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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2년이 다 되어가는 2010년 1월 7, 8일에 고등과학원(KIAS)에서는 학부 학생에게 수학(특히 기하학)을 소개하는 강의를 열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나가는 4명의 기하학자가 바쁜 연구 와중에서도 학부생들에게 수학 공부의 원동력이 되는 좋은 이야기를 해 준 것이다. 고등과학원 교수로 계시는 최재경, 황준묵 교수와 미국 위스컨신대의 오용근 교수 그리고 서울대의 박종일 교수가 그 4명이고 각자 학부 수학 수준에서 자신이 공부하는 기하학을 소개했다.

이 강의가 있을 때 나도 참석해야지 하는 생각이 많았지만 다른 일이 있어서 부득이 참석하지 못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잊었지만 참석하지 못해서 아쉬웠던 기억은 확실히 남아 있다. 그런데 고등과학원의 여러 세미나와 강의, 강연들은 녹화가 되어서 과학원의 수학과 서버에서 볼 수 있다. (이런 서비스가 생긴 것은 꽤 오래 되었고 초창기에는 녹화되는 강연이 많지 않았지만 요즈음은 장비가 발달되어 많은 강연들이 거기에 올라오고 있다.) 이 강의들도 녹화가 되어 그곳에서 볼 수 있게 되어있었다. 바쁘기도 하고 해서 거기 무엇이 있는지 별로 눈여겨 보지 못하고 있었는데 며칠 전 시간이 나서 들어가보니 내가 참석하지 못했던 강의들이 올라와 있었다. 그래서 그 강의들을 조금 들어보았다. 실제로 황준묵 교수의 강의는 제대로 들었고 최재경교수와 박종일 교수의 강의는 재빨리 훑어보았으며, 오용근 교수의 강의는 아직 시작하지 못했다. 아마도 오용근 교수의 강의가 가장 재미있을지 모르지만 또 가장 어려울 수 있을거 같아서 잠시 미루어둔 것이다.

최재경교수님(강연자중 나보다 나이 많은 유일한 분이라 '님'자를 붙였음)의 강의는 나와 비슷한 분야여서 여러번 들었고 대충 예상되는 강의였다. 최재경 교수님의 강의는 항상 새로운 내용이 있어서 들을 때마다 배우는 것이 많은 강의인데 이것은 기초적인 이야기여서 그만은 못하다. 제일 놀라웠던 강의는 초창기에 대한수학회의 기하학분과 초청강연으로 충남대에서인가 별로 많지 않은 청중을 대상으로 했던 최대값원리에 대한 것인데 감명 깊게 들었지만 이에 대한 배경지식이 일천할 때여서 잘 알아듣지 못했었다. 나중에 좀 더 자세히 강연해 주기를 부탁드려본 적도 있지만 최교수님은 강연하고 싶은 새로운 내용이 넘쳐나시는 분이라 똑같은 내용은 다시 잘 안하는 것 같고 나는 아직도 일부분 밖에는 잘 모르는채로이다. 언제 시간이 되면 집중강의로 다시 부탁하는 것이 어떨지 모르겠다.

박종일 교수의 강의는 다양체에 대한 기초적인 내용에서 자신의 연구영역인 다양체의 구조와 관련된 근래의 연구 성과들을 소개했는데 잘 이해되지 않는 분야여서 역시 잘 못알아들을 것 같았고, 그래서 건성 넘어갔다.

재미있는 것은 황준묵 교수의 강의인데 대수기하학자인데 시작은 미적분학으로 하여 재미있는 내용을 전개해서 보여주었다. 들려준 이야기는 사실 100년이 넘은 시절에 수학자들의 연구 내용인데 이것이 지난 100년동안에 대수기하학에서 일어난 일의 배경이 되는 것이라 중요한 내용이라 생각된다. 멀리서 이름만 듣던 내용을 어렵지 않게 설명해주니 예전에 특히 19세기에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가 눈에 보이는 것같다. 실제로 이의 초창기 역사를 Siegel의 Complex Function Theory라는 3권짜리 책의 시작부분에서 읽은 적이 있어서 다시 꺼내보았다. 재미있게 2시간동안 들은 내용이 가만보니 Siegel의 책 3권 전부를 요약한 내용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사실 타원함수론에서 시작해서 현대 대수기하학의 입문까지를 아우르는 이야기였으니 대단한 강의라는 생각이 새삼 든다.

이 내용이 전공이니까 (그의 전공은 복소대수기하학) 뭐 이런거 잘 아는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지만 그래도 특별히 강의할 일이 없었다면 Siegel의 고전적인 책 3권을 다 읽어보는 일은 안할 듯 해서 나라면 어디를 보고 이런 역사적인 전개를 알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전공이 대수기하는 아니어서 대수기하 책도 많지 않은데다, 복소기하는 나도 반쯤 전공해 보았지만 보통 현대복소기하 책은 이런 내용을 잘 안다루니까 생각이 안 미치다가, 예전에 샤파레비치의 대수기하 책에 저자가 '자신이 학생때는 아벨적분 이론은 대학원에서 꼭 배우는 것인데 요즘은 안그렇다'는 말을 본 기억이 있어서 샤파레비치를 열어보았다. 책의 내용에는 이런 것이 따로 없었지만 2권 맨 마지막 부록에 이의 역사에 대한 해설이 있었고 이 해설이 꼭 이번 강의만큼이란 것을 알았다. 황준묵 교수가 이 책에서 강의 내용을 구성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랬다고 하더라도 이 책의 한 chapter에 해당하는 내용을 간단히 2시간에 알기쉽게 설명해 주는 것은 이 분야의 진정한 고수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는데는 이견이 없다.

나는 이렇게 설명해줄 수 있는 멋진 수학 내용이 있는가 보면 글쎄 별로 없는 것같다.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역시 공부를 열심히 해야 뭔가 쓸모있는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생각케 한다. 그러나 오일러가 얻은 적분공식과 이를 일반화한 아벨적분, 그리고 여기서 기하학을 만들어낸 리만의 함수론과 리만면의 이론은 정말 놀랍고도 재미있는 수학의 한 분야이면서 오늘날의 모든 현대수학을 잉태한 이론이란 점에서 다른 어떤 이론보다도 흥미진진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것이 재미있는 사람은 '친구가 없다'는 정리아닌 정리가 있으니 그렇기는 하지만 사실 너무 재미있는 이야기여서 수학책이라기보다는 수학 이야기책으로 구성해도 정말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을 재미있어할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은 되지만) 언제 시간내서 공부를 해서 황준묵 교수의 강의를 책으로 엮어볼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황준묵 교수 본인이 직접 쓰는 것이 가장 좋은 책이 되겠지만 지금은 그럴 틈은 없는 바쁜 와중일터이니 나라도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황준묵 교수의 강의 내용은 언제 다시 간단히 정리해 두기로 하자. 그때는 수식도 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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