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중등교육에서는 수능 절대평가가 관심사인가보다. 영어 과목은 2018학년도 수능부터 절대평가를 한다고 한다. 이에 대해 국어, 수학도 절대평가를 원하는 사람도 많다. 이 말의 뜻은 수능이 고교 과정을 일정 수준으로 이수했는가에 대한 자격시험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마치 단순히 평가 방식을 바꾼다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이것은 원래 시험을 없애고 새로운 시험을 만드는 수준의 개정이다.
문제는 이것만으로는, 그래서 고등학생의 30-50%가 모두 최상위 등급을 받아 통과했다고 하면 대학이 학생을 어떻게 선발하는가 하는 문제가 된다. 뭔가 생기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된다. 문제는 이 새로운 것에 사교육이 끼어드는 것이 줄어들기를 바라는 것이겠지...
두 가지 가능성이 보인다. 첫째는 대학이 본고사에 해당하는 것은 만드는 것이다. 이것을 막기 힘들 것이다. 결국 또 다른 사교육이 생긴다. (이 배경에는 어떤 경우에도 사교육이 효율적이라는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 있다.)
둘째는 강력하게 대학이 본고사를 치를 수 없게 막는 것이다. 이 경우 이 문제는 대학 입학 후의 문제가 된다. 실제로 이렇게 운영되는 것이 미국의 교육이다. 고등학교에서는 어느 수준의 공부만 한다. 대학은 이 학생들이 어떤 과목을 이수했는가 성적이 어떤가만 보고 학생을 선발한다. 그리고 2년 동안 기초교육을 시킨다. (이 기초교육에는 보통 언어, 수학이 있고 이과쪽을 전공하고자 하는 경우는 과학 한 과목 series 정도가 포함된다.) 이 과정에서 고등학교에서 얼마나 공부를 했는지가 드러난다. 그래서 이 초기 2년 사이에 많은 학생들이 학교 사이를 왔다갔다 한다. 성적이 별로 안 좋으면 자기에게 맞는 대학으로 전학한다. 내가 공부했던 UCLA에서 내가 공부하던 시절에 우리나라 사람만 보면 500명이 훨씬 넘는 (아마 7-800명 정도) 학생이 1학년에 입학하지만 이 2년 사이에 대부분 더 낮은 학교로 전학가고 3학년이 되면 200명 정도가 남는다고 들었다. 이 중에는 다른 학교에서 학점이 좋은 학생이 전학온 경우도 있으니까 사실 대부분이 학교를 옮긴다. (일반 미국 학생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대학에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이 가능하다면 당연히 이 둘째 방법이 좋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을 가르쳐보고 평가하면 정말 제대로된 평가를 할 수 있다.
(예전에 우리가 쓰던 방법이 유럽 방식으로 고등학교에서 엄청나게 공부하고 시험봐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던 것이라면, 지금은 점점 고등학교는 최소한만 가르치고 공부하고 싶어하는 또는 집에서 밀어붙이는 학생만 공부해서 대학 간 다음에 공부가 판가름나는 미국 식으로 바뀌는 것이다. 물론 미국식은 성공적인 교육이 아니라고 평가되고 있는 것이지만...)
미국은 이 방법을 잘 쓴다. 대학에서도 그렇지만 대학원에서도 초기 core 과목은 성적 받기 매우 힘들고 이것을 통과해야 제대로 입학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학부에서는 2년 4학기 (또는 5-6학기) 길이의 Calculus와 1년 2학기 물리학이 이 역할을 한다. 한편 전공에 들어가면 다시 이런 과목이 있다. 수학 전공이면 해석학(Advanced Calculus)가 그것이고, 전산학 전공 같으면 전공에 들어와서 처음 듣는 컴퓨터 언어 과목이 이런 역할을 한다. 많은 학생들이 이 과목을 패스하느라 이 과목을 두 번, 세 번 듣는다. 그리고도 안 되면 자신의 수준에 맞는 학과나 대학으로 전과/전학을 한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학과 사이의 전과나 타 대학으로 전학이 쉽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이 때는 시험을 보기 힘드니까 교수의 추천서가 매우 중요하게 된다.
이 두 번째 경우에는 사교육이 어떻게 될까? 이 경우에 사교육이 없어질 리는 없다. 하지만 이 사교육은 대학 과목별로 다르고 전공별로 다르고 어떤 식으로 이루어질 지도 모르니까 아마 구체적으로 분별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니까 사교육이 많다고 말하기도 어려워질 것이고 사교육을 없앴다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짜로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내 관점에서 보면 이렇게 생기는 사교육은 지금의 사교육보다는 낫다. 적어도 쉬운 시험에 대해 실수 없도록 준비시키는 비교육적인 사교육보다는 훨씬 더 필요한 내용에 대한 실력을 늘려 주는 사교육이 될테니까 학생의 입장에서도 이런데 비용을 들인다면 쓸데 없이 돈을 쓰는 것이 아니다. 정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사교육에 좀 더 가까울 것이다.
정책을 입안하는 분들이 이런 결과를 원해서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뭐 뒷걸음 치다가 뭐 잡는다"는 말처럼 어쩌면 이런 일이 일어나면 교육이 발전할지도 모른다. 단지 대학생들이 자유로 전학할 수 있는 상황이 생겨야 할 것이다. 또 결원이 생겼을 때 대학이 즉시 정원을 추가로 채울 수 있어야 학교가 운영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