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대전의 한 대학에서 어떤 학생이 자살하였다고 한다. 이유는 천천히 밝혀지겠지만 아마도 공부 스트레스일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올해 들어 4번째이고 보니 하나 하나의 경우는 다 사정이 다를지도 모르지만 전체적으로는 공부 스트레스가 한몫 하였으리라는 것에 나도 동의한다.

그러면 이 학생들의 자살은 타당한 것인가? 상황이 자살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었는가? 그럴 리가 없다. 나 같은 수도권 유수 사립대의 교수에게도 저 자살한 학생의 학교에서 평점이 3.0 미만인 학생은 물론 낙제학생이라도 좋으니 우리 학교에 와서 공부만 하겠다고 하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 지도 모른다. 그러니 평균이 3.0이 넘지 않는다고 문제가 될 일이 없다. 혹시 등록금을 추가로 내야 하는 부분이 부담이었을까? 물론 돈은 항상 부담되지만, 내가 유학하던 지난 세기 80년대에 유학생이 중간에 돈이 떨어지면 (물론 대부분 학생들이 집에서 부친다는 생각은 못하는 시절이었으니까) 휴학하고 알바 수준으로 취직해서 돈벌며 공부하였다. 그러니까 이런 문제는 적어도 자살할 이유는 되지 못하는 것이다.

트위터에서 보는 전문가의 의견은 이런 경우들, 특히 한 사람이 자살하면 다른 사람들이 따라 자살하게 되는 도미노 현상은  병리적 현상이고 특히 사회 병리적 현상으로 다루어야 한다고 한다. 학교의 제도 하나가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만일 제도의 문제라면 50년 전에 살기 힘들 때 사람들의 절반은 자살했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제도가 잘 되어 있다는 것 또한 아니다. 잘못된 곳에서 해답을 찾지 말자는 것일 뿐.

자살하는 사람의 심리를 잘 이해하고 있지는 않지만 전반적으로 우울한 상황에서 작은 자극이 자살을 유발한다고 생각된다. 그러니까 이런 부분을 미리 막는 장치가 필요한 것이고 큰 제도를 바꾸라는 식이나 돈과 결부시키지 말라는 식의 언론의 결론은 본질을 보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이런 식의 말을 하는 사람들은 요즘 유행하는 하바드 대학의 유명하다는 윤리학 강좌를 한번 경청해야 할 것도 같다.

이제 공부로 가 보자. 이런 좋은 대학의 좋은 학생들을 잘 교육하려면 개개인에게는 공부할 내용을 잘 가르쳐주는 외에 두 가지 서로 반대되는 자극을 주게 된다. 하나는 잘 하고 있다는 격려와 또 하나는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이다. 이 둘 중에 어느 하나도 없으면 제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자살하는 학생의 경우는 이 중에 두번째 것이 너무 크던가 앞의 것이 부족했던 것이다. (반대로 앞의 자극만 많은 경우에는 아무것도 모르면서도 자기만 잘 안다고 생각하고 너무 나서는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이 되기도 하지만...) 

그러니까 이런 채찍은 어느 정도 사용해야 하는가 라고 물어볼 수도 있겠지만 학생만 감당한다면 얼마든지 많이 사용할 수록 좋다. 특히 한 두번은 좌절할 정도의 채찍이 길게는 너무 중요하다는 예를 많이 본다. 나의 동료 교수들 가운데 정말 감탄스럽게 잘 하는 사람들은 공부 도중에 반쯤은 망한 듯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내가 보건대 그 사람들의 강점은 그들 스스로도 망했다고 이야기했던 바로 그 경험이 바탕을 이루고 있는 것 같다. 문제는 이 망한 순간에 좌절해서 자살하면 진짜 망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저런 수재들의 교육은 학생들을 매우매우 힘들게 하되 어떻게든 넘어가게 하는데 핵심이 있다고 해도 될 것 같다. 그리고 이 어떻게든 넘어가는 것은 보통 학생들 스스로 방법을 찾아 나가는 그런 문제로 되어 있다. (학생들이 나약하다고 말한다면 이런 방법을 스스로 찾을 줄 모른다는 말이거나, 또는 교수나 선배 동료들이 이런 방법을 찾는 clue를 주는데 못 알아듣는다는 말이다. 진짜 나약하다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학생들마다 그 받아들이는 수준과 속도가 다르고 또 받아들이는 내용이 다르다는 것이다. 어떤 학생은 이것을 잘 하는데 어떤 학생을 저것을 잘한다던가... 어떤 학생은 어떤 이론을 이해해 내는데 시간이 엄청 많이 걸리지만 이해의 깊이는 깊다던가... 게다가 도제식이어서 교수인 내가 책임지고 한 학생을 전적으로 가르쳐도 힘든 판인데, 강의나 하고 시험이나 보이며 일주일에 서너번 멀리서 얼굴이나 보는 학부 교육에서는 학생을 제대로 이끄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까 이런 사안에서 교수가 할 수 있는 역할은 거의 없다고 본다. 이것은 오히려 동료 학생들 사이의 관계가 중요하고 친한 친구나 선후배와 이야기할 수 있으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 같다. 

이번에 문제가 된 경우에 보아도 이 학생은 수학과 전공 과정에서도 제일 어렵다는 과목을 1학년 때 듣고도 학점이 B+인가를 받았다고 하니 수학에서도 재능이 뛰어난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러니까 수학에서 공부가 힘들어서였다고 말했다면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다. 어쩌면 영화 `여고괴담'에서 보였던 항상 전교 2등만 하던 학생과 같은 마음상태에서 못 벗어난 것은 아닌가.

그러니까 혹시 어려워서 이해가 안 되는 과목이 있다고 하면 그건 너무 당연하다. 예를 들어 나도 그런 사람이지만 성적도 꼬박꼬박 잘 받고 하는 사람도 공부 못하는 과목도 있다. 나는 학부 때 공부할 때 한 과목 - 현재는 내 전공과목이 된 - 은 이해도 제대로 안 되고 기억도 잘 안 되어서 결국 성적이 D+였나 하는 기억이 있다. 모든 것을 다 잘하지 못한다고 잘못하는 것은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학부 때 어떤 과목의 성적이 나쁘다는 것이 그것을 진짜로 할 수 없을 것이라는 뜻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결국 가장 성적이 나빴던 과목을 제일 좋아하고 전공하게 되었으니까. (그렇다고 이 과목 성적이 나빴기 때문에 더욱 열심히 해서 성공한 것이 전혀 아니다. 때가 되어서 공부하니 재미있고 이해가 쏙쏙 되더라는... 다른 학생들은 이 과목이 쉽고 내가 쉬운 과목을 어려워 했으니까 공부하는데 뭐가 어때야 된다는 법칙은 없는 것.)

학생들이 이런 것을 모두 다 알 수만 있다면 자살 같은 것은 안 할 것이다. 선택되어서 과학고, 영재고에 들어가고 또 선택되어서 특수할 정도의 좋은 대학에 들어갈 때 마음가짐은 `여기서도 잘 해야지'라는 바람직한 채찍과 함께, `여기서 1등 못하고 중간쯤 하는 것은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어'라는 생각을 가지는 것이겠지. `심지어 꼴찌를 해도 전국 거의 1등인데 뭘...' 이런 생각은 못하는 것인가? 
블로그 이미지

그로몹

운영자의 개인적 생각을 모아 두는 곳입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 Favicon of http://kunggom.pe.kr Kunggom 2011.04.11 09: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느 정도의 채찍이 필요하다는 말은 이해가 갑니다만, 문제는 그 채찍이 너무 강한 것 아닐까 하는 게 제 생각입니다. 영어강의제도 같은 경우만 해도 (학생·교수 포함) 부담이 굉장히 심하리라고 생각하는데(영어로 전부 수업을 들을 바에야 차라리 유학을 가는 편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다가 이번에 나오는 뉴스 중에 보니까 KAIST의 성적평가가 사실상 상대평가나 다름없다는 이야기도 나오더군요. 여기에다가 징벌적 수업료 제도를 포함한다는 것은, 징벌적 수업료를 내는 학생들의 생각을 ‘내가 이래뵈도 전국 상위 몇 퍼센트’라는 자신감이 아니라 ‘나는 엘리트 학교에 간신히 들어온 낙제생’ 정도로 만들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KAIST 연쇄 자살 사건 자체는 좌절하여 자살한 누군가를 보고 베르테르 효과가 일어난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뒤처진 학생들이 재기할 수 있도록 돕는 여러 가지 정책적인 배려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특정 분야에서만 두각을 드러내는 학생인 경우에는 다른 분야에서 오히려 낮은 점수를 나타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모든 분야에서 우수한 쪽이 오히려 드물지요.) 이런 학생은 우수한 부분에 특히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지 다른 분야의 점수를 트집잡아 징벌적 수업료를 내도록 만드는 것은 그런 학생들을 버리는 처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 gromob 2011.04.11 20:00  댓글주소  수정/삭제

      예 꿍곰님 말씀이 맞습니다. 우선 뒤쪽의 말씀부터 보아서 뒤쳐지는 학생들을 돕는 프로그램은 많을 수록 좋겠습니다. 문,사,철을 강화하는 것을 말씀하는 분도 많고 이것도 정말 중요합니다. 특히 형식적인 문,사,철 내용의 전달이 아니라 이런 절박한 현실에서 유용한 내용을 가르칠 수 있다고 봅니다. 물론 이를 강의하는 교수님들은 수준급 교수님들은 돼야 합니다만...(단순한 교양과목으로는 부족하단 말씀입니다. 더구나 이것도 학점과 연계된다면 안하느니만 못하겠죠.^^)

      이 글에서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 학생이 자살한 것이 정말 자살할만한 사항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단지 그곳의 분위기에서는 저정도만 되어도 완전히 패배했다고 느끼게 된다는 것인데... 이것이 무엇때문인가 하는 것이지요. 저는 가장 큰 이유는 학생들이 학점이 잘 안나오는 사실을 심할 정도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쉬운 시험, 겉핥기 식의 공부만 익숙하게 만든 우리 중고등학교 교육의 큰 문제입니다.

      징벌적 수업료가 문제가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이것은 수업료를 받고 장학금을 주는 것이나 똑같은 것입니다만 바람직하지 않은 효과는 이 방법이 적용되어 수업료를 내는 학생들이 벌을 받았다는 착각을 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어쩌면 다음과 같이 했었다면 조금 나았을 수도 있겠습니다: 학기말에 모든 학생들에게 수업료를 내는 것을 공고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잘한 학생들에게 장학금도 공지합니다. (아마 이렇게 하는 것이 카이스트의 학칙에 벗어날지도 모르죠.)

      문제는 외국과도 경쟁하는 대학이 대학생을 소비하는 기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영어 문제를 무시할 수도 없다는 것이겠죠. 또 하나는 외국의 좋은 대학과 같은 수준으로 발돋움하고 싶으니 그 만큼 교육을 시켜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겠죠. 문제는 우리나라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제대로된 대학교육을 받을 준비가 안 되어있는 것 같다는 것입니다. 즉 제 생각에 여기의 채찍은 별로 세지 않은데 학생들은 이걸 견디지 못하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제가 유학하던 시절 그 대학 학부의 한 과목의 숙제를 한 학기동안 본 적이 있는데 저는 한국에 들어와서 한번도 그만큼 학생들에게 공부를 시켜 본 적이 없습니다. 그정도의 숙제를 내면 그냥 포기니까요. 요즘 학생들은 90년대 학생보다도 훨씬 못견뎌요. 또는 형식적인 것만 하려고 하고 그 내용을 못 배워내죠.

      이런 학생들을 세계와 경쟁할 궤도에 올려 놓는데 어떤 방법이 좋은 방법일지가 고민입니다.

    • Favicon of http://kunggom.pe.kr Kunggom 2011.04.12 09:31  댓글주소  수정/삭제

      생각하다 보니, 대학의 본질에 대한 곳까지 생각이 미치게 되는군요.
      대학교가 갈수록 ‘취업학원’에 가까워지면서, 대학은 학문의 장이지 취업만을 목적으로 하는 곳이 아니라는 의견도 예전부터 대두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수님의 표현처럼 ‘대학생을 소비하는 기업’의 수요 또한 이제는 무시할 수 없게 되었지요. 제 생각에는 국립대학을 중심으로 해서, 기업의 요구와는 별도로 학문 연구를 중점적으로 하는 대학교를 분리하는 것이 좋지 않은가 하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사립 대학교라면 학생 유치를 위하여 취업률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을 테니, 기업의 요구는 그런 대학교에 맡기자는 거지요. 저는 서울대나 KAIST같은 곳이 바로 이러한 학문 중심적 대학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서울대학교를 비롯한 국립대학교 법인화 흐름을 보면 아무래도 제 생각과는 정반대의 흐름으로 일이 진행되는 것 같습니다.

      영어 강의 같은 경우에는 뭐랄까, 주객이 전도되었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예전에 논란이 되었던 ‘국사 영어 강의’도 그렇고, 요번에 KAIST에서도 일본어 강의를 영어로 했다는 기사가 나오는 걸 보면 뭔가 앞뒤가 뒤바뀌어도 한참 뒤바뀌었다고밖에는 할 수 없습니다.
      KAIST에서 영어가 필요한 것은 해외의 저널들을 통하여 영어로 유통되는 최신 정보를 획득하고, 반대로 해외 학계에 최신 연구 성과를 발표하기 위한 것일 테지요. 이것은 목적을 위한 수단입니다.
      그런데 수업을 전부 영어로 한다는 명목 아래 일본어 같은 교양 외국어 수업까지도 영어로 한다는 것은 영어가 특정 목적을 위한 수단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죠. 학문 연구를 위해서는 먼저 개념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텐데,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된 강의를 따라가려면 단순 해독에 급급하여 정작 제대로 된 내용 이해를 못하는 경우가 있지 않을까요. KAIST가 외국어대학교가 아니라는 점을 생각하면, 외국어 수업은 KAIST의 자기만족을 위한 수단이 아닐까 싶기도 할 정도입니다.

      학생들의 ‘질’ 문제는 초·중등교육과 밀접한 연관이 있고, 또 역사적인 측면과도 그 이유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사실 제 의견은 옛날에 비하여 요즘 학생들의 능력이 딱히 떨어진 것 같지는 않지만, 특성이라고 할만한 것이 달라졌고 또 공부 말고도 신경써야 할 것도 많아져서 그렇지 않나 생각합니다. 시간 관계상 일단 이 댓글은 이만 줄입니다.

  • 학부생 2011.06.07 13: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교수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학점때문에 스트레스 많이 받고있었는데 위로가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