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글과 마찬가지로 이남호 교수님의 수필집을 읽고 쓴 것이고 이 또한 장난스럽다.



혼자만의 시간

이남호 교수님의 산문집 "혼자만의 시간"을 거의 안 읽고...

이교수님의 새 산문집 "혼자만의 시간"을 혼자만의 시간에 읽으며 혼자만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건 "너 자식을 알라"와 무슨 관계인가?) 지난번 책을 읽는데도 꽤 뜸을 들였었다. 한번에 다 읽어버릴 가벼운 내용이 아니어서인가. 다음쪽에 무엇이 나올까 하는 궁금함이 앞서는 책이 아니었다. 오히려 한 글을 읽고 나면 다음 글로 바로 들어갈 수 없게 하는 것이 있었다. 이 책도 그런 것 같다.

그렇지만 "혼자만의 시간"은 그 보다 더 아기자기한 맛이 있는 글과 같이 여겨지고 글들 또한 지난번 책보다 짧아져서 시집을 대하고 있는 느낌이 난다. 이교수님의 생각이 얼마나 반영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책의 편집과 디자인도 더 아기자기하다. 무뚝뚝한 수학책만 보고 그런 책 하나를 한 겨울 동안 편집한 나에게는 수학책도 시집같이 쓸 수 없을까 하는 바램이 생겼다.

역시 나는 순서대로 쓸줄 밖에 모른다.

겉표지 안쪽에 이교수님의 소개가 있다. 이전 책에도 있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있었으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매우 궁금하다. 이 소개는 "... 책을 많이 쓴 사람을 미워했는데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간다. 내가 바라는 내가 잘 안 된다." 로 맺고 있다. 내 친구가 어딘가 썼던 말 하고 비슷하다. 나도 이 비슷한 말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정확히 뭐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다.

"고독만큼 좋은 친구는 없다고 하지만, 고독한 삶보다 고독을 잃어버린 삶이 더 견디기 어려울 것 같다"라는 말을 읽으면서 "(하나 남은 친구인) 고독 조차도 잃어버렸으니 당연하지..."라는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은 수학을 공부한 사람의 병폐인가. 199쪽에서 "수학적 두뇌가 탁월한 사람이 다른 면에서는 멍청하게 보이는 것"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지만, 나의 경우에는 탁월하지 못한 두뇌로 수학과 씨름하기 때문에 다른 면에서는 멍청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 주변에는 수학적으로 탁월한 두뇌를 가지고도 전혀 멍청해보이지 않는 사람이 여럿 있다. 어쩌면 그들도 멍청하지만 내가 더 멍청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영원히 알 수 없는 일이다.

글머리에(여기까지는 제대로 읽었다) "어머님께서도 읽으실 수 있는 책을 내게 되어서 기쁘다"고 했다. 반성을 하게 만드는 말이지만 나는 이 책을 내 글 대신 어머님께 보내드려야 되겠다고 생각한다.

이번 책의 제목은 책 속의 첫째 산문의 제목과 같다. 그래서 나는 몇쪽 안읽고도 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다 읽었다고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이 글에서 말한 혼자만의 시간은 "나" 혼자만의 시간이 아니었다. 이 것은 "음악" 혼자만의 시간이었다. 특히 한가지 이 글에서 내가 얻은 위안은 내 방의 전등불도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좋겠고 내 방의 컴퓨터도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좋을 것이라는 것이다. 가끔 갖던 학교 경비를 축내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덜어주는 이야기이고, 나 같은 사람이 또 있구나 하는(의도야 다르더라도) 안도감을 전해주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이야기도 이런식으로 슬쩍 말해버릴 수도 있구나 하고 감탄하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 글은 컴퓨터로 쓰고 있다. "시간 도둑"에서 우리 시간을 빼앗는 컴퓨터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지만, 나는 컴퓨터가 있기에, 혹시 읽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는 글을 남들 보라고 여기에 올려놓을 수 있는지도 모른다.(이건 분명 유위(有爲)이다.) 물론 이 글을 올려 놓는 일 자체가 또 남들의 시간 도둑을 하나 더 만드는 일이 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한다면 또 잘못된 무위(無爲)에 빠지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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