서 같은 미적분 강의를 두 개씩 하기도 했다. 똑같은 강의를 두 개 하니까, 예를 들어 강의시간이 월수에 있는 강의와 화목에 있는 강의를 맡게 되면 월수 강의는 항상 먼저 하게 되어 처음 들어가면 강의 내용이 조금 혼란스러울 때도 있고 학생들이 잘 못알아듣게 이야기 해서 힘들기도 하다. 그러나 화목 강의에 들어가면 어제 했던 강의의 내용을 떠올리며 학생들이 어디서 힘들어하는지도 다 알고 어떻게 설명하니까 잘 알아들었는지도 잘 알아서, 강의 내용도 매끄럽고 중요한 부분은 강조하고 두 번씩 설명해 주고 등등 교수도 학생도 만족스러운 강의가 되었다. 이런 것이 명강의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그런데 학기말의 성적은 뜻밖의 결과였다. 버벅대고 잘 못가르쳐줘다고 생각되는 월수 반 학생들의 성적이 훨씬 좋고 정말 ideal한 강의를 했다고 생각했던 화목 반 학생들의 성적은 상당히 나빴다. 이렇게 같은 강의를 동시에 한 경험을 서너번 하고, 매 번 빠짐없이 똑 같은 결과를 얻고 나니 강의를 매끄럽게 하고 학생들이 원하는 강의를 해 주는 것이 잘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에 대해 원인을 생각해 보면 결론은 하나 밖에 없다. 화목 반 학생들은 결과적으로 공부를 안 했다는 것이다. 수업 내용을 잘 가르쳐 주면 듣는 이야기 가운데 하나가 "강의 시간에 들으면 전부 다 아는 것 같은데 나중에 혼자서 보면 모르겠어요"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화목 반 학생들은 강의를 듣고 그것만으로 잘 알게 되었다고 오인하는 것이다. 그에 반해서 월수 반 학생들은 시간중에 들어서 잘 정리되지 않으니까 스스로 그것을 정리하고 확인하는 과정을 화목 반 학생들보다 더 많이 했다는 말이 된다. 그러니까 학생들이 공부를 잘 하게 하려면 교수가 가르쳐주지 않고 학생들이 스스로 공부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영국 대학들의 공부법이 맞는 것일까? 강의를 개설해도 실제 수업은 하지 않고 학생들이 공부하다 모르는 것만 와서 물어보는 수업만으로도 세계에서 최상급의 대학인 Oxford를 보면 교수법이 무엇인지 잘 모르게 된다.

그러니까 교육에서 핵심은 학생들이 어떻게 공부하도록 하고 어떻게 생각하도록 하는가 하는 것이다. 이것은 수동적인 의미가 아니라 능동적인 것이어서 공부하도록 그리고 생각하도록 시키고 싶은 것이다. 여기서 교수의 역할은 학생들이 이에 힘이 부칠 때, 어떤 점에서 막힐 때 이를 뚫어주고 길을 잃었을 때 가이드가 되어 주는 것을 넘지 않는다. 그러면 잘하는 교수를 찾는 이유는 어디 있는가?

이와 관련해서 보면 앞의 실험에서 두어가지 조심할 점이 있다. 

이 실험에서 강의한 대학원생이 얼마나 내용을 잘 알고 있는가가 매우 중요하다. 물론 강의하는 내용을 잘 아는 학생들을 뽑았을 것이다. 내용을 조금이라도 이해하지 못한다면 교수법이 아무리 좋아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는 치명적인 부분이 된다. 그러니까 내용을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강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학생들이 일차적으로 내용을 익히고 기본적인 이해를 얻는데 까지는 실험과 같은 기획된 수업을 통해서 충분히 잘 익힐 수 있지만, 이를 지나서 생기는 학생 개개인의 의문과 이해 못하는 점을 해결하려면, 그리고 이 내용을 넘어서 나아가는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 이의 잘 잘못을 지적해주고 가이드해주고, 또 학생들은 생각하지도 못했던 아이디어를 여기 저기서 보여주는 것은 정말 잘 이해하고 그 위를 훤히 꿰고 있는 고수 교수가 아니면 할 수 없다. 이 수준이 되면 교수법은 별로 중요한 것이 안 된다.

예를 들어 내가 대학원 시절에 강의를 들은 기제커 교수님의 강의는 교수법과는 담을 쌓은 강의였다. 그는 칠판 판서를 해도 어디가 정리고 어디가 증명인지도 표시하지 않아서 강의를 들으면서 정말 이해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 교수님의 대학원 대수기하 강의는 (이러한 강의 방식으로도) 그 내용에 대한 핵심을 짚어 강의하고 있어서 그 강의를 통해서 대수기하학의 요체를 얻을 수 있는 강의이다. 이 내용을 배워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학생들에게는 기제커 교수님의 교수법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즉, 교수법이 문제가 되는 것은 강의를 듣는 학생들의 자세가 그저 그럴 때에 훨씬 중요한 것 같다.

그러니까 맨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강의에 노련하기 보다는 강의할 내용에 노련한 교수가 잘 기획된 과업(task)를 수반하는 interactive한 강의를 한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강의를 기획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 아마 수학과에서 학부 저학년 강의 정도는 몇 개 이런 것을 개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짜 공부할 부분에 들어오면 수학과 전공 수업 같은 내용은 수학자들도 사람마다 이해 방식이 다른데 이것을 대학원생이 강의할 수 있는 수준의 interactive task로 구성한다는 것은 말이 쉽지 실제로는 불가능에 가까울 것 같다. 

아마도 위의 실험의 수업은, 그 내용을 골똘히 생각하고 친구들과 머리싸매고 토론하고 교수들의 해석을 듣고 해야만 이해가 되는 식의 수학 강의와는 좀 다른, 이해할 내용의 양은 좀 적고 알아야할 사실(fact) 또는 익혀야 할 방법이 훨씬 더 많은 강의에 더 잘 적용되는 이야기일 것 같다. 그리고 수학과 전공과목에서 이런 방식의 강의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겠지만 아마도 이를 강의하는 교수의 입장에서는 한학기나 1년에 한 강좌 정도만을 하라고 하면 이런 강의를 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한편 이런 강의의 약점도 잘 알려져 있다. 이런 수업방식의 하나인 소위 PBL이라고 하는 문제중심 학습 방법의 경우 가르쳐야할 내용을 주어진 시간에 다 가르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대학 강의 가운데 몇 개 정도 이런 수업이 있어서 고전적인 방식의 강의를 들으며 학생들이 스스로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는 정도로 충분할 것이다. 

기존의 틀에 박힌 강의가 교수의 강의와 시험만인 것이 아니다. 강의는 기본적으로 예습과 복습을 하도록 되어 있고 이 과정에서 어려운 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연습시간, 교수와의 면담시간, 퀴즈 시험과 같은 것들은 결국 위에 실험에 사용된 좋은 강의의 모델과 흡사하다. 차이가 있다면 실험의 강의는 이것을 학생들에게 강제로 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은 결국 씹어 먹여주는 또 한 가지 방법에 불과하다고 보이고, 잘못하면 이것은 결국 학생들을 잘 안 가르치겠다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위와 같은 논의가 나오는 것은 학생들은 단순히 학점과 졸업장에 연연하고 있다는 가정에서이다. 교수법이 아니라 대학의 강의의 내용이 좋아져서 학생들이 스스로 공부하여 알아야 하겠다는 것이 늘어나면 교수법은 상관 없는 강의가 늘어날 것이다. 분명히 이런 쪽이 내용은 틀에 박힌 것이지만 교수법이 좋은 것보다는 좋은 상황이라고 보인다. 강의 내용이 좋아지는 것도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쪽의 논의가 많이 살아나는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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