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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도에 일본 이와나미(岩波) 서점은 基礎數學選書라는 교과서 시리즈를 간행하기 시작했다. 일본서적에 관심을 많이 가지지 않던 시절이어서 이 책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제작되었는지는 잘 모른다. 이와나미는 이 이전에 1970년대에 강의록 시리즈를 출간했고 이것들 가운데 좋은 책들은 나중에 책으로 되어 나왔었다. 그러나 이 1990년대의 시리즈는 따로 기획된 강좌에서 시작되었고 앞의 것과 별로 상관이 없던 듯하다. 

이 시리즈는 일본 수학의 거봉인 코다이라 쿠니히코(小平邦彦) 교수님이 감수하고 7명의 편집진이 더 있다. 그리고 실제로 이 감수자와 편집진들 중의 상당수가 책을 집필하였다. 이 시리즈의 맨 처음에 감수자인 코다이라 교수님이 간행사로 쓴 글이 한 페이지 있어서 여기 옮겨 둔다. (일어를 거의 모르는 사람이 번역한 것이니 대략만 보시기를...)

부제는 "수학적 현상의 파악을"이라고 되어 있다. 1990년 6월의 글이다.

간행을 맞아서
- 수학적 현상의 파악을 -

현대의 수학은 형식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서 수학 책도, 정의, 공리, 정리, 증면을 나열한 형식으로 쓰여진 것이 많다. 형식주의에 의하면 수학은 그 자신은 의미를 갖지 않는 기호를 주어진 '룰'에 따라 나열해가는 게임에 불과하다고 하는 것이지만, 이것은 수학의 가장 본질적인 것을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예를 들면, 공리적 구성의 규범이 된 Hilbert의 기하학기초론에는, '점', '직선', 등은 의미가 없는 무정의술어, 즉 기호여서, '고양이', '참새', 등으로 바꾸어도 전혀 문제 없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이것은 사실과 반대이다. 실제로, Hadamard가 지적하였듯이, 기하학기초론에는 그의 매 항목마다 그림이 게재되어 있다. 그림을 그리지 않고, 머리 속에서 그림을 상상하지도 않고, 논리만으로 Hilbert의 기하학기초론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이와 같이 의미를 생각하지 않는 형식주의의 입장에 서는 한, 기하학기초론마저도 이해할 수 없다.

나의 관점에서는 수학은 실재하는 수학적 현상을 기술하고 있는 것이고, 수학을 이해한다고 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그 기술한 수학적 현상의 이미지를 말하자면 감각적으로 파악해서, 형식주의로는 포착할 수 없는 수학적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다.

이와나미 강좌 '기초수학'은 현대 수학의 기초부분의 기본적인 내용을 위에 설명한 의미로 감각적으로 알기 쉽게 해설하는 것을 목표로 편집되었다. 이번 시리즈는 이 강좌 중에서 학부정도의 기초교과에 상당하는 것을 뽑아 '岩波其礎数学選書'로서 편집한 것이다.

이 기회에 각장 끝의 문제에 대하여 해답과 힌트를 첨부하여, 학생의 공부에 도움을 주도록 하였다.

1990년 6월

小平邦彦 
 
이 시리즈는 일본 강의록에서는 처음으로 정리와 증명이라는 형식에서 벗어나서 될수 있으면 예를 많이 들고 다른 곳에 응용되는 것을 해설해 넣은 책 시리즈이다. (그렇다고 해서 증명은 대충하고 응용수학 문제를 끼워넣었다거나 한 것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상당히 빡빡한 이론적인 수학을 펴고 있다.) 이것은 20세기 말에 나타난 이해에 대한 새로운 사조와 맥을 같이 한다.

우리가 어떤 것을 이해하는 것은 그 사실을 문자 그대로 머리속에 적어 넣으면 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적어도 내가 어떤 것을 이해할 때는 그것과 관련된 어떤 선행된 경험과 내가 이해하려는 것을 매치시켜 놓아야만 한다. 새로운 이론을 공부할 때 이 선행된 경험이 되는 것은 예로 들어주는 것들이 되고, 이것이 부족하면 내가 상상으로 만들어서라도 이러한 경험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말만으로 기억하고 있을 뿐 이해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리고 공부해나가는 과정은 이러한 이해의 폭을 넓혀가도록 새로운 경험들을 추가하고 그것을 이론에 맞게 배열하여 이론과 링크시키는 과정으로 보인다. 물론 이것이 기억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기억하는 것이 매우 쉽고 효율적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내가 이런 식의 분석이 가능하게된 것은 공리주의적인 생각에 많이 익숙해지고 이를 통해서 이해하려는 노력을 통해서였다.)

이 시리즈는 간행되었을 때 한 두권만 사서 보았다. 이 중에 함수해석학 책은 아마도 Brezis의 책을 흉내냈던 것인지 아니면 독창적인 것이었는지 편미분방정식론을 기본으로 해서 쓰여졌었고 이를 보고 강현배교수와 함께 감탄했던 적이 있다. 최근에 중고 책으로 코다이라 교수님이 쓴 '해석입문'과 '복소해석학'을 구했다. 평범한 내용을 적은 것이지만 매우 유용한 책으로 널리 사용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 우리도 이러한 수준의 책이 적어도 한 권씩이라도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한다. 

이번학기 복소함수론은 어느것을 따라갈까라고 생각하면서 기본적으로 노구치교수의 교과서를 따라가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내용이 비교적 기하학적이고 너무 어렵지도 않다. 일본에서는 조금 수준 높은 강의로 (어쩌면 대학원에서) 한 학기에 강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지만 학부에서 1년에 걸쳐서 강의하면 자세히 따라가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와 함께 Ahlfors를 같이 읽는다면 미국에서 내가 공부했던 1년 트랙의 복소함수론의 2/3 정도는 커버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열심히 하고 잘 이해해 내는 학생에 한한 이야기이다. 기하학적인 이야기는 결국 눈에 보이게 만드는 것이니까 이해가 필수다. 계산만을 원하는 학생들에게는 조금 미안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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