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북에 이모군이 「수학의 정석이 싫어」라는 요지의 글과 사진을 올렸다. 하는 말의 내용은 어떤 부분은 이해가 되고 몰라도 아마 이런 뜻이겠거니 짐작가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수학의 정석을 요즈음의 책들과 비교하는 것은 문제가 좀 있다.


예전에 내가 고등학교 공부할 때도 수학의 정석은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참고서였고 우리 아이들이 공부하던 시절까지도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요즈음은 잘 모르겠다. 이제는 관심이 별로 없어서 상황이 어떤지 파악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의 학생들도 정석이 싫다는 말을 한다는 것은 정석의 위치가 아직 비교적 건재하다는 반증이 아닐까 생각된다.


수학의 정석은 꽤 옛날에, 내가 정석을 사야 하던 시절보다 훨씬 더 먼저 만들어졌다. 내 기억으로 내가 초등학교 들어가던 시절(1960년대 초)에는 정석이 없었던 듯하다.(우리 집에는 수학책이 다 있었으니까. 내 기억에 없다.) 다른 분의 정석보다 조금 간결한 참고서는 기억난다. 저자 성명은 기억 안나는데 김모라는 분이었던지? 어쨌든 그것도 일본 참고서를 참고하고 쓰신 것인지 간결한 설명이 좋았던 것으로 기억되지만...


하지만 내가 고등학교 가기도 전에 정석이 나왔고, 저자는 홍성대 선배님으로 되어 있지만 들은 풍문으로는 홍선배님의 여러 후배들이 힘을 합쳐서 참고서를 저술하였다고 한다. 정확한 내용은 잘 모르지만 적어도 몇 분이 같이 작업하셨다고 하고 그 중 한 교수님은 이미 몇 년 전에 타계하셨다. 내용을 보면 당시 구할 수 있었던 일본 수학 참고서 거의 대부분의 문제를 총 망라하고 있어서 내용은 많고 정리는 조금 잘 안 되어 있다고 할 그런 책이다.(우리 집에는 당시 중요한 일본 참고서가 여러 개 있었다.)


요즈음은 내가 수학사를 공부하다 보니 이 책을 보는 눈도 수학사적인 관점이 조금 들어간다. 우리 나라가 해방된 이후, 사실 6.25가 지난 후의 학교 공부 관점에서 보면 많은 수학자와 수학 선생님 그리고 교육과정을 언급할 수 있지만 이와 함께 병행해서 참고서도 수학사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보아야 하겠고 이 부분에서는 단연 독보적인 위치를 점했던 책이다. 이 책 밖에는 없었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반은 된다.


사실 이 책이 지금도 학생들이 무시할 수 없는 위치에 있다는 것은 놀라운 현실이다. 다른 모든 것이 부침을 계속하는 동안 이 참고서는 중요한 위치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상황에 맞게 변화하려는 노력도 있었겠지만 사실 많이 변하지 않은 것 같은데도 말이다.


수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 책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실제로 이 책은 좋은 문제를 많이 모아놓았다는 장점을 제외하면 교과서를 앞지르기 힘들다. 교과서의 정확하고 핵심을 짚는 설명, 꼭 필요한 내용만 모아 놓은 점, 그리고 특히 한 마디도 틀리지 않았다는 것에 비하면 일반 참고서들은 정말 엉망이다. 문제도 틀리고 설명도 틀리고 정의도 없고...  수학의 정석은 이에 비하면 비교적 낫다고 하겠지만 그래도 참고할 책으로서의 참고서를 넘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이런 책이 있어서 모든 사람들이 공부에 도움을 받고 있는 것이다.


우리 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변하지 않는 것은 학생들이 이런 참고서에 너무 의지하는 것이다. 공부하기 싫은 학생들을 공부로 끌어들이는 것은 선생님이 할 몫이지만 사실 아무런 방법도 주지 않고 그냥 교실에서 끌어들이는 것은 아무도 할 수 없다. (교실에서의 방법은 약장사가 되는 것 뿐이다.) 참고서가 이런 부분을 대신한다. 하기 싫은 공부를 억지로나마 할 수 있게 해 주는 부분은 조금만 읽어도 조금은 할 수 있게 해 주는 좋은(!) 참고서이다. 문제는 이렇게 하는 것만으로는 수학을 제대로 시작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괜히 책 이야기를 하다가 수학 교육 이야기로 들어가는 듯한데 들어간 김에 한 마디만 더 하면 이렇게 공부한 후유증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실 우리나라가 이렇게 수학공부를 하지 않았으면 지금 모든 분야가 더 탄탄해졌을지도 모른다. 단적으로 수학 올림피아드에서 상을 받은 학생들이 많이 수학과로 진학하기는 하지만 그런 중에서도 많은 뛰어난 인재들이 결국은 수학을 떠난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고 보이지만 큰 이유 가운데 하나가 진짜 공부하는 데에 가면 지금까지 공부한 방법이 결코 도움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이만 줄이기로 하자.


다시 수학의 정석으로 돌아가자.


첫 째, 이 책은 지금의 책과 비교하는 것은 조금은 무리가 있다. 이것은 마치 100년전 수학 전공 서적을 지금의 서적과 비교하는 것과 비슷하다. 정석은 처음 만들어졌을 때와 기술 방식이 거의 변하지 않았다.


둘 째, 이 책이 좋은 참고서가 아니라고 한 이 군의 말은 일리가 있지만, 이것은 이 책이 의도하였던 것이 문제를 풀이까지 쓰는 시험에 맞게 기술한 책이었기 때문이고, 현재 입시 문제 형식에서 보면 별로 깔끔하지도 못하니 좋은 참고서가 아니겠지만, 원래 의도대로라면 별로 나쁜 참고서가 아니다. 풀이를 쓰는 시험을 아직도 보는지 일본 참고서는 아직 이런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 밖에 이 책의 표지가 너무해 보인다면... 이것은 정석 초창기 때랑 하나도 변한 것이 없다. 디자인을 할 줄 몰라서라기 보다는 아마 원래의 것을 고집한다고 보인다.


원래 쓰고 싶었던 것은 뭔가 다른 이야기였는데 시작하고 보니 너무 여러 가지가 떠오른다. 그냥 쓰지 말까 하는 생각도 있지만 두서 없는 이야기도 이유가 있을 것이니까 그냥 두기로 한다. (글 쓰는 사람이 나이가 든 것도 한 가지 이유.)


한 가지만 추가해 둔다면 수포자가 공부 못하는 이유가 교과서나 참고서가 나빠서라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일률적인 교과과정은 문제이다. (못하는 사람은 아래 학년 것을 늦게라도 공부하면 된다.) 하지만 교과서가 정말 사람의 마음을 끌어서 공부하기 싫은 사람을 공부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아니면 교과서 설명이 너무 멋있게 되어 있어서 수학 공부하기는 싫어도 교과서만 읽으면 이런 싫은 수학이 머리 속에 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더 큰 오산이다. 수학을 공부할 수 있는 것은 그 수학이 재미있을 때 뿐이고, 재미있으려면 (1) 문제가 풀릴 때, 그리고 (2) 내용이 이해될 때 뿐이다. 그러니까 수포자는 모두 여기까지 못 와봤기 때문인 것이다.


혹시라도 수학은 어려운 것이어서 수포자 대부분은 그럴 수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것 또한 크게 잘못된 것이다. 아무 수포자도 초등학교 수학에서 시작하여 어디까지는 잘 안다. (숫자 계산도 잘 할 것이다.) 자기가 아는데 까지 수학을 들여다 보자. 하나라도 어려운 것이 있는가? 그 위의 수학도 마찬가지다. 알고 나면 너무 쉽다. 다시 잘 말하면 익숙해지만 너무 쉽다. 짧은 시간에 많은 내용을 싫어하면서 공부한다는 것은 천재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수포자가 할 일은 첫째가 이것이 어째서 재미있는지를 찾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수학의 정석은 그 여러 단점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져다 주었다. 특히 홍성대 선배님은 수학의 정석으로 얻은 이익에서 후학들을 위해서 수학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하셨다. 서울대에 처음으로 수학과 전용 빌딩이 생긴 것도, 이 분이 세운 상산고등학교도 이 밖에 우리나라 교육의 여러 부분이 이 분의 도움을 받았다. 이것만으로도 모범적인 참고서(!)라고 할 수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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