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아는 분 사무실에 갔다가 책을 몇 권 업어왔다. 아니 안고 왔나?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 가운데 관심이 가는 책이 한 두권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현대벡터해석"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부제는 "벡터해석에서 조화적분으로"라고 되어 있다. 원 제목은 Advanced Calculus로 Nickerson, Spencer, Steenrod 세 사람이 쓴 책으로 Van Nostrand에서 1959년에 출판된 책이다. 번역은 岩波서점에서 1965년에 原田重春, 佐藤正次 두 사람이 하고 있고 1971년까지 5刷가 나와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책이 Princeton 대학의 교과서로 쓰여졌다는 것이고 책에는 학부 3학년생을 위한 것이라고 되어 있다. Advanced Calculus라면 학부 3학년에서 공부하기에 적절한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조금 일반적인 교과서라고 할 수 없다. 프린스턴 대학의 교육 수준이 높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지만 이 책의 내용은 수준 면에서 조금 산만하다. chaper를 살펴보면

벡터대수, 벡터공간의 1차변환, 스칼라 곱, R^n의 벡터곱, 자기 준동형 대응, 실수 상의 벡터값 함수, 벡터를 변수로 갖는 스칼라값 함수, 벡터를 변수로 하는 벡터값 함수, 텐서곱 및 다원환, 위상수학과 해석학에서의 준비, 미분형식의 미분법, 적분정리, 복소구조

등이다. 이 책은 학부에서 사용되었던 교과서임에 틀림 없다. 이 보다 앞서서 어떤 수업을 듣고 Advanced Calculus를 들었을까? 적어도 미적분은 듣고 그리고 또 한 두학기 정도의 1변수 미적분을 epsilon-delta 와 함께 공부했던지 아니면 이것들을 1~2학년동안에 나누어 공부했던지 어쨌든 3학년에서는 다변수 해석학을 확실하게 공부하고 있다. 각 장의 내용을 보아도 벡터함수는 물론, 선형대수와 다중선형대수의 이론을 잘 공부하고 있고 뒤쪽으로 가면 텐서와 미분형식으로 무장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보통 공부하는 이 부분 강의에 비교하면 정말 단단히 공부했다는 느낌이다. 50년 전에 말이다.

뒤쪽에 가면 외미분과 리만계량, singular homology 와 cohomology, 그리고 de Rahm정리, 조화형식과 cohomology의 관계, 복소미분형식과 복소 Poincare 도움정리, Hermite계량, Kaehler계량 까지도 다룬다는 것이다.

이 내용들이 저자인 Spencer, Steenrod 등의 전공인 복소기하학과 위상수학의 내용으로 치우쳐 있다는 것은 이상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학부 3학년에게 이런 강의를 하는 것이 좋은지는 잘 모른다. 비록 프린스턴 대학의 학생들이 천재에 가까워도 이렇게 빨리 나가도 제대로 공부하는가?

하지만 이것은 프린스턴의 문제이고 내가 걱정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또 한 가지는 일본은 왜 이런 책을 번역했는가? 특히 수학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이와나미 서점은 왜 이런 책을 번역했는가? 그리고 몇 년 동안에 5刷까지 인쇄했는가? 단지 프린스턴대학의 교재여서 당시 일본 수학자들이 최 첨단 교재를 보고자 하는 것이었을까? 잘 알수가 없지만 이 교재가 일본에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을 것 같다. 미국의 유수학 대학, 예를 들면 프린스턴, 하바드, MIT 등의 대학원 강의 수준을 보면 학부 수준도 꽤 높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고 위와 같은 교과서가 계속되어 사용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런 교재는 그리 popular한 책은 아니다. 적어도 우리 나라에서나 일본에서는 이런 교과서를 쓰는 곳이 몇이나 있는가? 도쿄나 교토 대학은 잘 모르겠지만 다른 곳은 절대로 아닐 것이고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교과서를 학부 3학년에 쓰는 곳은 적어도 지금은 없다. 아마 1960년대에 서울대학교에서 Advanced Calculus 교재로 당시 Dieudonne가 쓴 해석학 시리즈 첫 권인 Foundations...를 썼던 것이 아마도 가장 어려운 교재였을 것이고 그 다음에는 Rudin의 Principles...를 넘어간 일은 없을 것 같다.

지금에 와서 보면 이런 책이 한 권쯤 도서관에 있는 것은 나쁠 것이 없다고 생각된다. 우리말로 말이다. 교과서로는 쓰이지 않아도 공부하면서 이런 책도 한 번쯤 들춰보고 지금 당장은 필요없을 것 같은 개념들도 조금만 공부하면 읽을 수 있는 내용이구나 하고 생각해 둘 수 있다면 새로운 개념들로 나아가면서 어려움이 훨씬 덜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 우리말로 된 교과서를 둘러보면 학부 2학년 정도 까지의 교과서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고 그 이상의 교과서는 제대로 된 것을 찾기 힘들다고 생각된다. 해석개론만 해도 내가 들 수 있는 것은 한 두개 뿐이고 위상수학이나 미분기하학도 나온지 오래된 교과서 아니면 외국 교과서의 편역 등을 제외하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대수학도 은퇴하신 우리 은사님 한 분이 예전에 쓰신 책 말고 또 있는지 궁금하고 집합론의 저자들도 모두 은퇴하셨다. 지금 현장을 담당하는 교수님들은 뭐를 하시는 건가? 강의 부담은 내가 처음 교수가 되었을 때의 반으로 줄었는데... 그런데도 책을 만드는 사람은 거의 없다.

책 쓰는 것이 돈이 되지 않기는 하지만 이것이 큰 이유는 아닐 것이다. (사실 대학원 교재는 써도 팔리지 않는다고 출판해 주지 않지만...) 아마도 연구에 대한 압박에 책을 쓸 여유가 없는 것이 큰 이유일 것이다. 저서는 특히 교과서 급은 학교에서 연구 업적으로 거의 인정하지 않는 현실에서 책을 쓸 사람이 없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고 하겠다.

아마도 교과부 정책에 변화가 있어야 할 것 같다. 우리나라 교육이 발전하는 것은 단지 정부가 모든 것을 담당해서는 안되는 것이 자명하다. 정부가 하는 만큼 일반인들도 도움이 되는 특히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는 일을 많이 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논문을 많이 쓰는 것 만큼 좋은 교과서를 쓰는 것이 중요하다. 50년이 지난 지금에도 들여다보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교과서라면 꼭 써야 하는 것이다. 쓰기 힘들면 번역이라도 해 두어야 한다. 우리 말로 읽을 수 있으면 고등학생 중학생이라도 읽어볼 수 있고 이런 가운데 뛰어난 사람이 나오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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