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슈 유후인을 보다.

기타 2013. 1. 20. 12:37

며칠 전에 2박 3일로 일본 큐슈 북쪽 산 속의 마을 유후인(由布院)을 여행하였다. 온천 마을의 하나이고 조그만 산 속 마을이라 구경할 것이 많지는 않다. 오랜만의 가족 여행이지만 바쁜 와중이어서 계획에 거의 참여하지 않고 딸려갔다왔다. 우리 여정은 인천공항에서 후쿠오카(福岡)공항 까지는 (1시간 정도 걸리는) 비행기로 가서 공항에서 국내선쪽으로 공항셔틀(무료)로 이동하고 거기서 유후인으로 가는 고속버스 (수준은 우리나라 시외버스 수준?)를 타고 1시간 40분 걸려서 유후인 역 앞의 버스정류장에 내렸다. 묵는 여관에서 차를 보내주어서 잠깐만에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유후인이란 동네는 정말 작아서 중심지는 한쪽 끝에서 반대쪽 끝까지 걸어서 30분 정도에 불과하다. 빠른 걸음이면 20분이면 걷는다. 그 사이를 연결하는 좁은 (차 두대 엇갈릴만한, 인도는 따로 없는) 길이 하나, 차들이 주로 다니는 길이 두어개  평행하게 나 있다. 좁은 길 가에는 가지요지 가게들이 늘어서있다. 반 이상이 먹을것이고, 나머지는 souvenir 매점 등이다. 거기 가서 할 일은 먹는 것과 목욕, 그리고 이 가게들과 동네를 둘러보는 것이다. 



점심을 먹은 곳 근처의 갤러리/식당의 입구 복도 (GalaxyIIHD)


우리는 도착하자마자 맛집으로 되어있는 한 집에 가서 국수를 먹었다. 그쪽은 산 위쪽으로 조금 언덕진 곳이어서 점심을 마치고 걸어내려오며 일본의 시골 풍경을 보았다. 여관에 들어와서 짐을 제대로 풀고 목욕을 하고(?) 아이들은 동네 구경을 했다. 저녁을 먹고 다시 목욕. 여관에서 저녁식사를 주는데 일본의 여관 식사는 처음이라 방에서 받아서 먹는 식사를 신기하게 경험했다. 가족들은 밤에 다시 큰 공중탕에서 목욕을 하고 잠을 잤다. 아침에 일어나서 새벽 공중탕에서 잠시 목욕을 하고 제공되는 아침 식사를 하고 동네 구경을 나갔다. 킨린코(金鱗湖)를 구경하고 사람이 바글거리는 먹자골목(?) 쪽으로 나가지 않고 반대쪽으로 나가서 동네 절 龍峩山 佛山寺를 보았는데  역사가 천년 정도 되는 절이다. 바깥만 구경하고 내려오면서 스테인드 글래스 박물관과 작은 교회 건물 등을 보고 점심을 먹었다. 이 동네 토종닭(지도리,地鷄)이라고 하는데 맛도 괜찮고, 음식 입맛은 여기서 보는 화려한 일식들과는 조금 다른 편안한 맛이다. 여관 음식도 조금 고급스럽지만 맛은 역시 조금 시골풍이랄까? 편안한 맛이라는 말이 맞는 듯하다. 점심후에 모든 사람들이 걷는 길을 걸으며 구경하고 여관으로 돌아왔다.


여관은 옛날 풍 일본집 거의 그대로이다. 아마 각 별채의 입구만 손본 듯. 부분 부분은 우리가 어릴 때 살던 일본식 (오카베 집이라고 부르던) 집과 똑같다. 1920년 경에 세워졌다니 아마도 후에 보수를 대대적으로 했거나 중간에 새로 지었을지도 모른다. (1950-60년대쯤) 이 별채들에서 욕탕만은 조금 현대적으로 보인다. 탕은 위 테두리만을 나무로 두르고 안쪽은 큰 타일 내지는 돌로 되어 있다. 저녁 식사 후에는 가족들은 다시 목욕을 했고 나는 방에서 발만 조금 담그고 있다가 잠을 잤다. 


다음 날은 아침 후에 후쿠오카로 떠나서 점심때쯤 도착하였고 점심 후에 백화점을 한 두 군데 둘러보고는 공항으로 갔다. 눈이 많이 와서 비행기가 조금 연발하였지만 별 무리 없이 인천에 도착하였다.



프론트 앞의 소파와 탁자 (GalaxyIIHD)


일본 여행이 두 번째지만 말로만 듣던 여관(료칸) 여행은 처음이어서 새로운 경험이었다. 이 여관은 손님들이 재미있게 지낼 수 있도록 여러 가지를 준비하고 있었다. 물론 아주 오래된 경험을 위주로 한 것이지만... 본채에는 입구 (프론트의) 거실 외에 2층에도 아담한 거실이 있는데 서재를 겨하고 있다. 책상에는 오래된 만년필도 놓여 있는 등 싸구려는 아니다. 이 밖에 별채 사이에 반2층짜리 벽돌 건물을 두었는데 거기는 담화실(談話室)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는 큰 거실이다. 한쪽에는 꽤 많은 책들이 거의 2층까지 닿는 높은 서가에 꽂혀있고 (높아서 위쪽은 사다리로 올라가야 한다) 안쪽은 한 계단 낮게 소파가 둘러 있는 탁자와 한쪽 벽에 벽난로가 있다. 옛 일본식 베치카가 아니고 서구식 벽난로인데 불을 피워주었다. 우리 아이들은 이 방을 좋아했다. 이 방에는 오래된 골동품도 몇 가지 모아놓았는데. 우선은 1930년대 영국의 축음기가 있었다. SP 음반도 한 세트 갖추고 있었고 amplifier 없이 내 몸통만한 스피커로 나는 소리는 생각보다 커서 그 방 안에서  충분히 크게 들렸다. 이 밖에도 오래된 탄노이 모노 스피커를 마란츠 앰프에 물려서 음악을 들을 수 있었고, 벽난로 위에는 나무로 만든 퍼즐들이 몇 개 있었다. 


이집의 식당에서 젓가락을 싼 종이에 도장으로 찍힌 어구가 千里如面이라는 것인데 중국 어느 시에서 따 왔다고 serving하는 아가씨가 이야기했지만 무슨 시인지는 알 수 없고, 일본에서는 편지 봉투에 찍는 도장의 어구로 잘 쓰이는 것인지? 뜻은 대략 "천리를 떨어져 있어도 얼굴을 마주대한 듯이 마음이 통한다"라고 써 있는데가 있지만 이것도 확실한 것은 아니다. 어쨌든 여관으로서는 잊지 않고 다시 왔으면 한다는 의사표시를 꽤 운치있게 한 듯하다.


쉬러 간다는 뜻의 온천여행이지만 조금은 바쁘게 돌아다녔고, 온천은 괜찮은듯 하다. 단지 대중탕이 겨울이라 공기가 차가운 것은 어쩔 수 없는듯. 아마 노천탕은 더하겠지만 우리는 익숙하지 않은 문화여서. 참 말만 듣던 족욕탕을 기차역에서 보았고, 먹자골목 한군데는 족욕탕 안에 작은 피라미들(?)을 잔뜩 넣어놓고 발의 각질을 뜯어먹게 하는 장사를 하고 있었다.


한 마디만 더 써둔다면 이 마을 뒤켠의 산(화산) 봉우리는 우뚝 솟아있고 산정은 하얀 눈으로 덮여있어서 장관이라고 할 수 있다. 이름은 由布岳. 그리고 유후인(由布院)이란 이름은 아마도 예전에는 湯布院이었던듯. 아마 발음은 같아서 요즘은 간단히 쓰는 듯하다. 湯을 쓰는 것이 온천 동네 이름에 더 맞는지도. 동네사람들이 똘똘 뭉쳐서 도시 전체를 관광지로 개발했다하고, 특별히 유곽을 없앴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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