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언론에 입시 논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보인다. 입시 시즌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겠지 하면서도 항상 나오는 똑같은 이야기, 그리고 본질을 비켜간 듯 보이는 단순화된 논리 등에 조금 마음이 상한다. 이렇게 해를 거듭해서 같은 말을 되풀이하며 해결점을 향해 나아가지 못하는 것은, 핵심을 젖혀놓은 논의와 함께, 기록에 인색하고 예전 기록을 들쳐보지 않는 습관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의 링크에 따라 읽어본 한 두 가지 기사/의견란에 대해 첨언을 해 둔다.


이 의견란은 일견 비교적 공정한 듯이 보이는 의견이 쓰여 있었다. 간단히 소개하면: 


최근 논술에 고교 교육과정을 넘는 고난도 문제가 나온다. 이것은 고등학교에서 준비하기가 어렵다. 어려운 논술고사는 학생들을 사교육으로 내몬다. 이러한 일반적인 논리에 대해서,


1. 대입 논술의 범위를 고등학교 교육과정 범위로 한정하자.


2. 초등학교부터 학교 교육과정에 논술을 넣어서 능력을 키워나가자.


라는 말씀을 하고 있다. 이에 대한 나의 의견은:


1. 우선 이러한 논의의 전제는 아이들을 사교육으로 내몰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모색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견 옳은 방향인 듯이 보이지만 핵심을 벗어나고 있다. 이것은 사교육을 막을 수 없다는 대 전제를 무시한 것이다. 사교육을 무조건 막을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어려운 시험이 없어지면 불공정하고 비교육적인 사교육만 판치고, 결국 돈 많은 사람만 유리한 쪽으로 흐르게 된다. 이에 대해서는 본인이 예전에 썼던 을 참조하면 좋을 것이다.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 원칙적으로 나의 견해에 동의한다면 수학 논술과 관련된 다음과 같은 점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2. 수학 문제는 기본적으로 배운 것을 응용하는 문제를 물어보게 된다. 그런데 교육과정을 쉬운 것으로 한정하면 물어볼 문제가 별로 많지 않다. 즉 참고서에 있는 문제가 거의 전부이다. 이런 경우에는 학생들이 공부를 할 때 내용을 이해하지 않고 그냥 케이스별 문제를 외워서 문제를 푼다. 이렇게 가르치는데 선생님들조차 익숙해지면 이런 문제가 아닌 생각해야 풀리는 문제를 출제하면 사람들이 교육과정 밖의 문제라고 한다. 특히 다른 방법을 사용하면 쉽게 풀리는 문제를 내는 경우에는 더 그렇다. 그러나 이것은 조금은 잘못된 생각이다. (뒤의 논의를 참조하세요.) 즉 범위를 고등학교 교육과정 범위로 한정한다는 말은 뜻을 알기 힘든 말이다.


3. 초등학교부터 교육과정에 논술을 가르치자는 것은 물론 매우 좋은 의견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선생님이 매우 많이 필요하고 또 선생님의 질이 매우 높아져야 한다. 내신도 몇 과목만 보고, 시험의 과목이 줄어들어서 이런 곳에 쓸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늘어나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아무도 나중에나 쓰게 될 논술보다는 지금 당장 급한 곳의 공부만 하게 될 것이다.



이제 위에 대하여 조금 부연 설명을 하자.


2.와 관련하여 이야기하면, 고등학교 수학 교과과정은 내가 공부하던 1970년대 초반에 비하여 몇 가지 토픽이 늘어났지만 개개의 깊이는 더 얕아졌다. 공부하는 내용과 양을 비교하면 1970년대에는 소위 우수한 고등학교에서 가장 잘하는 학생들도 고등학교 수학의 내용을 모두 마스터하기가 힘들었다. 특히 고등학교 범위의 문제라고 하면 고등학교의 방법만을 써서 설명할 수 있는 문제이면 시간이 오래 걸려도 문제되지 않는 것이었다. 즉 서울대학교 입학시험의 수학과목 합격자 평균이 발표는 30점이라고 했어도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낮았다고 교수님께서 말씀하셨었고, 응시자의 한 30% 정도는 0점이었던 시절이었다. 요즘 시험에 비하면 훨씬 어려운 것이다. (비교가 안되는 것이 풀이를 적어서 partial credit을 받을 수 있는 문제인데도 0점이라는 것은 전혀 한 글자도 못 썼다는 것이므로...) 그 당시의 이런 어려운 문제들도 실제로는 고등학교 교과 과정 내에서 출제된 것이었다.


지금 교과과정의 해석에 대해서 예를 들어보자. 고등학교 교과과정에 예전에는 있다가 지금은 없어진 것으로 원순열이라는 것이 있다. 몇 가지 색깔의 공을 동그랗게 늘어놓았을 때 서로 다른 모양의 갯수를 세는 문제이다. 아마도 이 문제가 고등학교 문제 가운데서 가장 복잡한 기본문제였을 것이다. 이 문제는 어렵다는 이유로 현장 선생님들의 배척을 받아서 기본교육과정에서 제외되었다. (7차 교육과정에서 였다.) 그러나 이것은 정말 말이 되지 않는다.


양쪽 면을 모두 보자. 우선 이 문제를 제외한다면 내가 납득할만한 이유는 단 한가지 있다. 이 문제는 대학의 군론(group theory)를 공부하면 배우는 Burnside의 counting principle이라는 방법을 쓰면 쉽게 계산할 수 있다. 따라서 고등학교에서 대학 과정을 선행학습을 시키게 된다면 빼는 것이 좋다 라고 주장할 수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문제를 고등학교에서 풀 때는 단순히 순열조합의 기본원리인 덧셈법칙과 곱셈법칙, 그리고 경우를 나누는 것을 사용한다. 조금 복잡하지만 고등학교 교과과정의 순열, 조합에서 배운 것을 전부 사용하는 문제로서 이것을 모두 잘 배웠는지를 확인하는 아주 좋은 연습문제이다. 내 견해로는 이것을 푸는 문제를 물어보면 아직도 고등학교 교육과정의 범위의 문제라고 판단된다. 단지 교육부 교육과정 지침에 원순열은 제외한다고 쓰여 있는 것을 확대해석한 사람들이 안된다고 하기는 하지만... (이것도 교육부의 지침은 이 문제를 교과서에 굳이 싣지는 말라는 뜻이라고 보이지, 이 문제가 교육과정의 범위 밖의 문제라는 뜻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데 말이다.)


그럼 진짜로 대학의 Burnside 법칙을 사용해서 푸는 학생이 있다고 하자. 답만을 쓴다면 실제로 선행학습이 역할을 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간단한 풀이 배경을 쓰기로 한다면 실제로 상당히 복잡한 풀이방법 구성에 대하여 써야 하고 이것을 쓸 능력이 있다면 고등학교의 방법보다 훨씬 더 어려운 것을 설명해야 하니 혹시 선행학습을 했더라도 이는 쉬운 일이 아니고, 따라서 절대로 막을 일도 아니라고 보인다. 즉 논술 시험에서는 이런 것을 막을 이유가 없다. 그리고 우리 시절에는 고등학교 선생님들이 고등학교 방법만으로 설명하는 방법을 잘 가르쳐 주셨었다. 지금 선생님들은 왜 그때 선생님들만 못해서 이런 것을 할 수 없다고 하시는지?


이런 문제를 예로 든 이유는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잘 이해하면 그 다음 스텝은 이것의 응용일 뿐인 것이다. 즉 범위 밖이라고 불리는 많은 것들은 실제로는 범위 안의 문제들이다. 이것은 너무 당연하다. 우리 교육과정은, 비록 최근에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그 근간이 되는 예전의 교육과정을 보면 다른 나라도 그대로 사용하는 (특히 일본이 사용하는) 것과 거의 같은 것으로, 매우 훌륭한 교육과정이다. 즉 이것만 공부하면 거의 모든 것을 풀고 거의 모든 것에 적용할 수 있는 교육과정이다. 그러니 이것을 제대로 공부한 사람이면 정말 많은 문제를 풀 수 있다. 단지 이것을 교과서에 있는 문제를 문자 그대로 내는 경우로 제한하는 경우에는 이상해지는 것이다.



3.과 관련하여서, 선생님의 수와 질은 예산이 문제가 된다. 그리고 선생님 수에 대한 해결책은 획기적인 투자 외에는 없다. 그리고 선생님 질에 대한 해결책은 현실적으로 막혀 있는 부분인 대학 박사급 인력이 고등학교에서 교육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는 모든 학교가 공교육이고, 교수나 교사 발령도 국가가 한다. 거기서는 새로 박사를 받으면 일부는 대학에 발령을 받지만 나머지는 고등학교에 발령받아서 몇 년 가르치며 연구를 열심히 해서 대학에 갈 자리를 찾는다.) 이런 변화는 교육학과의 소위 밥그릇과 관련되어서 쉬운 해결책은 안보이고, 따라서 고등학교 선생님의 질적 향상은 불가능해 보인다.


특히 논술과 같은 매우 매우 중요한 읽기, 쓰기 교육이 늘어나려면 학생들이 읽고 생각할 시간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처럼 많은 교과과목을 공부하려면 시간이 없다. 옛날 (우리가 공부하던 시절보다 더 전, 1960년대)과 같이 국어, 영어, 수학만 공부하면 입시는 끝나던 시절이 아이디얼하다. 이 문제도 아마 여러 과목 선생님들과 사범대학 각 학과의 밥그릇 문제가 첨예해서 지금은 교육부 장관도 감히 손을 못대는 문제이다. 어쩌면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대통령이 문제를 제대로 이해했다면 이렇게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지는 않았을 것이고, 또 당시 이해찬 장관이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기만 했더라도 혹시 무대뽀로 가능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이 때가 내가 보기에 가장 가능성을 가진 시기였고, 또 가장 크게 실기한 때이기도 하다. 이에 대한 딴지는 사절한다.


결국 대학 입시 문제에서 대학이 쉬운 문제를 내야 한다는 것과, 고등학교에서 논술을 가르치자는 것은 일견 그럴듯 하지만 약간 핵심을 벗어나간 느낌이 든다.

핵심에 가까운 방법은 위에 들었지만 결코 실행하기 쉽지 않고 이것이 해결되지 않는 한 현재 학생들이 마주친 어려운 상황은 풀릴 수 없다고 생각된다. 이것을 알고 있는 현 교육부 장관이 이명박정부의 전폭적인 지지를 가지고도 해결할 수 없다면 나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불가능한 문제를 단순히 대학이 어려운 시험문제를 내기 때문이라고 몰아가는 이유가, 언론이 이러한 것을 몰라서라면 언론의 수준이 낮은 책임이고, 언론이  알지만 이렇게 이야기한다면 사람들을 호도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하겠다. 


거의 불가능한 것이므로 이야기하지 말자고 하면, 이것은 언론(言論)으로서 또 불가능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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