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어떤 교수님의 트윗을 통해서 요즘 유행(!)하는 수학 교과과정 간소화(이것은 내가 임의로 붙인 이름이다)에 대한 글을 읽었다. 이 글은 독일에서 자녀들을 키우고 있는 어떤 학부모가 쓰신 독일의 수학 교육과정에서 불필요한 수학을 많이 빼서 학생들이 우리나라보다 나은 수학을 공부하고 있다는 요지의 글이었다.

내가 놀랍게 생각하는 것은 이분의 생각이 아니라 이에 대해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수학자들도 있다는 것이고, 이에는 조금 혼돈스런 점이 있지 않을까 하여 글을 쓰게 되었다. 이 글에서는 물론 수학, 그리고 기초과학 나아가서는 기초학문분야 전반에 대한 변호가 주된 이야기가 되겠지만 세상이 마음먹은대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바꿀 수 있는 것은 쉽게쉽게 바꾸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점에 대하여 이야기하려 한다. 물론 필자는 수학 외에는 문외한이므로 수학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것이다.



우선 굳이 이분의 글에 딴지걸 생각은 없지만 올려주신 시험지의 내용을 보고 느끼는 점이 많았습니다. 우선 이 시험(수능모의고사에 해당함)을 보니 수학 시험에 시험문제가 3문제였습니다. 우리도 이런 시험을 볼 수 있으면 하고 정말 바라는 식의 시험이고, 현재 내가 소속돼 있는 학교에서 수시 논술시험에 내는 수학시험문제와 유사한 형태지만, 우리 경우 이런 시험문제 위주로 내면 교과부에서 곧바로 지적을 받던가 나아가서 교육부의 재정지원이 줄어들거나 합니다. (우리가 이런 논술시험은 보아도 수능시험으로는 보지 못하는 것은 첫번째가 채점자의 권위가 인정되지 않으면 아무도 채점하려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고, 둘째가 실제로 짧은 시간에 채점하는 것이 불가능한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즉 시험이 이정도만 되어도 학생들은 지금 우리나라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내용을 이해하고 나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시험에 대비해 공부하게 되면 수학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학생은 훨씬 더 늘어날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냥 공식 몇 개, 그리고 나오기 쉬운 문제 몇 개 외우면 되는 시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시험을 보고 50%라도 점수를 받으려면 시험에 나온 수학 대부분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지요. (우리나라 수능 문제의 경우 틀에 박힌 문제들만 맞추어서 50%를 맞추려면 대표적인 문제들의 틀에박힌 풀이법을 외우다시피 하면 됩니다. 물론 어려운 몇 문제를 맞추는 것은 이보다 조금 어렵지만... ) 실제로 독일 시험문제는 아마 우리나라 수능시험에서 제일 어려운 문제와 비슷한 수준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5지선다에서 답을 찾는 것과 그 문제의 풀이와 답을 적는 것은 어려운 정도가 수십배가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즉 우리나라는 시험시간에 문제 20개를 푸는 식이지만, 독일은 3문제를 푸는 식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이고요. 이렇게 시간을 많이 주는 이유는 단지 답을 적는데 걸리는 시간 때문이 아니라 이런 문제의 풀이를 머리속에서 논리적으로 정리하는데 그리고 그 과정에 결함이 없는지를 생각해보는데 시간이 그만큼 걸리기 때문입니다.


독일 교육과정 내용이 줄었다고 하는 것은 아마도 20세기 후반의 교육에 비해서 줄었다는 것이겠지요. 모든 나라의 대학 교육이 대중교육 형태를 띄면서 그 내용을 줄이는 것이 추세인 듯 생각됩니다. 하지만 수학에서는 그 나라 수학을 이끌어갈 수학 엘리트 교육과 일반인들의 사고능력을 키워줄 일반수학교육으로 이원화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실제로는 몇가지 더 나누어야 하겠지만요.) 우리나라는 이 앞의 부분이 없기 때문에 일반교육이 엘리트교육까지 하느라고 더 혼돈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프랑스의 경우에 보면 이런 엘리트교육을 받고 수학자의 길을 걷게 되는 사람들은 대학에 들어오는 순간에 우리의 대학 2학년 정도까지의 내용을 이미 공부하고 들어오고, 대학을 졸업할 때에는 우리 대학원 석사과정의 기본 내용은 모두 공부를 끝내고 있는 것 같아요. 이는 대학원에서 같이 공부해 보면 알 수 있는 일이지요. 아마 영국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유럽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대학 및 대학원 교과서는 요즈음 우리나라에서 가르치는 것보다 더 수준이 높은 것을 보면 결코 수학의 교육과정이 줄어드는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일반인은 수학을 조금 덜 배우도록 하지만 수학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수학을 더 가르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여기서 수학이 필요하다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해 봐야 합니다.

어려운 수학을 공부해야 하는 사람에는 수학자 말고도 자연과학, 공학, 그리고 인문과학 등 '과학'과 '공학'이라는 이름이 붙은 전공을 공부해서 써먹겠다는 사람들은 모두 어떤 종류의 수학을 공부해야 합니다. (모든 과목은 아니겠지만요) 그리고 이 수학에는 수학과 통계학 그리고 계산법이 포함됩니다. 전통적인 수학과 통계학 외에 직접 계산해서 답을 낼 수 있는 계산법도 매우 중요한데 여기에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써서 원하는 계산을 할 수 있는 것도 생겼습니다. 20세기 후반에 발전된 이 새 방법은 컴퓨터학과에서 배우는 전산과목 내용과는 전혀 다른 것이고요, 수학 프로그램을 활용해서 통계를 내고, 방정식을 풀고 하는 것입니다. 손으로는 절대 할 수 없는 것을 하는 것이지요. 이것을 해 보면 프로그램을 쓸 수 있는가 없는가는 수학을 얼마나 잘 이해하는가에 달렸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즉 몇 가지 틀에 박힌 문제를 풀수 있는가는 별 도움이 안되고 수학 및 논리적으로 합당한 방법을 스스로 찾아내는 것이 핵심인 것이지요. 계산은 컴퓨터에게 맡기고...

이런것을 하려 하면 수학에서 필요없다고 버릴 내용은 없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것을 해야 하는 학생들은 우리학교 1년 입학생 5000명 중에서 적어도 4000명정도에 해당합니다.  물론 이 학생들이 모두 나와서 이런 일을 할지는 모르지만 그렇다고 이 공부를 하러 들어온 학생들에게 나중에 필요없을지도 모르니 공부하지 말아라 할 수도 없는 것이고, 고등학생들이 이런 학과에 들어가려고 노력하는데 너희들 중에서 90%는 나중에 수학을 안 쓸테니 공부도 10%만 해라 할 수도 없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진로를 미리 결정할수만 있다면 수학공부를 많이 줄여줄 수도 있고 더 실용적인 수학을 가르쳐줄 수도 있겠지만 불가능한 일 같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교육해야 할 것인가? 이것은 정말 어려운 질문입니다. 가르쳐보면 볼수록 점점 더 답이 없어지는 것이기도 하고요.  우리나라 수학 교육은 입시준비를 위한 교육과 창의력을 가진 인재를 키우기 위한 두 가지 교육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모든 곳에서 목표는 두번째 것을 내세우지만 실제 교육은 첫번째 것에 맞추어 하고 있죠. 어떤 경우에는 이 두가지를 혼동하기도 합니다. 이것의 괴리를 없애지 않으면 독일같은 교육은 되기 힘들겁니다.


하지만 몇 가지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우선 어떤 선생님이 가르쳐야 하는가 하는 것인데, 입시 준비가 아니라면 하는 가정을 하고 이야기하지요. 이 경우 학생을 가르치기 어려운 정도는 아래로 내려갈수록 더 어렵습니다. 극단적으로 대학원에서 학생들에게 강의할 때는 자기가 강의하는 전공의 내용만 잘 알면 강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학원 전공과목들은 젊은 박사들도 잘 가르칩니다. 그러나 학부 과목을 창의적인 관점에서 가르치려면 수학 전반을 잘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밑으로 내려와서 초등학교로 내려가면, 수학의 내용은 쉬워보이지만 그 내용은 수학 전체가 뭉뚱그려서 나타나고, 여기서 학생들의 창의적인 생각을 알아보려면 대학과 대학원 수학을 다 알아야 그런 것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리고도 학생들의 심리적인 부분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므로 이것은 정말 뛰어난 선생님이 아니면 안 됩니다. 그래서 초등학생 때에 이러한 것을 모두 잘 아는 사람과 접할 수 있으면 나중에 공부하는데 정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 반대이지요. 초, 중등 학교 선생님들은 학생 심리를 잘 알지만 고등수학은 전혀 모르기도 하고, 고등수학을 알아도 핵심은 모르는채 문제만 풀줄 알거나, 수학은 잘 하는데 심리를 몰라서 학생들과 부닥치기도 하고...


초등학교의 교육을 조금이라도 ideal하게 바꾸어 보려는 노력이 공부하는 내용을 좀 줄이고 대신 생각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늘려보려는 시도라고 생각됩니다. 독일이 어쩌면 이런 것을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변화의 핵심은 선생님이 준비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고등수학을 잘 모르면 창의적인 생각을 하는 학생들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것인지를 알 수가 없지요. 수업시간에 어떤 생각이 나서 물어봤다가 선생님한테 야단만 맞은 경험을 가진 사람은 많을 거예요. 선생님이 준비되지 않은 경우에는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단편적인 생각만으로도 독일에서 교육의 변화가 실제로 수학을 조금만 공부하자는 것인지 잘 알 수 없게 됩니다.


이 분이 쓰신 글 가운데 독일에서 정치, 사회 교육으로 학생들에게 입센의 드라마를 보고 토론/레포트를 내주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숙제의 포인트가 민주주의에서 소수, 특히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는 소수의 중요성을 간과하기 쉽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라고 글에 쓰시고 있습니다. 수학 교육도 이와 마찬가지로 현상을 제대로 파악하는 소수의 의견이 매우 중요하고, 이를 소수로 만들지 않으려면 이 상황을 모두가 스스로 이해해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수학에 대해서 제가 잘 하는 말이 있습니다. 수학자는 정치가와 달라서 대부분 아무런 권력도 추구하지 않습니다. 러시아의 어떤 수학자처럼 명예도 헌신짝처럼 내버리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공부하는 것이 어째서 모든 나라의 시험의 첫머리에 올라가는지? 모든나라의 교육과정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지? 어째서 오바마가 수학이 국력이라고 외치는지? 이 모든 것이 수학자의 정치력이나 권력에서 나오는 것이 전혀 아니라는 점은 명백합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는 못하더라도 수학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수학은 어디까지만 공부하면 된다는 것도 없습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평생을 살면서 필요없는 수학은 없습니다. 다른 학문은 물론 같은 기초과학에서도 필요없는 물리나 필요없는 화학은 있을지 몰라도 필요없는 수학은 생각하기 힘듭니다. 수학은 언어와 유사하고 어느 나라나 언어와 수학은 교육의 기본입니다.


모든 나라가 수학을 최대한 가르치기 위해서 효율적인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초, 중등학교에서는 내용을 많이 가르치기 보다는 수학으로 생각하는 법을 많이 가르치려 변화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이는 추상적인 수학으로 현재 배척받는 20세기 프랑스의 부르바키 수학을 현실 응용 가능하게 가르치려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부분입니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수학 교육은 여러가지 심리학적 이론이 끼어들기는 했지만 19세기 말까지 미국에서 추구했던 실용수학을 20세기 수학 기반 위에 다시 세우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리고 현재의 변화는 100년 전 20세기 초의 새로운 수학 교육 물결과 마찬가지로 현재 알고 있는 이론에 맞춘 새로운 수학 교육을 시도하는 것일 수 있고, 이는 수학이 쉬워지는 것이 전혀 아닐 것이리라고 생각되는 이유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 개개인이 공부에 투자하는 노력의 총량은 변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공부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노력을 투자해서 최선의 결과를 얻으려면 공부의 효율성을 높여야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우리 교육체계는 조금만 가르치는데는 효율이 높은 형태이지만 많이 가르치려면 효율이 낮습니다. 독일은 많이 가르치는데서 우리보다 효율성이 높은 체계를 가지고 있다고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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