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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사의 추억?

교육 2007. 1. 22. 17:43

집안을 정리하다가 책 틈에서 언젠가 신문에서 오려 놓은 글이 하나 나왔다. 김형기논설위원이라는 분이 쓴 글로 제목은 본고사의 추억이다. 이 글을 다시 읽어보며 항상 하는 생각을 다시 한다. 우리 아이들은 이미 대학에 들어갔고, 아이들이 입시에 휘둘리는 동안은 우리나라 교육을 완전히 개편하는데 무슨 일이라도 할 것 같던 것이 대학 들어가는 순간부터 먼 딴나라 이야기처럼 들리는 것은 아이 엄마 말이 꼭 맞다. 신문의 글은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지금의 학부모 세대가 입시를 겪은 1970, 80년대의 입시는 예비고사와 본고사의 시험이었다. 그러나 자식세대는 수능+내신 세대이고 스스로 죽음의 트라이앵글 세대라고 부른다고 한다. 내신-수능-논술의 삼각파도에 휘말려 있다고 쓰고 있다.
그 뒤에 쓰여 있는 글을 직접 옮기면
(상략)
그때에는 학원과외나 개인과외를 아무리 해봐야 본고사 성적을 올리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다들 알고 있었다. 수학 같은 과목은 100점 만점에 20~30점만 맞아도 합격할 수 있을 정도로 어려웠다. 객관식 문제의 답을 집어내는 요령만 반복 숙달시키는 학원과외로는 그런 수준의 문제를 풀 수가 없었다. 학생들은 스스로 공부하는 법을 터득하지 않으면 안 됐다. 부모가 제아무리 부자라도 자식의 실력만큼은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본고사는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의 학력에 개입하는 것을 차단하는 방어막이었고, 재능 있는 가난한 학생이 공정한 경쟁을 통해 신분상승을 이룰 수 있는 사다리였다.
(하략)
이것은 대체적으로 맞는 말이다. 어떤 경우에도 부모의 경제력은 자녀의 공부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정도에 있다. 본고사 시절에는 무작정 과외를 많이하는 것은 점수가 올라가는 것과 상관관계가 적었다. 요즘 아이들을 보면 그 상관관계가 매우 크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이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그 교육효과이다. 본고사 시절에 수학 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 학원/과외에 간다고 하더라도 그 과외의 목표는 수학 내용을 잘 이해하도록 돕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요즈음의 수학 학원에서 가르치는 내용을 보면 대부분 내용의 이해와는 상관없는 것이다. 특히 내용의 이해에 방해되는 식으로 문제푸는 요령을 가르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교육적으로 매우 퇴보하였다고 생각된다.

그러면 지금의 교육 시스템이 더 낫다고 교육부가 주장하는 부모의 경제력에 의한 자식의 학력의 불공정은 어떠한가? 위의 글에서는 예전의 본고사의 경우에 경제력이 별로 영향을 미치치 못했다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보다 더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요즈음의 쉬운 수능문제와 4~5지선다형 문제에서는, 얼마나 빨리 문제를 푸는가, 그리고 얼마나 실수를 하지 않는가가 시험점수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된다.(이는 학원에서 어떠한 훈련을 시키는가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학원 선생님들은 어떤 훈련이 점수를 높이는가를 정말 잘 알고 있다.)

문제가 되는 사실은 시험문제가 쉬워지면 시험을 잘 보는 학생과 못 보는 학생의 점수차는 많이 줄어들지만, 정작 원하는 효과인 경제력에 의한 순서를 뒤집을 가능성은 매우 줄어든다는 것이다. 특히 문제를 빨리 푸는 것은 마치 100m 달리기 연습을 하듯이 얼마나 훌륭한 코치가 가르치는가가 매우 중요하다. 즉, 얼마나 돈을 쓰는가에 의해 전적으로 결정된다고 하여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니다. (쉬운문제를 푸는데 학생들의 능력차이는 별로 많지 않다. 따라서 달리기와 같은 기본적인 체력차이 같은 것은 별로 없다.)  그러니까 점수 차만 줄여서 평등해진 것 같이 보이게 할 뿐, 실제로 등수를 뒤바꿀 방법은 없으니까 불평등이 가중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나온것이 학생들의 점수차를 뭉뚱그려서 등급의 수를 줄이는 것이라면, 그래서 시험본 결과에서 학생들의 차이를 인위적으로 없애고 대학에서 전형자료로 쓸 수 없게 하겠다면, 시험은 뭣하러 보는가? 아예 시험을 보지 않는 것이 학생들의 정서와 체력에 훨씬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닌가?

아마도 이러한 내용을 교육부의 관료들은 당연히 알고 있을 것이다. 잘 알면서도 말할 수 없는 상황에 있다면 그 고충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한 나라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분들이라면 적어도 모 사립대학의 입시 문제 파동(본인의 후배 교수의 석궁 사건)과는 비교가 안되는 큰 문제라는 것을 모를까? 당연히 바른 말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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